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준이 교수 대중강연.."순수수학은 경계를 끝없이 넘는 일"
(서울=연합뉴스) 문다영 조현영 기자 = 필즈상을 받은 허준이 고등과학원 석학교수 겸 프린스턴대 교수가 13일 '경계와 관계'라는 제목의 대중 상대 강연에서 자신의 학문적 성과를 소개했다.
허 교수는 이날 서울 동대문구 고등과학원에서 강연하면서 어떤 두 대상의 '관계'를 포착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 둘을 '경계' 짓는 것이 필요하다며, "수학에서 굉장히 비슷한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설명했다.
허 교수는 조합론의 문제를 대수기하학적 방법으로 해결하는 독창적인 방법론으로 올해 필즈상을 받았다.
그는 조합론과 대수기하학이라는 겉보기에 다른 수학 분야들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그에 앞서 경계 짓기가 선행했기 때문에, 그 경계를 포착하고 뛰어넘을 때 두 대상의 관계를 알 수 있게 된다고여러 비유를 들어 가며 설명했다.
그는 수학에 있는 가장 큰 경계가 '이산 수학'과 '연속 수학'이라며, 언어에서도 이와 같은 경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청중에게 일례로 '성문영어'에서 배운 '가산(셀 수 있는, countable) 명사'와 '불가산(셀 수 없는, uncountable) 명사'를 떠올려 보라고 했다.
그는 영어에서 '오렌지'는 셀 수 있는 명사지만 쌀(rice)은 셀 수 없는 명사로 분류된다며, "물체를 나누는 기준은 본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달린 것"이라고 했다.
대수기하학과 조합론 등 서로 다른 수학의 분야는, 본질적으로 다른 것이 아닌 인간이 다르게 인식한 데 따른 분류임을 이해시키고자 언어 구조에 빗대 설명한 것이다.
허 교수는 자신이 연구하는 '호지 구조'가 이와 같은 것이라고 설명하고, "유니버설한(보편적인) 구조를 이해하는 것은 대상에 이름을 붙이고 새로운 경계를 만들고, 그 경계를 부수고 나아가고 다시 새로운 대상에 이름을 붙이는 반복적인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수학의 추측을 해결하고 발견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경계를 끝없이 넘어설 것을 요구하기 때문"며 "이것이 순수수학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중요한 가치"라고 강조했다.
허 교수는 강연을 마치면서 "앞으로 순수수학이나 기초과학을 열심히 하는 연구자에게 꾸준한 관심과 지원을 부탁한다"며 "저도 큰 상을 받고 많은 주목을 받으면서 새로운 역할을 부여받은 만큼 한국 수학계와 한국 사회에서 받은 많은 것들을 돌려드리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강연 전후로는 허 교수의 필즈상 수상과 강연을 축하하는 축사가 이어졌다.
최재경 고등과학원장은 고등학교를 자퇴한 허 교수의 성장 배경을 설명하며 "우리 모두 학교의 극한 경쟁에서 자유로워지자. 선행학습에서 과감하게 탈출하는 혁신을 단행해보자. 공부가 재미없을 땐 자유롭게 시를 쓰듯이 수학에서 한번 재미를 찾아보자"고 제안했다.
금종해 대한수학회 회장은 수학회 관계자가 대독한 축사에서 "(허 교수가) 비록 우회하긴 했어도 천재적 재능이 발현될 수 있도록 (국내 교육과정이) 체계적으로 도와줬단 점에서 한국 대학과 대학원 교육이 제대로 정상 가동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서도 현 교육과정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금 회장은 "시험에 대한 기계적 훈련은 성적을 향상시킬 수는 있지만 학생의 적성개발과 학습 능력 향상에 도움은 안되며 사고의 확장성을 저해하는 최악의 학습법"이라고 지적했다.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아무 조건 없이 연구할 수 있는 그런 환경을 만들어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몰두할 수 있다는 그 자체가 큰 자산이다"는 소감을 밝혔다.
강연 후에 허 교수는 일반인과 학계 관계자 등으로부터 질문을 받고 답했다.
그는 '현재의 자신이 되기까지 운이 얼마나 작용했느냐"는 물음에는 "100%라고 자신 있게 말씀드린다"라고 답해 청중들의 웃음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연구 과정에 있어 도움이 된 제도 등을 묻는 한국연구재단 관계자의 질문에 허 교수는 "마음이 여유로운 상태에서만 아주 순수한 잉여로운 수학이 활짝 필 수 있는 게 아닌가 한다"며 "다른 포닥(박사후연구원)과 비교했을 때 (미국 클레이재단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었던 게 큰 장점"이었다고 했다.
이날 행사에는 부친인 허명회 고려대 통계학과 명예교수, 아내인 김나영 박사, 아들 등 가족도 참석해 강연을 들었다.
zer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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