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수첩] 장교 임관 한 달 만에 사망한 최승균 소위, 그리고 37년 뒤 밝혀진 진실
-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의 결정문, 교관들의 구타 및 가혹행위로 고 최승균 소위의 사인을 ‘과로사’에서 ‘신체적, 정신적 스트레스에 의한 ’급성 심장사‘로 변경 - 교관들의 ‘타깃’이 된 최 소위와 훈련이란 명목 아래 고문과 같았던 가혹행위를 증언한 46명의 목격자들
12일 밤 PD수첩 <동생의 죽음, 그리고 46명의 목격자 – 故 최승균 소위 사망사건>에서는 학군장교(ROTC)로서 1984년 순직한 최승균 소위의 죽음에 대해 취재했다. 2018년 9월 대통령 소속으로 발족한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결정문(2021년)에서는 최 소위의 사인을 ‘과로사’가 아닌 ‘쇼크사’, 신체, 정신적 스트레스에 의한 ‘급성 심장사’로 인정했다. 최 소위의 누나 최정은 씨는 그때 당시 가족 모두 동생의 시신을 보지 못했다고 말한다. 최씨는 진상규명 위원회의 결정문을 통해, 동생에게 일어난 사건이 무엇인지 37년 만에야 명확하게 알 수 있었다.
2019년 10월 30일경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 앞으로 도착한 자필 진정서. 1984년 육군 보병학교에서 유격훈련 중 사망한 동기의 사건을 다시 조사해달라는 내용. 진정서 내용을 바탕으로 당시 훈련기간 중 사망한 장교가 있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바로 최승균 소위. 최 소위의 사망사건은 재조사에 들어갔지만 관련자들은 모두 전역한 상황. 조사관은 중대원 200여 명의 소재를 파악해 편지를 보내 70여 명에게 답장을 받고 46명의 사람들에게 구체적인 진술을 들을 수 있었다. 바로 동복유격장에서 있었던 강도 높은 얼차려와 빈번한 구타, 가혹행위에 대한 진술이었다.
38년 전 그들은 육군 전투병과학교에 입교해 초군과정 이수중이었다. 광주 상무대에서 전라남도 화순군에 있는 동복유격장까지 54km의 행군 길. 해발 1,187미터의 무등산을 넘어 행군하던 중 최 소위는 발목을 다쳐 남들처럼 뛸 수 없었다는 이귀한 고 최승균 소위 동기. 문제의 사건이 벌어진 건 그날 오후. 박희정 동기는 최 소위가 더러운 ‘잔반통물’ 이른바 ‘선녀탕’이라 불리는 곳에 들어가 얼차려를 받게 됐다고 전했다. 체력과 정신이 한계에 다다른 상태였다는 그. 교관에게 사정없이 구타를 당하던 최 소위가 옆에 있던 돌을 집어 들었다는 이귀한 동기의 진술. “저는 목격자잖아요. 그 친구가 누워있는 상태로 벽돌을 끌듯이 뒤로 멀었어요.” 그가 보기에 그만 때리라는 행동에 불과해 보였다는 것. 하지만 인근에서 테니스를 치던 유격대장이 이 광경을 목격했고 최 소위에 대한 집중 훈련을 지시했다. 일종의 ‘타깃’이 된 것.
첫날 쇠파이프와 몽둥이로 밤새 얻어맞은 최 소위. 다음 날 유격 훈련에 나오지 못했다고 했다. 신원호(가명) 동기는 유격 교관이 아파서 못 나온 최 소위의 목에다 포승줄을 매고 질질 끌고 다녔다고 증언했다. 교관들의 가혹행위가 고문에 가까웠다는 신유현 동기. “교관이 최 소위 발을 밧줄로 묶어 나무에 거꾸로 매달고 곡괭이 자루와 군화 신은 채로” 사정없이 때렸다고 말했다. 비명도 못 지르고 맞았다는 최 소위. 밤마다 최 소위의 상태를 살폈다는 김태균 동기는 “여기(머리) 빼고요 전부 시커매요. 목에서부터 발바닥까지 흰색이 하나도 없었다”라고 밝혔다. 1주 차 훈련이 끝나는 4월 7일 홀로 사열대 앞에 앉아 있던 최 소위는 훈련을 마친 동기들이 복귀할 무렵 정신을 잃고 쓰러져 병원으로 이송되던 중에 사망했다. 하지만 군은 최 소위가 원래 몸이 약했다며 힘든 유격을 견디지 못해 ‘과로사’ 했다고 결론을 내렸다.
