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회전車, 보행자 있어도 밀고들어와 '아찔'.. 뒤늦게 급정지도 [밀착취재]

장한서 2022. 7. 12.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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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단보도 앞 일시정지 의무 강화' 첫날 계도현장 동행
길 건너려는 사람 있으면 멈춰야
스쿨존 횡단보도선 무조건 '스톱'
도심 상당수 차량들 그냥 지나쳐
시민들 "보행자 보호 강화 환영"
'통행하려는 때' 판단 모호 지적도
경찰, 한 달간 홍보기간 처벌 유예
“일단 멈추세요” ‘횡단보도 앞 일시 정지’를 의무화한 도로교통법 개정안 시행 첫날인 12일 서울 종로구 이화사거리에서 경찰 관계자들이 한 운전자에게 달라진 우회전 방법을 안내하고 있다. 경찰은 이날부터 한 달간 계도활동을 벌인 뒤 다음 달 13일부터 단속을 강화할 방침이다. 하상윤 기자
“손을 들어서라도 길 건널 의사를 적극적으로 표시해야 할 것 같아요.”

12일 낮 12시30분쯤 서울 송파구 잠실역 교차로. 40대 여성 A씨는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 앞에 서서 길을 건너려 했지만 우회전 차량들 때문에 쉽사리 발을 떼지 못했다. A씨를 보고도 10여대의 차량이 아랑곳하지 않고 지나갔다. A씨는 인근에서 교통 단속을 하던 경찰이 차들을 멈춰 세워준 뒤에야 건널 수 있었다. 그는 “횡단보도를 건너던 중에도 그냥 지나가거나, 갑자기 튀어나온 차량 때문에 위험했던 순간이 많다”며 “오늘부터 보행자가 횡단보도를 건너려는 의사만 보여도 운전자들이 멈춰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아직 잘 모르는 운전자가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이날부터 ‘횡단보도 앞 일시 정지’ 의무를 확대하는 내용의 도로교통법 개정안이 전면 시행됐지만, 아직 관련 내용을 잘 모르는 운전자와 시민들이 많았다. 대체로 보행자 보호 규정이 강화된 것을 환영했지만, “헷갈린다”는 운전자도 적지 않았다.

세계일보 취재진이 이날 송파구·종로구 일대에서 진행된 경찰의 계도 활동에 동행해 살펴본 결과, 길을 건너려는 보행자가 있어도 상당수 차량이 일시 정지하지 않고 속도도 늦추지 않은 채 지나갔다. 잠실역 사거리에서 1시간가량 지켜본 결과, 50대가 넘는 차량이 보행자가 길을 건너려고 해도 멈추지 않았다. 우회전하려다 단속을 하는 경찰을 보고 급하게 멈추는 차량도 있었다.

그간 보행자가 횡단보도를 건널 때만 우회전 차량에 일단정지 의무가 있었지만 이제는 보행자가 횡단보도를 건너려고 기다리는 상황에서도 운전자가 의무적으로 멈춰야 한다. 이날부터 시행된 개정 도로교통법에 따르면 횡단보도 앞 일단정지 의무 대상에 보행자가 ‘통행하는 때’뿐만 아니라 ‘통행하려고 하는 때’까지 포함된다. 아울러 어린이보호구역 내 신호기가 설치되지 않은 횡단보도 주변에서는 보행자 유무와 관계없이 무조건 일단 정지해야 한다. 위반하는 운전자에게는 범칙금 6만원(승용차 기준)과 벌점 10점이 부과된다.
‘횡단보도 보행자 보호’를 골자로 하는 도로교통법 개정안 시행 첫 날인 12일 서울 송파구 잠실역 교차로에서 시민들이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다. 연합뉴스
운전자의 보행자 보호 의무가 강화된 이유는 보행자 사고 비중이 높기 때문이다. 지난해 전체 교통사고 사망자 중 보행자의 비율은 34.9%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인 19.3%보다 1.5배가량 높다. 어린이보호구역 내 교통사고도 끊이지 않고 있는데, 최근 5년간(2017∼2021년) 어린이보호구역에서 일어난 12세 이하 교통사고 중 50.4%가 ‘횡단 중 사고’였다.

이날 서울 종로구 서울사범대부설초등학교 앞 어린이보호구역에선 한 택배 차량이 멈추지 않고 횡단보도 주변을 주행했다. 뒤이어 승용차 한 대와 오토바이 두 대도 멈추지 않고 지나갔다. 일단 정지하지 않고 주행하다 경찰이 멈춰 세운 운전자 유모(52)씨는 “규정이 바뀐 줄 몰랐다”면서 “좋은 방향으로 법이 개정됐다. 안전할 수 있도록 보행자를 우선 보호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어린 자녀를 둔 40대 박모씨는 “아이가 신호등을 늦게 인지해 갑자기 횡단보도를 건너다 차 사고가 날까 매번 걱정한다”며 “보행자 보호 의무가 강화된 것은 반가운 소식”이라고 했다.

다만 운전자들 사이에서는 보행자가 ‘통행하려고 하는 때’를 어떻게 구분해야 할지 애매모호하다는 불만의 목소리도 나온다. 경찰은 ‘횡단보도에 발을 디디려고 하는 경우’ ‘손을 들어 횡단 의사표시를 하는 경우’ ‘횡단보도를 향해 빠른 걸음으로 뛰어올 경우’ ‘보행자가 횡단보도 앞 주변에서 차도를 두리번거리는 경우’ 등이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운전자의 보행자 보호 의무를 강화한 개정 도로교통법 시행 첫날인 12일 광주 북구 문흥동 네거리에서 교통경찰관이 계도 활동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날 잠실역 인근에서 만난 한 운전자는 “횡단보도 근처에서 가만히 서 있는 것인지 진짜 건너려고 하는지 헷갈리는 경우가 있다”면서도 “법이 개정됐고 벌점도 부과하는 만큼 사람이 보이면 무조건 멈춰야겠다”고 말했다.

개정된 내용을 몰라 뒤 차량이 경적을 울리는 것을 우려하는 반응도 있다. 직장인 윤모(30)씨는 “지난 주말 우회전을 할 때 보행자가 다가오는 것 같아 잠시 멈췄는데 줄지어 오던 차들이 ‘빵빵’ 경적을 울리며 난리가 났다”며 “보행자를 우선하는 문화가 이번 계기로 정착됐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경찰은 이날부터 1개월간 계도·홍보 위주의 안전 활동 기간을 지정해 전국적으로 실시할 방침이다. 계도 기간에는 도로에서 위반 사례가 발견돼도 벌점이나 과태료는 없다. 경찰은 앞으로 법 개정 사항이 교통 문화로 정착될 때까지 홍보 영상, 현수막, 카드뉴스 등을 통해 적극 홍보에 나설 계획이다.

장한서·조희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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