도시가스 검침원, 서울시 규정 '격월제' 그림의 떡
직원들 자체 시행..징계위에
"인권 문제로 접근을" 의견도
“처절하게 일해야 하는 시기가 온 거죠.”
10년차 도시가스 점검원 이지명씨(57·가명)가 13일 말했다. 이씨는 여름철에도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하루 2만~3만보가량 걸으며 일한다. 그가 한 달에 직접 방문하는 가구는 3500~3600가구에 이른다. 계량기 검침부터 고지서 송달, 가스 안전점검 등 수행해야 할 일도 여럿이라 실제 방문 횟수는 가구 수의 2배를 웃돈다.
도시가스 노동자들을 폭염에서 보호하기 위해서는 ‘격월 검침’이 시행돼야 한다고 이씨는 말했다. 두 달에 한 번씩 직접 검침하는 격월 검침은 혹서기 노동자의 부담을 덜어주는 대책으로 거론돼왔다. 그러나 현실은 ‘그림의 떡’이다. 서울시는 ‘도시가스 공급규정’에 6~9월 격월 검침이 가능하도록 정하고 있지만 강제사항이 아니다. 이씨가 고용된 회사는 서울도시가스가 업무를 위탁한 ‘고객센터’로, 서울시의 관리·감독이 직접 닿기도 어렵다.
이씨를 포함한 서울도시가스 강북5고객센터 노동자 9명은 지난달 격월 검침을 자체적으로 시행했다가 ‘업무 지시명령 미이행’으로 회사 징계위원회에 회부됐다. 지난 11일 회사 징계위에 참석한 이씨는 “서울시 규정이 개정되면서 ‘조금씩 바뀌어 가는구나’라는 생각에 기뻤는데, 정작 현장에서는 격월 검침 시행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고 말했다.
강북5고객센터 관계자는 “(격월 검침을) 안 하겠다는 게 아니라 매일 기온을 체크하면서 시행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격월 검침을 하면 고객들에게 (사용량보다 요금이 많이 나왔다는) 민원이 들어온다”고 말했다. 가스 사용량을 측정할 수 없을 때는 통상 전년 동월을 포함한 전후 1개월, 즉 3개월치 사용량 평균으로 요금을 부과한다.
서울시는 고객센터 노동환경에 직접 개입할 만한 권한이 없다는 입장이다. 서울시는 도시가스 회사에 대한 사업 인허가권을 가지고 있으며, 현재 서울 지역 내 5개 도시가스 회사가 가스 안전점검과 검침 및 송달 업무 등을 총 65개 고객센터 업체에 위탁하고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고용 구조상) 고객센터는 사실상 서울시와 상관없는 회사”라고 말했다.
서울시는 2019년 도시가스 노동자들과 면담한 후 ‘서울특별시 도시가스 공급규정’을 개정해 그 이듬해부터 6~9월 격월 검침이 가능하도록 했다. 이씨는 “서울시가 규정을 바꾼 것은 혹서기 도시가스 노동자들의 업무 환경을 개선하는 게 시급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면서 “시민들에게도 격월 검침 필요성을 알려야 한다”고 말했다.
노동 전문가들은 여름철 도시가스 격월 검침은 인권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고 말한다. 권동희 일과사람 노무사는 “서울시가 도시가스 회사를 인허가할 때 노동자 건강권을 보장하고 있는지 확인하는 절차를 두면 도시가스 회사에서도 위탁업체에 여름철 격월 검침 시행을 강제할 것”이라고 말했다.
강은 기자 ee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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