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 190cm 이창용의 보폭은 컸다..사상 첫 '빅스텝' 내딛기까지

김성은 기자 2022. 7. 13.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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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인플레와 싸울 것" → 5월 "빅스텝 배제 못해" → 7월 '빅스텝' 단행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3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통화정책방향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2022.7.13/뉴스1 © News1 이광호 기자

(서울=뉴스1) 김성은 기자 = 키 190㎝의 장신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대한민국 역사상 유례가 없던 '빅스텝'(기준금리 0.50%포인트(p) 인상)을 마침내 내디뎠다. 한은 금융통화위원회는 13일 기준금리를 종전의 1.75%에서 2.25%로 전격 인상했다.

이 총재가 통화정책 수장 자리에 오르기 이전인 지난 4월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인사청문회에서 "앞으로 몇 년간은 인플레이션과 싸워야 할 것"이라며 물가와의 전쟁을 선포한지 불과 3개월 만의 일이다.

기준금리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역사상 최저점을 찍었던 2020년 5월(연 0.50%)과 비교해 무려 1.75%포인트(p)나 올랐다. 이로써 2014년 8월(2.25%)에나 봤던 기준금리를 7년 11개월 만에 다시 보게 됐다.

이 총재의 큰 키가 새삼스레 조명받는 이유는 그의 행보가 2m의 거구 폴 볼커 전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과 묘하게 겹치기 때문이다.

이 총재와 마찬가지로 볼커 전 의장은 1979년 8월 취임 직후 곧장 인플레이션과의 전쟁에 돌입했다. 기준금리 4%p 인상을 시작으로 과감한 초(超)고금리 정책을 단행했다. 1979년 9월 11.5%였던 미국의 기준금리는 반년 만인 1980년 3월 20%까지 급등했다.

이는 시장에서 가히 '학살'로 표현됐다. 시중 돈줄이 마르면서 주식과 집값이 폭락했고, 곧 기업들의 줄파산과 실업률 폭등으로 이어졌다. 연준 건물로 시위대가 몰려와 군대가 배치됐으며 볼커는 살해 위협까지 받는 상황에 처했다.

경기 침체라는 희생을 치르면서도 볼커 전 의장은 고물가를 잡기 위해 초고금리 정책으로 시장에 충격을 줬으며 결국 인플레이션이 잡히며 미국 경제는 안정 궤도로 접어들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3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본회의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2022.7.13/뉴스1 © News1 사진공동취재단

사실상 이 총재 취임 전부터 인플레이션은 이미 예견돼 있었다. 금통위는 지난 4월 이 총재 없이 치러진 회의에서 기준금리 0.25%p 인상을 결정한 뒤 통방문을 통해 "소비자물가는 당분간 4%대의 높은 오름세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국내 대표적 성장론자로 꼽히던 이 총재 앞에 공교롭게도 볼커 전 의장과 마찬가지의 '매파로서의 길'이 놓여 있었던 셈이다.

이에 그는 4월 인사청문회에서 "물가 상승의 심리가 지금 올라가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좀 인기는 없더라도 시그널을 줘서 물가가 더 크게 올라가지 않는 데 전념하도록 하겠다"는 다짐을 밝히기도 했다.

이 총재가 '빅스텝'을 처음으로 언급한 건 그로부터 대략 한 달 후다.

그는 지난 5월 16일 기자들과 만나 "우리나라 입장에선 데이터가 불확실한 상황이라서 앞으로도 '빅스텝'을 완전히 배제할 수 있느냐를 말씀드릴 수 있는 단계는 아닌 것 같다"며 "앞으로 우리나라 물가 상승이 어떻게 변화할지, 성장률이 어떻게 변화할지를 좀 더 봐야 판단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고강도 긴축 행보에 달러 가치가 오르면서 달러·원 환율이 달러당 1300원을 넘볼 정도로 치솟을 때였다. 금융권에선 이 총재가 시장을 안정시키기 위해 강한 매파적 발언을 내놨다는 분석이 뒤따랐다.

이어서 이 총재는 지난 5월26일 열린 금통위 직후 기자간담회에서 자신의 빅스텝 발언을 두고 "통화정책을 운영할 때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고려해야 한다는 원론적 이야기"라며 한발 물러서긴 했으나 여전히 가능성을 열어뒀다.

물가 상황은 악화일로로 치달았다.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6.0%로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11월(6.8%) 이후 23년7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향후 1년 간 물가상승률 전망을 나타내는 '기대 인플레이션' 역시 지난달 3.9%로 치솟았다. 2012년 4월 이후 10년2개월 만의 최고치다.

이에 따라 이 총재의 빅스텝 발언은 두 달도 채 되지 않아 현실이 됐다.

이 총재는 0.50%p 인상을 만장일치로 결정한 이날 금통위 직후 기자간담회에서 "물가가 6%대의 높은 수준, 특히 근원 인플레이션이 4%대까지 가는 상황은 경기와 관련 없이 너무 높은 수준"이라며 "고물가 상황이 고착화하는 것을 막는 것이 우선이기에 물가 중심 통화정책을 운용해야한다"고 강조했다.

© News1 김초희 디자이너

시장에선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오는 26~27일(현지시간) 열리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0.75%p 올리는 '자이언트 스텝'을 밟을 것으로 예상되는 점 또한 우리나라 '빅스텝'을 지지하는 근거로 꼽는다.

현재 우리나라 기준금리는 연 2.25%로 미국의 기준금리 상단(연 1.50~1.75%)보다 높지만, 연준이 자이언트 스텝을 택하면 2.25~2.50%로 오르면서 한·미 기준금리가 곧바로 역전된다.

이에 따른 달러·원 환율 추가 상승 압력까지 감안하면 '빅스텝'이 불가피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게다가 13일(현지시간) 발표될 미국의 '6월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최고 9%로 치솟을 것으로 예상되면서 일각에선 연준이 0.75%p를 넘어 1.00%p의 금리인상을 단행할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최근 라파엘 보스틱 애틀랜타 연은 총재는 1.00%p 금리인상 가능성에 대해 "인플레이션 수치가 연준 목표 2%에서 훨씬 더 멀어지거나 장기 기대 인플레이션이 오르면 더 공격적인 금리인상도 검토할 수 있다"라고 언급했다.

장신의 이 총재가 당분간 매파의 길을 계속 걸을 것으로 예상되는 대목이다. 다만 그는 "당분간 금리는 0.25%p씩 점진적으로 인상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고 있다"면서 향후 물가 흐름에 특별한 변수가 없는 한 빅스텝이 이번 한 번에 그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 4월25일 중구 세종대로 한국은행 브리핑룸에서 열린 기자단 상견례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22.4.25/뉴스1 © News1 사진공동취재단

sekim@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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