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개헌 우경화에도 뒷짐 진 尹정부..中은 우려 표명
박진 "상황 예의주시하며 관계개선 속도"…박근혜 정부 때보다 후퇴
상대적 온건파로 알려진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참의원 선거 압승 직후 헌법 개정 가속화를 천명함으로써 동북아 정세에 검은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다.
기시다 총리는 선거 승리로 아베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유연한 대외정책을 주도할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그는 11일 아베 전 총리의 뜻을 잇겠다면서 "가능한 한 빨리 (개헌안) 발의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혀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세계 5위 전력 자위대를 헌법에 명기…통제 불능 군사대국 등장 우려
아베의 유훈이 '전쟁 가능한 나라' 개헌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메이지 유신 직후의 세이난(西南) 전쟁을 떠올리게 한다. 이 싸움은 즉각적인 '정한론'을 주장한 사이고 다카모리가 다른 유신 동지들과 내전을 벌인 끝에 패배하고 자결함으로써 끝이 났다.
승리한 메이지 천황 세력은 비록 적으로 맞섰지만 죽은 옛 동지를 후하게 예우했고, 특히 정한론 유지를 이어받음로써 국민 결집을 꾀했다. 이후 한반도 진출과 청일전쟁 및 러일전쟁, 식민지 병합, 태평양 전쟁으로까지 이어진 무모한 팽창의 시작점이다.
아베 전 총리가 필생의 과업으로 삼았지만 실패했고 오히려 사후에 가능성이 높아진 개헌도 이와 비슷한 경로를 밟을 수 있다.
자민당 등 연립여당은 참의원에서도 2/3 개헌 의석을 확보했고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개헌 반대 여론도 전보다는 약해졌다. 여기에다 아베의 비극적 말로는 결정적 추동력이 될 공산이 크다.
만약 개헌이 현실화된다면 일본은 '전범국가'의 굴레를 완전히 벗고 거침없이 군사대국화의 길을 걷게 된다.
'전쟁 포기'와 '군대 보유 금지'를 규정한 헌법 9조를 손질해 자위대 존립 근거를 명기하는 것이 특히 주목된다. 전후 일본이 국제사회로 복귀하는 전제조건이 됐던 '평화헌법' 체제가 종말을 고하는 것이다.
여기에다 미국의 전폭적 지지 하에 방위예산 1%룰이 깨지고 국내총생산(GDP)의 2%까지 높아진다면 이미 세계 5위의 막강한 전력을 가진 자위대의 위협은 감당하기 어렵게 된다.
지금까지의 한일 갈등과는 차원이 다른 거대한 파고가 몰려오는 셈이다. 철저한 과거 반성과 사죄라는 최소한의 안전핀이라도 확보하지 못한다면 통제 불능의 군사대국을 이웃에 둘 수 있다.
박진 "상황 예의주시하며 관계개선 속도"…박근혜 정부 때보다 후퇴
하지만 이런 상황을 바라보는 우리 정부의 시각은 한일관계 복원을 염두에 두고 있음을 감안해도 지나치게 신중한 편이다.
박진 외교부 장관은 11일 언론브리핑에서 관련 질문을 받고 "일본의 국내 정국 상황에 대해서는 저희가 예의주시하면서 한일관계 개선을 위한 노력을 지속적으로 기울일 생각"이라며 "한일관계 개선을 위해서 속도감 있게 노력을 기울일 생각"이라고만 밝혔다.
이는 중국 외교부가 이날 "역사적 원인으로 일본의 개헌 문제는 국제사회와 아시아 이웃 국가들로부터 고도의 주목을 받고 있다"며 우려와 함께 견제구를 던진 것과 대비된다.
뿐만 아니라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의 자매지 글로벌타임스는 12일 "헌법 9조에 자위대 내용이 포함된다면 일본은 전후 역사와 평화 발전의 길을 부정하는 위험한 신호를 이웃과 아시아 전역에 보내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일본의 개헌 움직임에 대한 정부의 대응은 과거 박근혜 정부 때와 비교해도 후퇴했다. 어느 때보다 개헌 가능성이 높아졌음에도 강도는 훨씬 낮아진 것이다.
외교부는 2016년 9월 당시 아베 내각이 개헌 논의를 본격화하려 하자 "일본이 평화헌법의 기본 틀 안에서 지역의 평화와 안정, 번영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기를 기대한다"(대변인 정례브리핑)고 촉구했다.
외교부는 2013년 9월에도 국회 현안보고 자료에서 "일본의 방위정책이나 헌법 개정과 관련한 논의는 과거 역사로부터 기인하는 주변국들의 의구심과 우려를 해소하는 방향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 우리 정부의 입장"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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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홍제표 기자 enter@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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