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투 밀리면 공포 전략쓴다... 러, 보름새 4번째 민간시설 공습

파리/정철환 특파원 2022. 7. 12. 2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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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현지 시각) 우크라이나 남부 미콜라이프에서 소방관들이 파괴된 민가에서 불을 끄고 있다. /EPA 연합뉴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군의 민간인 공격이 점점 노골화하고 있다. 전쟁 초기 전투 중 발생한 우발적 민간인 희생이 많았던 것과 달리, 전쟁이 길어지면서 의도적이고 전략적으로 민간인을 살해하고 있다는 정황이 짙어지고 있다. 최근에는 전략 폭격기와 고정밀 순항미사일 등을 동원해 쇼핑몰과 아파트 등 민간인 밀집 지역을 조준 공격하는 사례가 줄을 잇고 있다. 전시 국제법이 규정한 ‘전쟁범죄’를 넘어서, 국가가 조직적으로 벌이는 ‘테러 행위’라는 비난이 쏟아진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11일(현지 시각) “러시아군이 이날 북동부 하르키우를 미사일로 공격해 최소 6명의 민간인이 사망하고, 31명이 부상했다”고 밝혔다. 러시아군이 쏜 미사일은 총 3발로, 각각 하르키우 시내의 학교와 주거용 건물, 쇼핑센터 등 민간인 시설에 떨어진 것으로 전해졌다. 올레 시네구보우 하르키우 주지사는 “사상자 명단에는 4세, 9세 어린이와 16세, 17세 청소년도 있다”고 밝혔다. 영국 가디언은 “잔해 수습 과정에서 희생자가 추가로 나오고 있다”며 “중상자도 많아 사망자가 계속 늘어날 수 있다”고 전했다.

러시아군의 우크라이나 민간인 공격은 보름 새 벌써 네 번째다. 러시아군은 앞서 10일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주 챠시우야르의 5층짜리 아파트를 BM-27 ‘우라간’ 다연장로켓(MLRS)으로 공격했다. 이로 인해 현재까지 민간인 33명이 사망하고 10여 명이 부상했다. 1일에는 남부 오데사주 세르히우카 마을의 9층짜리 아파트와 리조트 건물에 Kh-22 순항미사일 3발을 쏴 민간인 21명이 숨지고, 40여 명이 부상했다. 또 지난달 27일에는 1000여 명이 쇼핑 중이던 중부 폴타바주 크레멘추크시 쇼핑센터에 Kh-22 순항미사일을 발사, 19명이 사망했다.

러시아군은 동부 돈바스에서도 세베로도네츠크와 리시찬스크 등 주요 요충지 주변 마을을 장거리 야포와 MLRS 등으로 무차별 공격해 매일 10여 명의 민간인을 희생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군은 앞서 지난 3월 수도 키이우 인근 부차와 이르핀 등의 도시에서 최소 400명 이상을 학살하고, 남부 마리우폴에도 무차별 폭격을 가해 1만명 이상의 민간인을 숨지게 해 국제사회의 강력한 비난을 받아왔다.

러시아군의 야만적인 민간인 공격은 일차적으로 우크라이나의 전쟁 의지를 꺾기 위한 것으로 분석된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은 지난 4월 “푸틴의 러시아군은 과거 체첸의 그로즈니, 시리아의 알레포에서도 저항 의지를 꺾기 위해 민간인을 무차별 공격했다”며 “민간인에 대한 끔찍한 공격은 그들에게 전혀 새로운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러시아군의 일상적 전술 중 하나라는 것이다.

최근에는 우크라이나와 서방에 대한 ‘보복’ 성격도 짙어지고 있다. 지난달 27일 크레멘추크시 쇼핑센터 공격은 지난달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정상회담 개막 전날 벌어졌다. 외신에선 당장 “서방의 우크라이나 군사 지원에 대한 경고이자 보복”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비탈리 김 미콜라이우 주지사는 최근 본지 인터뷰에서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군의 반격에 밀릴 때마다 민간 지역을 공격해 보복하는 극악(極惡)한 행태를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1일 세르히우카 마을 공격 역시 러시아군이 흑해 요충지 ‘뱀섬’에서 철수한 다음 날 벌어져 ‘분풀이 공격’이란 해석이 나왔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러시아군이 부대를 재편성하고, 보급을 재개하는 과정에서 (우크라이나군의 관심을 돌리기 위해) 민간인에 대한 공격을 강화하고 있다”는 분석도 내놨다. 이 매체는 우크라이나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러시아가 (민간인 공격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국제법상 금지된 집속탄(集束彈·cluster bomb)을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이날 “민간인을 의도적으로 노려 (공포를 불러일으키기 위한) 명백한 테러 행위”라며 “러시아는 테러 국가”라고 강력히 비난했다. 그는 지난달 27일 크레멘추크시 쇼핑센터 공격 다음 날 열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참석해 “러시아를 테러 국가로 지정해 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당시 주요 7국(G7) 정상들은 “무고한 민간인에 대한 무차별적 공격은 전쟁범죄”라며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이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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