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DB하이텍 '물적분할→상장' 악몽 재연하나..주가 16% 폭락
내년 분사 후 상장 진행 계획
기업가치 훼손 우려 불거지며
기관 '팔자'에 주가 16% 하락
일반투자자 반발 확산 전망속
"기업경쟁력 높일수도" 분석도
DB하이텍(000990)이 반도체 설계(팹리스) 사업을 떼내 신설 법인을 만든 뒤 기업공개를 진행할 계획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른바 ‘쪼개기 상장’으로 기업가치 훼손에 대한 우려가 불거지면서 주가가 16% 급락했다. 기업 분할과 상장 추진 과정에서 일반 투자자들의 반발이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12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DB하이텍은 전일보다 15.70% 급락한 4만 800원에 거래를 마쳤다. 수급별로 개인과 외국인이 각각 284억 원, 12억 원을 사들였지만 기관이 284억 원을 팔아치우면서 주가를 끌어내렸다.
DB하이텍에 대한 투자심리가 급격히 얼어붙은 것은 반도체 설계 사업부인 ‘브랜드 사업부’를 분사한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다. 물적 분할 가능성이 거론되면서 우려가 들불처럼 번진 것이다. DB하이텍은 8인치(200㎜) 웨이퍼(반도체 원판) 기반 파운드리(위탁 생산) 특화 기업이지만 2007년부터 모바일·TV 디스플레이 화소를 조절해 색상을 표현하는 디스플레이구동칩(DDI) 등 일부 제품을 직접 설계해 자체 브랜드로 만들고 있다. 현재 국내외 주요 디스플레이 업체에 액정표시장치(LCD)용 및 유기발광다이오드(OLED)용 DDI 제품을 납품하고 있다.
DB하이텍의 한 고위 관계자는 “투자 재원 확보를 위해 분사 이후 상장까지 할 계획”이라며 “분사 시점은 연내보다는 내년께로 예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DB하이텍은 신설 법인을 ‘순수 팹리스’로 육성해 미래 성장 동력으로 삼는다는 전략이다. 팹리스 사업부가 파운드리 사업부에 붙어 있는 기존 구조로는 새로운 고객사를 확보하는 데 어려움이 많기 때문이다. 고객사 입장에서는 설계도가 ‘경쟁사’에 유출될 것을 우려할 수 있다. 브랜드 사업부도 OLED용 DDI 등 고부가가치 제품 분야로 제품군을 확대할 여력이 생긴다. 최근 삼성전자 팹리스인 시스템LSI 사업부에서 30여 년간 근무한 반도체 칩 설계 전문가 황규철 전 삼성전자 전무를 영입한 것도 칩 설계 사업 경쟁력을 강화하며 본격적으로 수익 구조 다변화에 나서기 위한 포석으로 풀이된다. DB그룹 측은 이날 조회공시 답변을 통해 “파운드리 사업부와 설계를 담당하는 브랜드 사업부의 전문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분사를 검토 중”이라며 “구체적인 방법이나 시기 등은 결정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기업공개를 계획한 점을 고려하면 사업부를 떼내는 방식은 물적 분할이 유력하다. 대규모 투자 유치가 필요한 기업 입장에서는 자회사 지분을 기존 주주와 나누는 인적 분할과 달리 모회사가 신설 법인 지분을 100% 소유하는 물적 분할이 유리한 측면이 있다. DB하이텍 대주주 지분율이 17%로 낮아 인적 분할 이후 지분을 희석시키면서 유상증자를 할 가능성도 낮다는 분석이다.
전문가들은 DB하이텍의 팹리스 분사 계획에 대해 단기적으로 주가 하락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증권사 연구원은 “대만 파운드리 고객사들의 6월 실적 역성장으로 반도체 주문 둔화에 대한 의구심이 커진 상황에서 쪼개기 상장으로 인한 디스카운트(할인)로 주가가 부진할 가능성이 크다”며 “LG에너지솔루션 물적 분할 때처럼 투자자들의 반발이 거세질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물적 분할은 기존 주주들에게는 불리할 수 있다. 알짜 사업을 떼낼 경우 모회사가 자회사인 신설 법인 지분을 100% 확보하지 않는 한 회사 가치가 훼손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반면 분할 결정이 기업가치 확대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김양재 다올투자증권 연구원은 “원익그룹이 회사 분할 이후 사업부별 기업 경쟁력 강화를 통한 기업가치 확대를 이뤄낸 점을 고려하면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며 “파운드리와 팹리스 각각 독립적인 경영 및 객관적인 평가를 통해 효율성을 제고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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