고 최승균 소위와 고등학교 시절부터 장교 임관까지 함께한 ROTC 22기 박형순. 그는 친구의 죽음이 과로사로 둔갑된 것에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그는 사망 이후 이뤄진 헌병대 조사에 불려가 친구의 부검 사진을 보게 됐다고 말했다. “하반신 부위, 엉덩이, 허벅지 이런 곳이 다 까매요” 그는 헌병에게 최 소위는 맞아서 죽은 거니까 진실을 밝혀야 한다고 당시 진술했다. 육군 보병학교에서도 대대장 중령이 나와서 철저한 조사를 약속했다고 밝힌 이진호(가명) 동기. 하지만 그의 사체검안서에 기재된 사인은 <청장년급사증후군>. 이호 전북대 법의학교실 교수는 “건강했던 청, 장년이 자다가 원인 불명으로 사망해 부검에도 질병이나 약, 독물이 나오지 않은 상태. 원인은 모르고 그 나이대가 수면 중 돌연히 사망”하는 증후군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오히려 최 소위의 경우 구타로 인한 사망이라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주장. “피부 피하에 멍이 들어요. 맞다 보면 혈액이 지혈이 안 되고 응고장애가 발생하면서 퍼져버려요. 그 출혈량으로 사망”을 한다는 것. 하지만 사실을 입증할 부검감정서와 최 소위의 친구가 봤다는 부검 사진이 서류에선 보이지 않았다. 송보원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 조사관은 조직에 대한 감정만 있고 멍이라든가 시반 반응을 담은 내용과 사진이 없었다고 설명했다. PD수첩 제작진은 당시 동복유격장에 방문했던 ROTC 선배와 통화할 수 있었다. 그는 최 소위가 사망한 4월 7일. 그날 그는 혼자 텐트에 있었고 한눈에 보아도 상태가 심상치 않아 보였다고 했다. “걔가 나를 보고 말을 제대로 못 하더라고요” 그는 군의관에게 후송을 요청했지만, 군의관은 유격대장의 명령으로 후송은 불가능하다고 거절했다고 밝혔다. 그는 당시 군의관보다 낮은 계습에 힘을 쓰지 못한 걸 지금까지 안타까워하고 있었다.
당시 국군 광주 통합병원의 군의관으로 근무했던 양모 소령을 찾았지만 이미 몇 년 전에 사망한 상황. PD수첩 제작진은 육군본부에 최 소위 부검감정서에 대해 물었다. 육군본부 군사경찰실 관계자는 “부검감정서 이름은 없고 감정서철이라는 명칭의 문건을 확인했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문건을 보려면 절차가 필요해 당장 확인이 안 되는 상황. 제작진은 수소문 끝에 당시 유격대 군의관으로 일했던 윤모 씨를 찾았다. 이미 오래된 일이라 기억이 안 난다는 그. 그런데 얼마 뒤 윤모 씨로부터 제작진에게 연락이 왔다. 그는 최 소위 사망사건으로 유격대장은 군복을 벗었다고 말했다. “(최 소위 사망사건과) 조금이라도 관계된 사람은 전부 영창을 갔다”는 것. 사실일까? 최 소위에 대한 집중 훈련을 지시하고 병원의 이송을 막은 전모 중령은 이후로도 2년 넘게 유격대장으로 근무했다. 당시 장교 훈련생들의 관리책임자인 육군 보병학교장은 사건 발생과 수사 축소에 대한 직간접적인 책임이 있었지만 이듬해 중장으로 승진해 육군사관학교장이 됐다. 그들은 최 소위 사망사건과 관련해 어떤 징계나 처벌도 받지 않은 채 각각 2015년과 2020년에 사망했다. 그런데, ROTC 22기 동기생 여럿이 지목한 인물이 있었다. 최 소위를 구타하고 가혹행위를 한 교관 중에 가장 악랄하게 괴롭혔다는 한 교관. 제작진은 수소문 끝에 그는 모 대학 체육학과 출신의 ROTC 19기라는 단서를 얻을 수 있었다. 제작진은 1984년 동복유격장에서 교관으로 근무했던 그를 추적 끝에 당사자와 직접 통화할 수 있었다. 당시 동복유격장에서 첫날 교육을 진행했다는 그에게 제작진은 최 소위가 그날 많이 맞았다는 것과 목줄에 대해 물었다. 그는 그런 건 없었다고 답했다. 보는 인원이 많은 데서 어떻게 목줄을 끌고 다닐 수 있냐는 것. 그는 사람인데 어떻게 개 같이 목줄을 끌 수 있냐고 되물었다. 그는 “돌아가신 분이 심장이 크고 남들과 다를 수 있다. 그래서 훈련받다 죽은 것 같다”며 그렇게 판정됐다고 답했다. 송보원 조사관은 “유격대장과 군의관, 보병학교 소속으로 있던 교관들 누구도 징계를 받은 사실을 확인할 수 없었다”라고 설명했다. 송보원 조사관은 “오히려 포상 이력들만 확인돼 그와 같은 작업이 결국 보병학교 학교장의 진급을 위한 것이 아니었나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최승균 소위는 스물세 살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는 그의 죽음이 구타와 가혹행위로 인한 쇼크사, 신체적, 정신적 스트레스에 의한 급성심장사라고 결론을 내렸다. 수십 명의 목격자가 있었지만 가해자로 지목된 교관들은 이번 조사에 응하지 않았다. 육군 보병학교에 당시 명단을 요청했지만 받을 수 없었다. 젊은 장교가 목숨을 잃었지만 아무도 책임지는 사람은 없었다. 오병두 홍익대 법학과 교수는 그때 당시 적절한 체벌과 보상, 명예회복이 이뤄지지 않은 배경에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진급을 앞둔 지휘관이 있고 거기 맞춰서 일을 벌인 사람들이 있고 수사도 축소되고 결과도 완전히 덮인 거죠” 아무도 사과하지 않은 37년 가해자들과 군 당국은 이제 답해야 할 차례이다.
PD수첩팀 기자 (pdnote@mbc.co.kr)
기사 원문 - https://imnews.imbc.com/news/2022/society/article/6387544_3567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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