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예한 갈등 떠들썩했지만 조용히 사라진 언론중재법 개정안
국회 언론미디어 특위 종료 이후, 언론피해구제법령 개정논의 향후 과제는
[미디어오늘 정철운 기자]
국회 언론미디어제도개선 특별위원회가 5월24일 활동을 종료했다. 지난해 9월29일 특위 구성의 시발점이었던 언론보도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에 대해선 아무 결론을 내지 못했다. 수 개월간 특위가 공전하는 가운데 '언론탄압'과 '가짜뉴스 방지' 프레임은 지면과 화면을 통해 반복됐고, 그 속에서 '피해구제' 논의는 사라졌다. 아무것도 달라진 것은 없지만, 국회나 언론계 모두 모든 게 끝난 분위기다.
윤여진 언론인권센터 상임이사는 13일 국회에서 열린 언론인권포럼에서 “지난해 언론중재법 개정안 발의 당시 민주당이 피해구제가 아닌 가짜뉴스 방지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저항이 있었다”고 밝힌 뒤 “지난해 9월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본회의에 상정되지 않았을 때, 징벌적 손해배상 법안 처리가 이미 요원한 것 아니냐, 법안 통과 의지가 없는 것 아니냐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어 “언론이 책임 있는 표현의 자유를 구현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식의 자율규제 활성화로 피해구제 논의가 마무리된 것은 많이 아쉽다”고 밝혔다.
윤여진 상임이사는 언론계에도 아쉬움을 드러냈다. “2004년에도 징벌적 손배제 논의가 있었는데, 언론은 공직자 비리를 파헤치기 어렵고 기득권에 악용될 수 있다고 주장했는데 2021년에도 같은 이유로 반대했다”고 꼬집었다. 이어 “언론은 디지털 환경에서 보도 피해의 심각성을 외면하고 있다. 자율규제 기구로 언론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보도 피해 배상액은 여전히 너무 낮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국민의힘은 지난해 민주당 법안에 반대만 했는데, 이제는 집권여당이 된 만큼 책임있게 피해구제 문제를 해결할 의무가 있다. 이 문제는 정파의 문제가 아니다”라며 새 정부에서도 논의가 이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언론계가 내놓은 대안은 통합형 자율규제기구다. 기구는 언론단체들이 공동 설립하고, 분쟁처리를 담당하는 자율조정인(옴부즈퍼슨)과 규약위반을 담당하는 자율규제위원회로 구성한다. 자율조정인은 규약을 위반한 언론사에 시정을 요구할 수 있고 한 달 안에 모든 처리가 이뤄질 수 있도록 한다. 규약 위반의 경우 정정, 노출중단, 사과 등 시정조치를 요구할 수 있고, 중대한 규약 위반에는 언론사에 제재금까지 부과할 수 있다.
언론계는 통합형 자율규제기구의 실효성 확보 방안으로 △자율규제준수 인증 추진 △각종 언론상과의 협력 체계 구축 △각종 공적 기금 지원 관련 인센티브 체제 △정부광고 배정 관련 인센티브 △포털 등 외부 기업 및 기관과의 협력 체제 구축을 꼽았고, △방송통신심의위원회와의 중복규제 개선 △언론중재위원회와의 중복 개선 등을 제시했다. 그러나 윤석열 대통령부터 자율규제기구에 명확히 반대 입장을 밝힌 상태여서 실현 가능성은 희박하다.
심영섭 경희사이버대 미디어영상홍보학과 겸임교수는 “매체별로 칸막이를 만들어놓은 자율규제기구를 통합하자는 논의가 통합형 자율규제기구 논의로 이어졌으나 자율규제 강화를 위해선 많은 권한을 기구에 위임할 수 있어야 한다. 재원 독립도 중요하고 서약사들이 의무를 준수하겠다는 것이 협약으로 명확히 만들어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심영섭 겸임교수는 “자율규제기구는 결국 이행이 중요하다. 행정규제기관과의 협치도 중요하다. 그게 안 되면 이중규제기관이 되어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내다봤다.
김동훈 한국기자협회장은 “민주당의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졸속으로 만들었다. 이런저런 의견에 법을 고치다 누더기가 되었다. 위헌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받았다. 요즘은 언론사주들이 기사를 잘못 쓰면 기자들에게 구상권을 청구한다. 일선 기자들은 (법안이 통과되면) 현장에서 공격적 발제가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며 “실익은 없고 언론만 위축시키는 법안이었다”고 총평했다. 이어 “기자 혐오 사이트가 생겼다. 기자들의 인권이 땅에 떨어졌다. 또 다른 폭력에 대해서도 봐달라”고 했으며 “강력한 자율규제기구만이 답이다. 논의에 성과가 없어서 우리도 답답하다. 재원이 없다. 조직도 없다”고 밝혔다.
양재규 언론중재위원회 심의실장(변호사)은 “언론중재법 논의과정을 보며 답답하고 아쉬웠다. 가짜뉴스 폐해 방지와 언론자유 침해 프레임에 갇혀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양재규 실장은 이 같은 프레임을 가리켜 “각각의 입장을 관철하기 위한 일종의 구호로 느껴졌다”고 했으며 “(언론계가 강조하는) 강력한 자율규제기구라는 말도 모순적인 것 같다”고 지적했다.
김동찬 언론개혁시민연대 정책위원장은 “빈손 특위라는 비판은 타당하지만,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촉발한 사회적 논의의 성과는 적지 않았다”며 “향후 제도개선 논의의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징벌적 손해배상 도입 논의는 중단하고 위자료 현실화 논의는 계속해야 한다. (언론관련 법안은) 속도전보다 충분한 숙의 과정을 요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심영섭 겸임교수는 “점점 언론의 영역을 구분하기 어려워진다. 가세연은 언론 역할을 하지만 신문법상 언론은 아니다. 언론의 경계선에 있는 매체에서 더 많은 피해가 발생하고 있는데 손을 대지 못하고 있다”며 이에 대한 법제도 개선 논의도 필요하다고 했다.
김준현 언론인권센터 미디어피해구조본부장(변호사)은 “민주당의 정치적정책적 능력 부족과 언론계의 적극적 반대로 (법안이) 무산된 것이 굉장히 아쉽고, 엉터리 저항 때문에 징벌적 손해배상제의 전체 취지가 몰각되었던 건 아닌지 고민해야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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