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Why]아베는 생전에 왜 그리도 개헌에 집착했을까?
'나라를 위해 전쟁 나간다'는 답변 꼴지인 일본, 극우파들 애국심 고조 주장도
일본 위축되는 위상, 더이상 돈으로 해결 안되는 상황
아베 신조 전 총리는 일본의 헌법9조(평화헌법) 개정을 평생의 과업으로 삼았다. 그의 생전에 개헌은 손에 잡히지 않는 꿈에 불과했다. 8년9개월의 긴 집권 동안에 개헌안 발의 근처에도 못갔다. 그런데 그가 죽은 뒤 상황이 빠르게 바뀌고 있다. 참의원 선거 압승으로 '개헌 찬성파' 의원 숫자가 개헌 발의 요건인 3분의2를 넘어섰다. 아베 전 총리가 비극적이고 드라마틱하게 죽음을 맞이하면서 개헌 논의에 '아베의 유훈'이라는 이미지가 덧씌워지고 있다. 아베는 왜 생전에 개헌에 그토록 집착했을까? 그의 꿈은 실현될까?
①외할아버지의 꿈, 손자 아베에 대물림
아베는 30대에 정치에 입문했을 때부터 일본이 개헌을 해야한다는 확고한 생각을 가졌다. 1993년 아버지의 지역구인 야미구치현 1선거구에서 당선돼 정치에 발을 들인 직후 아내인 아키에 여사가 '총리가 되면 뭘 하고 싶으냐'고 묻자 '헌법개정'이라고 답했다는 일화도 있다.
그의 이런 사고는 외조부이자 전직 총리를 지낸 기시 노부스케(岸信介) 전 총리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 추측된다. 기시 전 총리는 일본의 군사력 확보에 힘쓰며 '대국주의'를 주장했던 인물이다. 아베 전 총리는 외할아버지를 잘 따랐고 그를 존경했다. 아베의 모친인 요코 여사는 "아들 신조가 외모는 아버지를 닮았는데, 정책은 외할아버지 기시 노부스케를 많이 닮았다"고 인터뷰한 적이 있다.
기시 전 총리는 A급 전범 출신에 공직 추방까지 당했다가 복귀해 일본 총리가 된 인물이다. 그가 평소에 주장했던 '보통국가'와 '개헌'론은 아꼈던 손자 아베에게 자연스레 전해진 것으로 많은 학자들은 분석한다. 본인도 책을 통해서 기시 전 총리의 사상이 자신에게 스며들었다고 인정했다.
즉, 개헌은 1950년대부터 일본 정치권의 핵심 논쟁이었고, 개헌 세력의 적자인 아베가 앞장섰던 것이다.
② 군대가 없으니 애국심도 없다는 생각
이명찬 동북아역사재단 명예위원은 "일본인들은 평화헌법이 정착된 이후에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다'는 군사적인 개념이 아주 약하다. 보통의 국가들과는 전쟁에 대한 인식이 차원이 다르다"며 "우익들은 자기들 나름의 애국심으로 군대를 부활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일본은 전쟁이라면 알레르기를 일으킬 정도로 민감한 국가다. 일례로 세계가치관조사(WVS)가 최근 '전쟁이 나면 조국을 위해 싸우겠습니까'라는 설문조사를 진행했는데 일본 국민들의 긍정 답변은 13.2%에 불과했다. 전체 79개 국가 중 압도적 꼴지였다. (우리나라는 67.5%였다)
우익들이 봤을 때 나라를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울 국민이 가장 적은 나라가 일본인 것이다. 이 때문에 애국심을 내세우는 민족주의자들은 정식 군대가 없으니 애국심이 약화될 수 밖에 없고 '보통국가'로 일본을 되돌리자는 주장을 이어간다. 결국 이 주장은 '자위대의 헌법 명시'로 이어진다.
③ 돈 마르는 일본, 군사력 갖추려는 몸부림
일본이 전세계 경제를 쥐락펴락할때만 해도 외교와 국방의 상당 부분을 '돈'으로 해결했다. 미국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사람(군대) 대신에 기지와 물자를 제공하는 식이었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었고 일본 경제는 빠르게 쪼그라들고 있다. 중국과 한국의 고성장 속에서 일본 경제는 전세계 N분의 1에 불과하고, 외교적인 입지도 점차 줄어들고 있다.
아베 전 총리가 재임 기간 그토록 방위비 증강과 개헌에 힘썼던 것은, 역으로 보면 일본의 위기감을 반영하는 것이다.
이명찬 위원은 "과거에 일본은 경제력으로 외교 등 모든 것을 커버하고도 남음이 있었다"며 "하지만 지금 일본의 국제적인 위상이 날로 떨어지고 있기 때문에, 군사력 확보 등을 통해 외교적 입지를 넓히고자 시도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④ 아베의 꿈, 기시다가 받을까?
그렇다면 아베의 꿈이었던 개헌은 빠르게 진행될 수 있을까? 현재는 아베 추모 기간이고, 참의원 선거 직후이기 때문에 개헌 논의가 당장 불붙을 것처럼 보도가 되고 있지만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우리나라에서도 '개헌' 논의가 일때마다 과열 논쟁으로 사그라들었듯, 일본도 각론으로 들어가면 복잡해 진다. 심지어 개헌 찬성 의원들 사이에서도 '자위대'를 헌법에 직접 명시할 것인지 아닌지를 두고는 입장이 갈린다.
게다가 기시다 후미오 전 총리는 자민당 내에서 강경파가 아닌 온건파 파벌 '고치카이'의 수장이다. 고치카이는 막무가내식 개헌이 아닌, 명분과 실리를 중시하는 정치세력이다. 극우파이자 당내 최대 파벌이었던 '세이와카이'는 자신들의 수장인 아베를 잃었다. 기시다가 당장은 "아베의 유훈을 받들겠다"며 개헌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추모 기간이 끝나고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되면 기시다 자신의 정치 색깔을 드러낼 가능성이 크다.
다만, 우크라이나 전쟁 후에 미국이 더욱더 일본의 군사력을 필요로 하고 있으며, 일본 국민의 여론도 서서히 개헌 찬성쪽으로 기운다는 점 등에서 개헌 논의는 일본 정치권의 최대 화두가 될 것으로 보인다. 아베 생전에는 가능성이 제로에 가까울 것 같았던 개헌 이슈가 그의 죽음을 계기로 점차 현실성을 띄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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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조은정 기자 aori@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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