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소 세계 1등" 尹대통령 공약에도.."세수 감소 때문에 곤란" 파격적 세제 지원 '딜레마'

세종=전준범 기자 2022. 7. 13.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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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정부, 지난해 말 "수소 국가전략기술 지정 검토"
尹정부 국정과제에도 '세계 1등 수소 산업' 담아
기재부 세제실 "지정 신중해야" 180도 바뀐 태도
수소 연구 예산도 '찔끔' 정책 엇박자에 기업 불안
5월 25일 서울 종로구 포시즌스 호텔에서 개최된 세계수소산업협회연합(GHIAA) 총회에서 초대 의장을 맡은 문재도 H2 코리아 회장이 기념사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수소 관련 기술 등 국가 경제‧안보 차원에서 전략적 육성이 필요한 기술을 선별해 국가전략기술로 지정하는 방안을 지속해서 검토하겠다.

2021년 12월 '2022년 경제정책방향'
안정적인 청정수소 생산·공급 기반을 마련해 세계 1등 수소 산업을 육성하겠다.

2022년 5월 '윤석열 정부 110대 국정과제'

기획재정부는 지난해 12월 발표한 ‘2022년 경제정책방향’에서 “2022년을 수소경제 전환의 원년으로 삼겠다”면서 수소를 국가전략기술에 포함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했다. 윤석열 정부도 올해 5월 발표한 110대 국정과제에 ‘세계 1등 수소 산업 육성’이라는 표현을 넣어 정권 교체와 무관하게 수소 산업 지원에 관한 국가적 의지를 이어가겠다는 뜻을 밝혔다. 국내 주요 대기업은 이런 정부를 믿고 수소 산업에 수십조원을 투자했다.

하지만 정권 교체 후 수소 산업을 대하는 정부 태도는 대외적 선언과는 뚜렷한 온도 차를 보인다. 불과 7개월 전 수소 산업의 국가전략기술 지정을 검토하겠다던 기재부가 “세수에 큰 영향을 준다. 신중할 수밖에 없다”며 국가전략기술에 수소를 포함하지 않은 게 대표적인 장면이다. 정부의 장밋빛 세제 혜택 예고에 큰 기대감을 안고 수소 투자 규모를 확대해 나가던 산업계는 적잖이 당황한 모습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7월 13일 서울 중구 신라호텔에서 열린 아시안리더십콘퍼런스에 참석해 축사하고 있다. / 연합뉴스

◇ 국가전략기술 검토한다더니…“세수 영향, 신중해야” 말 바꿔

13일 정부에 따르면 우리나라 조세정책을 총괄하는 기재부 세제실은 수소를 국가전략기술로 지정하는 것에 대해 반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현재 국가전략기술에 포함된 기술은 반도체·배터리·백신 등 3대 분야다. 기재부 관계자는 “국가전략기술은 세액 공제율이 높다. 국가 재정을 관리하는 부처로서는 (국가전략기술 추가 지정을) 보수적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다”고 했다.

수소는 국가전략기술보다 세제 혜택이 적은 신성장·원천기술에 들어가 있다. 대기업 기준 신성장·원천기술의 세액 공제율은 R&D 20~30%, 시설 투자 3~6%다. 국가전략기술의 세액 공제율은 R&D 30~40%, 시설 투자 6~10%(새정부 경제정책방향 반영시 8~12%)다. 만약 국가전략기술에 포함된다면 수소에 대한 세액 공제율은 최대 4배가량 확대된다.

정부는 지난달 16일 발표한 ‘새정부 경제정책방향’을 통해 현행 6~10% 수준인 대기업의 국가전략기술 시설 투자 세액 공제율을 중견기업 혜택 수준인 8~12%로 상향 조정한다고 했다. 당시 정부가 수소를 국가전략기술에 포함하겠다고 한 건 아니지만, 수소 산업에 진출한 국내 많은 기업의 기대감은 한층 높아졌다. 작년 말 정부의 약속이 유효하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정부는 작년 12월 20일 발표한 ‘2022년 경제정책방향’에서 “수소 관련 기술 등 국가 경제와 안보 차원에서 전략적으로 육성할 필요가 있는 기술을 선별해 국가전략기술로 지정하는 방안을 지속해서 검토하겠다”고 했다. 전략 산업, 탄소중립 대응 등 미래 대비 투자에 관한 인센티브를 확충하겠다면서 ‘수소’를 콕 집어 예로 든 것이다.

