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행 깨고 근황 알린 이준석.."광주와 약속, 조금 늦어질 뿐 잊지 않을 것"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당 중앙윤리위원회의 징계 결정 6일째인 13일 잠행을 깨고 근황을 알렸다. 이 대표는 전날 광주에서 청년당원들과 만나 당원 가입 확대를 강조한 데 이어 이날 무등산에 올랐다. 이 대표는 “광주에 했던 약속들(의 실현)”이 “조금 늦어질 뿐 잊지 않겠다”고 밝혔다. 대표 임기 중 주력해 온 2030·호남에 대한 공로와 영향력을 강조하며 6개월 간의 당원권 정지 기간 후 대표 복귀 의지를 피력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이 대표는 이날 낮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광주 무등산 서석대에 있다고 알리며 등반 사진 7장을 올렸다. 박유하 수행팀장과 국민의힘 광주시당 소속 청년당원 등이 동행했다. 이 대표는 “원래 7월에는 광주에 했던 약속들을 풀어내려고 차근차근 준비 중이었는데 광주시민들께 죄송하다”며 “조금 늦어질 뿐 잊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 대표는 “앞으로도 무등산의 자락 하나하나가 수락산처럼 익숙해질 때까지 꾸준히 찾아와서 오르겠다”고 썼다. 이 대표는 대선 기간인 올해 2월에도 무등산을 등반했다.
광주시민들께 죄송하다…무등산, 꾸준히 찾아와서 오르겠다
-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 무등산 등반 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
이 대표는 지난 12일 밤에는 광주 동구 동명동 번화가에서 박 팀장과 함께 국민의힘 광주시당 박근우 대학생위원장·박진우 청년위원회 부위원장 등 광주지역 청년당원 3명을 3시간가량 만났다. 식사를 겸해 주로 가벼운 얘기를 나눴지만 호남지역 청년당원 확대 등에 관한 대화로 이어졌다고 한다. 한 참석자는 통화에서 “왜 호남에서 우리 당에 대한 거부 정서가 강한지 서로 얘기를 나눴다”며 “(이 대표가) ‘호남지역에서 당원을 더 모았으면 좋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징계 당일인 8일과 11일에도 SNS에 당원 가입 권유 글을 올렸다. 다른 참석자는 “(이 대표가) 윤리위 징계나 앞으로의 상황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이 대표가 최근 서울 노원구 자택을 찾지 않으면서 서울을 떠나 지역에 있을 거라는 얘기가 있었지만, 근황을 직접 공개한 것은 처음이다. 이 대표는 징계 당일 불복을 시사했지만 이후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이 대표가 이날 침묵을 깨고 광주 방문 사실을 알린 것은 향후 행보와 관련해 시사점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광주시민들에게 한 약속 실현이 “조금 늦어질 뿐 잊지 않겠다”고 한 것은 여당 일각의 자진사퇴 요구를 일축하고 복귀 의지를 피력한 것으로 보인다. 자신이 대표로서 힘쓴 청년 당원 확대·서진정책에 대한 공을 강조하면서 향후 이를 무기로 당내 영향력을 확대하겠다는 의도로도 읽힌다. 지난해 6월 이 대표 취임 후 국민의힘 책임당원은 20만명에서 80만명 수준으로 크게 늘었다.
이 대표가 징계에 대한 직접 비판을 피한 채 근황을 알리는 방식으로 여론전에 나선 것은 이 대표가 쓸 수 있는 카드가 많지 않아서다. 국민의힘은 징계 3일 만인 지난 11일 의원총회를 열어 권성동 원내대표의 당대표 직무대행 체제를 선언하며 갈등을 일단 빠르게 봉합했다. 이 대표가 징계 결정 후 10일 이내에 윤리위에 재심을 청구할 수 있지만 윤리위원 구성과 사실관계가 그대로여서 별 의미가 없다. 법원에 징계 처분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할 수 있지만 정치적 사안인데다 절차적 하자를 입증해야 해 받아들여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 가처분 신청 기각 시에는 당내 사퇴 여론에 불을 지필 수 있다. 율사 출신의 한 국민의힘 중진의원은 “본안 소송(징계 처분 취소 소송)은 이 대표가 이길 가능성이 좀 더 있지만 시간이 오래 걸려 실효성이 적다”고 말했다.
이 대표가 살아돌아오기 위한 전제조건은 수사에서 무혐의가 나오는 것이다. 이 대표가 성비위뿐 아니라 관련 증거인멸교사 혐의도 부인하고 있는 만큼 이 대표 측은 무혐의 처분 가능성을 기대한다. 이 경우 이 대표는 생환해 정계에 복귀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무혐의 처분 시기에 따라 대표직에 복귀할 수 있다. 반면 검찰 기소와 유죄 판결로 이어지게 되면 정치생명에 치명타를 입는다. 이 대표의 당원권 6개월 정지가 대표의 일시적 ‘사고’가 아닌 ‘궐위’ 상태로 해석돼 조기 전당대회 개최 가능성이 커진다. 기소되지 않더라도 ‘공소시효가 지났지만 성상납이 있었던 것으로 의심된다’는 수준의 수사결과만 나와도 정치적으로 탄핵될 수 있다. 유상범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 11일 초선모임에서 비공개 회의 전 “기소가 나오면 (윤리위) 징계를 다시 해야 한다”며 추가 징계 가능성을 언급한 사실이 알려지기도 했다.
이 대표가 쓸 수 있는 유력한 수단은 여론이다. 이 대표에게 우호적인 당내 인사들은 여러 경로를 통해 이 대표에게 일단 윤리위 결정을 수용하고 후일을 도모할 것을 설득해 왔다. 한 국민의힘 의원은 “언론에 너무 자주 나가 당 인사들을 공개 저격하는 그간의 방식은 지양하는 게 좋겠다는 뜻을 이 대표에게 간접적으로 전달했다”며 “6개월 동안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이 대표만의 강점을 드러내는 방식이 바람직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2030 남성을 중심으로 당원 가입을 확대함으로써 당내 입지를 확고히 하는 것도 이 대표의 무기다. 1000원씩 석 달만 당비를 내면 책임당원이 돼 당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있기 때문에 이 대표를 지지하는 당원 유입은 차기 당권의 향방을 결정할 수 있다. 당권 주자들이 이 대표에게 우호적으로 나올 수밖에 없다. 이 대표가 징계 이후 탈당이 아닌 당원 가입 확대에 나섬으로써 기존 당원들을 당에 묶어두는 효과도 있다.
정대연 기자 hoan@kyunghyang.com, 문광호 기자 moonli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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