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in포커스] 내전승리 이끈 스리랑카 대통령, 굴욕의 해외 도피

강민경 기자 2022. 7. 13.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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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타바야 라자팍사, 군용기 타고 몰디브로 도피
20여년 지속된 라자팍사 가문 족벌정치의 종말
고타바야 라자팍사 스리랑카 대통령(가운데) ⓒ 로이터=뉴스1 ⓒ News1 강민경 기자

(서울=뉴스1) 강민경 기자 = 무려 26년간 이어진 내전에 종지부를 찍어 '싱할라족의 영웅'으로 불리던 군인.

압도적인 지지로 대통령에 올랐지만 결국 경제 파탄에 대한 전 국민적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해외 도피'라는 불명예 퇴진을 선택했다.

고타바야 라자팍사(73) 스리랑카 대통령은 13일(현지시간) 부인과 경호원 2명을 데리고 군용기를 통해 몰디브로 도피했다. 로이터통신은 정부 소식통을 인용해 그가 몰디브 수도 말레로 향했지만 곧 다른 아시아 국가로 이동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굴욕의 도피…민항기 이용도 막혀 결국 군용기로

사상 최악의 경제 위기를 겪고 있는 스리랑카에서는 지난 9일부터 대규모 반정부 시위대가 대통령 관저와 집무실을 점거하기 시작했다.

신변에 위협을 느낀 고타바야 대통령은 시위대를 피해 수도 콜롬보 인근 공군기지로 피신했고, 국회의장에게 13일에 사임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처음에 그는 민영 항공기를 타고 아랍에미리트(UAE)로 향하려 했으나, 이민국 관리들에게 가로막혀 네 번이나 탑승에 실패한 것으로 알려졌다.

라자팍사 대통령의 막내 동생이자 한때 재무장관을 지냈던 바실도 두바이행 여객기에 타는 데 실패했다. 이민국 관계자는 "법에 따라 현직 대통령의 출국을 막을 수 없다"고 말했다.

12일(현지시간) 해외로 도피한 고타바야 라자팍사 스리랑카 대통령 관저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스리랑카 정부는 지난 4월 '일시적 디폴트'를 선언했으며 반정부 시위대는 약 18년간 독재를 이어온 라자팍사 가문의 부패를 국가 부도의 원인으로 지목해 정권 퇴진을 요구해왔다. ⓒ AFP=뉴스1 ⓒ News1 유민주 기자

◇라자팍사 가문의 흥망성쇠

고타바야 대통령을 비롯한 라자팍사 가문은 2005년부터 약 20년간 스리랑카 정계에서 지배적인 위치를 점해 왔다.

형인 마힌다 라자팍사는 대통령과 총리를 지내며 20년 가까이 스리랑카를 통치했다. 마힌다의 아들은 비서실장을 지냈고, 형 차말과 동생 샤신드라, 바실도 내각을 꿰차고 있었다.

반면 고타바야는 21세에 군에 입대해 20년간 복무해 중령까지 승진한 인물이다. 그는 조기에 은퇴하고 미국에 가서 정보기술 분야에서 일했다.

정치와 거리를 두던 그가 정계에 발을 디딘 건 2005년 마힌다 전 대통령이 그를 국방장관으로 임명하면서다. 고타바야는 당시 타밀족 반군과의 전쟁을 지휘했다.

고타바야 라자팍사 스리랑카 대통령. ⓒ AFP=뉴스1 ⓒ News1 정윤영 기자

그는 2009년 내전을 정부군의 승리로 끝맺으면서 스리랑카의 주류 민족인 싱할라족 불교 신자들에게 전쟁 영웅으로서 추앙을 받았다. 하지만 반군과의 전투 과정에서 4만여명의 민간인을 학살했다는 의혹을 받고, 국제사회로부터 큰 질타를 받았다.

내전 중에 살해와 고문, 실종 등 타밀족의 인권을 침해하는 등 전쟁 범죄를 저질렀다는 꼬리표 또한 따라다녔다.

이후 2015년 대선에서 형 마힌다가 패배하자 라자팍사 가문의 통치는 종식되는 듯했다.

하지만 2019년 4월 수도 콜롬보 시내의 성당과 호텔 등지에서 연쇄적으로 '부활절 테러'가 일어나고 그 배후로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가 지목됐다.

이때 고타바야는 내전 당시 자신이 구축한 정보망을 스리랑카 정부가 해체했다면서 신랄하게 비판했고, 국가 안보의 중요성을 환기하며 싱할라족을 결집했다.

그 결과 고타바야는 2019년 11월 대선에서 큰 차이로 승리를 거뒀고, 형 마힌다를 총리직에 임명하고 형제와 조카들을 내각에 등용하는 등 '족벌 정치'를 다시 시작했다.

12일 스리랑카 대통령 관저를 점령한 시민들. ⓒ 로이터=뉴스1 ⓒ News1 강민경 기자

◇빚더미 속 코로나19 사태까지…스리랑카의 파산

라자팍사 가문은 사회기반시설 투자에 나서는 등 나름대로의 경제 활성화 정책을 폈지만 그 과정에서 천문학적인 외채를 끌어다 쓰며 스리랑카 경제는 취약해졌다.

여기에 코로나19의 대유행까지 겹치면서 주요 산업인 관광업까지 휘청이고 생필품의 공급도 어려워졌다. 물가가 폭등하는 가운데 고타바야 대통령은 민심을 잠재우기 위해 감세 정책을 펼치며 국가 재정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안 그래도 높은 물가는 올해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더 폭등해 스리랑카는 사상 초유의 경제 위기에 들어섰다. 지난 4월에는 일시적 디폴트(채무불이행)을 선언했고 다음달에는 공식적으로 디폴트 상태에 접어들었다. 지난 5일에는 라닐 위크레메싱게 총리가 '국가 파산'을 인정하기에 이르렀다.

분노한 시민들은 우르르 거리로 쏟아져 나와 "대통령은 퇴진하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시위대는 대통령 관저와 총리 자택까지 점거하고 이들의 사퇴를 촉구했다. 이들은 최루탄과 물대포에도 아랑곳 않고 경제 파탄의 책임을 정부에 물었다.

압박에 못 이긴 고타바야 대통령은 마침내 해외 도피라는 결말을 선택했고, 라자팍사 가문의 족벌 정치는 파국으로 끝났다.

마힌다가 사라진 텅 빈 총리 관저를 돌아다니던 시위자 말라와라 아라크치(73)는 로이터 인터뷰에서 "언젠가는 이런 일이 일어나야 했다. 그는 사람들로부터 모든 것을 빼앗았다. 라자팍사 가문이 사라지면서 스리랑카는 조만간 최고의 나라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pasta@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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