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세 내다 지친 세입자..전세→내 집 '주거 사다리'마저 끊겼다

하지나 2022. 7. 12.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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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대차법시행2년]反시장정책 서민만 골탕..2년간 부작용만 키워
전월세상한제에 2+2계약까지..전셋값 끌어올리고 매물 자취 감춰
월세마저 2년새 12.5% 밀어올려.."정부, 과감한 주거안정정책 시급"

[이데일리 하지나 오희나 기자]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사는 장 모 씨는 지난달 계약갱신청구권을 행사하면서 13억원의 보증금으로 살고 있던 전세계약을 반전세로 변경했다. 기존 보증금에 매달 60만원씩 월세를 내기로 한 것이다. 장씨는 “집주인이 3억원을 더 올리겠다는 것을 60만원씩 더 주기로 하고 2년 더 연장했다”며 “워낙 주변 전셋값이 오른데다 금리까지 오르다 보니 차라리 60만원을 내기로 했다”고 말했다. 장씨가 금리 연 4.5%로 은행에서 전세자금 3억원을 빌리면 매달 내는 이자만 112만5000원이다.

[이데일리 방인권 기자] 서울 송파구의 한 아파트 단지 내 공인중개업소에 아파트 시세표가 붙어 있다.
세입자의 주거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제정한 임대차2법(계약갱신청구권, 전·월세 상한제)이 시행 2년째를 맞이했지만 오히려 ‘주거 취약계층’만 양산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주거 형태인 전세가 점점 줄어들고 월세 거래의 비중이 늘고 있다. 월세 비중이 급격히 늘면서 서민과 중산층의 주거 부담도 함께 늘어나고 있다. 매일 러닝머신 위를 달리듯 ‘하우징 트레드밀’(housing treadmill) 위에서 지치다 보니 주거 사다리를 오를 체력마저 상실하고 있다. 이러한 ‘전세의 월세화’는 더욱 확대할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적극적이고 과감한 주거안정정책이 시급한 시점이라고 주장한다.

‘열 집 중 여섯 집’ 월세

11일 KB국민은행 통계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 월세지수는 102.8을 기록했다. 임대차법을 시행한 지난 2020년8월(91.4)보다 11.4포인트 상승했다. 월세 가격이 상승한 가장 큰 이유는 큰 폭으로 상승한 전셋값을 감당하지 못해 ‘울며 겨자 먹기’로 보증금 일부를 월세로 전환하거나 전세대출금리가 오르면서 월세를 선택하고 있어서다.

박원갑 KB국민은행 수석부동산전문위원은 “지난 6월 기준 서울 아파트 전·월세전환율이 3.19%인데 최근 은행권 전세대출금리가 평균 4%대”라며 “지난 2년간 아파트 전셋값이 평균 1억8600만원 상승했는데 세입자로서는 전세 대출을 받는 것보다 월세로 전환하는 게 낫다고 판단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래픽=이데일리 김일환 기자]
월세 거래량은 이미 전세 거래량을 앞질렀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올해 5월 전국 주택 전·월세 거래(40만4036건) 중 월세 거래는 24만321건으로 59.4%를 차지했다. ‘열 집 중 여섯 집이 월세’라는 뜻이다. 이는 국토부 통계 집계 이래 가장 높은 수준이다. ‘전세의 월세화’ 속도가 빨라진 것은 지난 2020년 시행한 새 임대차법이 결정적이다. 전·월세상한제로 전셋값을 5% 넘게 올리지 못하게 되자 ‘4년(2+2년)치’ 상승분을 미리 올려 받으려는 집주인이 생겨나면서 전셋값이 뛰기 시작했다. 비싼 전셋값을 감당하기 어려워지자 대부분 세입자가 계약갱신청구권을 쓰고 2년 더 눌러앉으면서 전세 품귀 현상을 부추겨 다시 전셋값을 끌어올리는 악순환을 반복했다. 이러한 악순환 속에서 소득 수준이 낮은 2030세대나 저소득층 서민에게는 주거비 부담이 더 큰 타격으로 다가왔다. 김효선 NH농협은행 WM사업부 All100 자문센터 부동산 수석위원은 “월세화가 빠르게 진행하면서 임차인의 주거비 부담이 증가하고 있다”며 “특히 전·월세전환율은 통상 고가주택이나 아파트일수록 낮고 저가주택이나 원룸, 다가구 주택 등은 높게 나타나면서 상대적으로 주거 취약계층의 주거비 부담이 더 커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적극적이고 과감한 주거안정화 대책 필요

국토교통부는 주거 안정화에 집중하기 위해 최근 ‘임대차시장 안정방안’을 내놨다. 전세 보증금 상승폭을 5% 이내로 설정한 ‘착한 임대인’에게 2년 실거주 요건을 채우지 않아도 양도소득세 비과세 혜택을 주고 버팀목 전세 대출 한도 및 월세 세액공제를 확대하겠다는 내용이 골자다. 기획재정부도 내달 임대차법 개정을 앞두고 전문 연구기관에 ‘아파트 등록임대주택’과 ‘공공임대주택’ 등의 정책 내용을 의뢰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 공공임대주택 공급과 주택바우처 확대와 같은 적극적이고 과감한 주거안정대책을 신속히 시행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그래픽=이데일리 이미나 기자]
박원갑 전문위원은 “이미 물량 앞에 장사 없다는 것은 다 알고 있다”며 “건설형 임대는 준공까지 시간이 소요되다 보니 꾸준히 공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권순형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겸임교수는 “장기적으로 임대시장 안정화를 위해서는 장기 임대주택재고율을 확대해야 한다”며 “현재 장기임대주택 재고율이 8% 수준으로 전체 주택재고율의 6% 수준 밖에 안 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10~15%가량 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공공임대주택을 늘리는 것은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꾸준히 추진해야 한다”며 “근본적인 해결책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장기임대주택물량을 확보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 원장은 정부 차원의 주택바우처 제도 확대 시행을 주문했다. 주택바우처는 현재 서울시 등 지자체에서 저소득층과 차상위계층의 주거 안정을 위해 월세의 일부를 지원하는 제도다. 고 원장은 “주택바우처는 정부가 집주인에게 직접 주면 악용할 소지가 줄어든다”며 “정부 차원에서 주택바우처 제도를 도입해 확대 운영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나 (hjina@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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