그러나 수소를 국가전략기술에 포함할지를 두고 반년 사이 정부 태도는 180도 달라졌다. 정부는 이달 5일 발표한 ‘새정부 에너지정책 방향’에서 수소를 국가전략기술로 지정하는 방안을 발표하지 못했다. 산업부 측에서 2022년 경제정책방향과 윤석열 정부 국정과제 등을 근거로 수소를 국가전략기술에 넣어줄 것을 기재부에 요청했지만, 조세 정책을 관장하는 세제실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안팎에서는 법인세 최고세율을 25%에서 22%로 낮추겠다고 예고한 기재부가 수소까지 국가전략기술로 지정할 경우 법인세수가 예상보다 더 많이 감소할 것을 우려해 반대 입장을 명확히 하는 것이란 말이 나온다.

조선 DB

◇ 국가전략기술 불포함에 연구 예산은 뒷걸음질

정부는 정권 교체 이후 수소 산업을 외면하는 것도 모자라 산업 육성에 필요한 총알도 충분히 책정하지 않았다. 지난달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확정한 2023년도 국가연구개발사업 예산 배분·조정안을 보면, 수소 생태계 조성 관련 R&D 예산은 2908억원에 불과하다. 전년 대비 0.5%(13억원) 증가하긴 했지만, 물가 상승률 등을 고려하면 사실상 감소한 것이나 다름없다.

앞서 올해 2차 추가경정예산(추경)안에서도 정부는 수소차 보급과 충전소 설치 관련 사업 예산을 기존 대비 2250억원(25.2%)이나 삭감했다.

경제부처의 이런 정책 추진 방향은 윤 대통령의 행보와 사뭇 다르다. 윤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이던 지난해 12월 전북 지역 첫 행선지로 수소 특화 국가산업단지를 택했다. 지난달 28일(현지시각)에는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정상회의 참석차 방문한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첫 일정으로 그린수소 강국인 호주의 앤서니 앨버니지 총리와 회담을 했다. 이 자리에서 윤 대통령은 호주 그린수소 프로젝트에 한국 기업이 동참하길 원한다는 입장을 전했다. 그린수소는 생산 과정에서 이산화탄소가 배출되지 않는 청정 수소다.

국내 에너지 업계 고위 관계자는 “한국은 그린수소·블루수소 등 친환경 미래 수소 기술 기반이 워낙 취약해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절실하다”며 “더욱이 호주 같은 그린수소 선진국과 협업하려면 정부가 해당 산업을 지속해서 키우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줘야 한다”고 했다.

기재부 관계자는 “각 산업군의 이해관계가 다르고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도 다르다”며 “국가전략기술 자체가 이제 막 도입된 제도인 만큼 업계 영향을 관찰하면서 신중하게 추진해야 한다”고 했다.

7월 6일 서울 중구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린 '코리아 H2 비즈니스 서밋 2022 인베스터데이' 행사에서 수소펀드 조성지원 업무협약(MOU) 체결식이 진행되고 있다. / 연합뉴스

◇ 정부 믿고 수소 투자한 기업은 불안 증폭

결국 이런 상황의 피해자는 정부의 비전 제시를 믿고 거액을 쏟아부은 기업이다. 국내 건설사 상당수가 탄소중립 실현과 사업 포트폴리오 확대를 위해 청정수소 사업을 준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례로 SK에코플랜트는 호주 등 해외에서 태양광 발전을 하고 거기에서 생산된 전기로 물을 분해(수전해)해 청정수소를 생산하는 사업을 준비 중이다. 삼성물산(건설부문)은 청정수소 생산부터 유통에 이르는 인프라 구축을 구상하고 있다.

또 한화건설은 현대차증권·삼성자산운용 등과 함께 국내 최초로 폐수 슬러지(침전물)에서 탄소 배출 없이 수소를 생산하는 ‘수소 생산 플랜트’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GS건설은 그린수소 플랜트를 모듈로 만들어 미국 기업 ‘SG H2 에너지’에 공급하기로 했다. 현대엔지니어링은 국내 벤처기업 AAR과 손잡고 ‘암모니아 분해 수소 생산 시스템’ 개발과 상용화를 추진 중이다.

이처럼 미래 먹거리 선점에 사활을 거는 기업과 달리 정부는 정권 교체 이후 태도를 바꾼 것이다. 여기에 국회도 ‘수소 경제 육성 및 수소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수소법)’ 처리에 굼뜬 모습을 보이며 기업 속을 태웠다. 수소법은 지난해 7월 상정된 뒤 1년 가까이 묵혀 있다가 올해 5월 간신히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법안소위와 본회의를 통과했다.

현대차·SK 등 16개 기업이 참여하는 ‘코리아 H2 비즈니스 서밋’은 수소법 개정안이 한창 계류 중이던 지난해 12월 21일 호소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당시 기업들은 호소문에서 “기업은 사활을 걸고 있지만, 제도적 뒷받침은 미약한 상황이다. 그나마 가장 먼저 진행되는 수소법 개정안은 국회 상임위원회 문턱조차 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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