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948조 운용 '비상'..전주·서울 이원체제 급하다
기금 운용역도 20% 부족
948조 원에 달하는 전 국민 노후자금을 운용하는 국민연금 수장이 석 달째 공석인 가운데 기금 운용역들도 20% 가까이 부족한 것으로 드러났다. 지속적인 금리 상승의 와중에 주식·채권·외환 등 금융시장이 요동치면서 국민연금 운용 수익률이 마이너스를 나타내 특단의 대응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보건복지부 장관이 공석인 상황에서 국민연금 이사장을 조속히 선임하는 한편 기금운용역의 엑소더스를 막기 위해 한국거래소처럼 지역 본사와 서울 본부를 이원화해 ‘운용의 묘’를 살릴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13일 국민연금에 따르면 김용진 전 이사장이 올해 4월 중순 사퇴한 후 이사장 자리가 3개월째 비어 있다. 수장이 없는 가운데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에서는 올 상반기 운용역 14명이 줄사표를 던졌고 1000조 원을 눈앞에 둔 거대 기금은 제대로 운용할 인력도 태부족이다. 실제로 기금운용본부 정원은 3월 말 기준 380명인데 현재 인원은 311명으로 집계돼 20% 가까이 모자란 상태다.
기금운용본부의 한 핵심 관계자는 “본사가 지방에 있는데 민간 금융회사에 비해 처우가 낮아 중견·전문 인력의 퇴사가 잦다” 면서 “제때 실력 있는 후임자를 찾기도 쉽지 않아 고충이 크다”고 토로했다.
해외 근무·파견 늘려도···전주 복귀 싫어 민간운용사로 탈출
허리급 30대 중후반 이탈 줄이어
절반 이상은 해외·대체투자 전문
기금운용 안정성 타격 우려 높아
민간 대비 낮은 보상체계 개선
서울 본부에 운용역 상주 길터야
최근 국내외 증시가 대폭 조정을 받고 글로벌 금리 상승으로 채권 투자마저 손실이 늘면서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의 위기감은 날로 높아지고 있지만 적절한 대응책을 마련할 기본 인력조차 확보돼 있지 않은 셈이다.
기업 데이터연구소인 CEO스코어는 이날 국민연금의 국내 보유 주식 가치 총액이 지난해 말 151조 9173억 원에서 이달 초 121조 8095억 원으로 30조 원가량 감소했다고 밝혔다. 국민연금이 이달 초 공개한 4월까지의 운용 수익률은 -3.79%로 4개월 연속 마이너스이며 상반기 수익률이 확정될 경우 손실 규모는 한층 커질 것으로 우려된다.
우크라이나 전쟁 등 글로벌 복합 위기가 장기화할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국민연금을 안정적으로 운용하려면 전문 인력 확보가 필수인 만큼 줄퇴사의 가장 큰 이유인 지방 근무의 스트레스를 줄이는 것이 어느 때보다 시급해졌다. 금융투자 업계의 한 고위 관계자는 “거래소 본사가 부산에 있지만 서울 사옥에 주요 기능과 인력들을 배치했듯이 국민연금도 전주 본사를 유지하면서 서울 본부를 활성화하면 고급 인력을 쉽게 확보하면서 기금 운용의 전문성도 강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국민연금 본사가 전주로 이전한 지 5년이 됐지만 기금 수익의 핵심인 운용역들의 퇴사는 계속 돼왔으며 올 들어서는 한층 심해지는 양상이다. 기금운용역 부족과 금투 업계 전문가들의 국민연금 근무 기피는 국민 노후에 중요한 연금의 안정성을 흔들 수 있다.
구체적으로 보면 국내 주식과 채권보다 높은 수익률을 기록해온 해외 주식과 채권, 사모 주식과 부동산, 인프라 등 높은 전문성이 요구되는 분야에서 국민연금 운용역들의 이탈이 대거 발생하고 있다. 국민연금의 상황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시장에서 가장 인력 수요가 많은 분야가 해외 및 대체투자”라며 “최근에는 헤드헌팅 업체들이 국민연금 운용역들에게 대놓고 영입 제안을 하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중견 운용역이 전주에서 짐을 싸 서울로 가면 기금운용본부에는 초보 운용역이나 현업에서 한발 물러난 고위직들이 주로 남게 된다.
국민연금이 운용역들을 잡기 위해 고육책으로 내놓은 해외 근무 기회 확대도 운용역 엑소더스를 막을 비책은 되지 못한다. 기금운용본부는 해외나 민간 금융회사보다 연봉이 적고 전주에 상주해야 하는 운용역을 달래기 위해 2020년 이후 해외 근무 기회를 늘린 바 있다.
국민연금이 직접 글로벌 상위 운용사 지분에 투자하거나 공동 펀드를 조성한 후 국내 운용역들을 해외 운용사에 파견해 투자 노하우 습득과 해외 근무라는 당근을 주는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혜택을 받은 인력조차 해외 운용사로 탈출하며 기금운용본부를 허탈하게 만들었다. 기금운용본부의 한 운용역은 “전문 인력의 퇴사는 단순히 한 사람이 빠지는 것만이 아니라 운용사의 인적 네트워크와 투자 경험 등이 약화되는 것”이라며 “해외에도 파견 인력을 늘리는데 서울 근무는 불가능하고 서울 본부에 일부 운용역들이 상주하는 것조차 막는 것은 납득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서울과 전주 간의 왕복 6시간 거리로 투자 업계에서 소외감을 느끼는 운용역도 많다. 수시로 만나면서 투자 아이디어나 정보 등 ‘암묵지(暗默知)’를 쌓을 기회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5월 글로벌 사모펀드 KKR의 고위 관계자가 서울을 찾고 8월에도 칼라일그룹 고위 관계자가 방한할 예정이지만 이들이 전주에서 국민연금을 만날 계획은 없다.
투자 업계에서 실력을 인정받는 미국계 사모펀드인 헬먼프리드먼·어드밴트 등은 국민연금이 더 많은 투자를 할 기회를 갖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물리적 거리만큼 평소 관계를 다질 기회가 없어 접근 자체가 쉽지 않다. 국민연금 관계자는 “글로벌 운용사 관계자들은 한국에 하루 이틀 정도 방문해 수십 곳의 투자 업계 관계자들과 만난다”며 “전주에 있는 직원들이 서울로 가지 않으면 볼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국민연금 안팎에서는 일단 서울에 한 곳뿐인 스마트워크센터를 늘려 서울에서 단기 근무라도 할 수 있게 하면서 처우를 대폭 개선하자는 주장이 제기된다. 연봉의 경우 국민연금 경쟁자인 캐나다연금투자위원회(CPPIB) 최고투자책임자는 30억 원, 캘리포니아공무원연금(캘퍼스)은 10억 원인데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은 최대 5억 원 선에 머물고 있다. 국민연금 출신의 한 투자은행(IB) 업계 관계자는 “지금은 어떻게든 버티고 있지만 인력 이탈 사태가 계속되면 장기 투자 수익에 엄청난 타격을 줄 것”이라고 우려했다.
임세원 기자 why@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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