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없는 일본 정치, 자민당 파벌 구도 요동 예상
기시다, 8~9월 개각·스가 기용 관측도
아베 신조 전 총리 사망과 집권 여당 자민당의 참의원 선거 압승은 일본 정치권에도 적지 않은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된다. 자민당의 세력구도 변화부터 제1야당 입헌민주당의 암울한 미래 등 다양한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우선 구심점을 잃은 자민당 내 최대 파벌 아베파의 영향력이 약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10월 출범한 기시다 정권은 총리가 소속된 기시다파(의원 44명), 아소파(49명), 모테기파(54명), 아베파(93명) 등 4개 파벌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과거에는 아시아 유화 외교를 지향하고 적극적 군사정책에 반대한 기시다파와 아소파 등이 자민당의 주류였고, 적극적 대외 정책을 주장하는 아베파가 소수파였다. 하지만 무파벌 정치를 추구한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와 자신의 세력을 강하게 결집시킨 아베 전 총리의 집권기를 거치며 당내 역학 구도가 크게 바뀌었다.
가장 큰 세력을 이끈 아베 전 총리는 기시다 정권 출범 이후에도 막후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기시다 총리는 당 총재 당선 이후 주요 사안을 결정할 때 항상 아베 전 총리와 상의를 거쳐야 했다. 이는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을 내세운 기시다 총리의 새로운 자본주의 공약 등이 집권 후 후퇴한 이유 중 하나로 평가된다. 아베 전 총리는 ‘핵 공유’를 주장하는 등 기시다 총리와 다른 의견을 공개적으로 표명하기도 했다. 아베파의 주장을 나머지 3파가 견제하며 방위비 증액, 개헌 등의 이슈에 대한 당의 입장을 정해 왔다. 하지만 아베 전 총리가 사라지면서 이 같은 구도는 큰 변화를 맞게 됐다. 아베파의 한 관계자는 마이니치신문에 “(아베파를 제외한) 나머지 3파가 정국을 주도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아베파 다음으로 큰 파벌을 각각 이끄는 아소 다로 부총재, 모테기 도시미쓰 간사장의 역할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마이니치신문에 따르면 아베 전 총리 피습으로 중단된 선거 운동 재개를 결정한 이는 아소 다로 부총재였으며 기시다 총리는 아소 부총재, 모테기 간사장과 협의 끝 선거운동을 재개한다고 밝혔다.
스가 요시히데 전 총리가 다시 전면에 등장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요미우리신문 등은 기시다 총리가 이르면 다음 달 말, 늦어도 9월 초순까지 당 간부 인사를 단행해 스가 전 총리를 부총리에 임명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스가 전 총리는 소속된 파벌이 없다. 이 때문에 총리 재직 시절에도 존재감이 약했다는 평가를 받아 왔다. 하지만 그는 연립 여당인 공명당, 극우야당 일본 유신회와의 소통 채널을 당내에서 가장 많이 갖고 있다고 알려졌다. 두 정당은 개헌에 찬성하지만 개헌의 세부적 내용을 두고서는 자민당과 이견이 있다. 공약으로 내세운 개헌을 순조롭게 추진하려면 자민당은 두 정당의 협조가 필요하다. 최근까지 두 당과의 소통은 아베 전 총리가 맡아왔다.
아베파 내에서 아베 전 총리의 공백을 메울 마땅한 지도자가 없다는 목소리가 파벌 내에서 나온다. 시모무라 하쿠분 전 문부과학상, 마쓰노 히로카즈 관방장관 등이 거론되지만 다수가 합의할 만한 지도자는 아직 없다고 아사히신문이 전했다. 거의 10년 전 정계 은퇴한 모리 요시로 전 총리의 이름까지 거론될 정도이다. 파벌 내 권력투쟁이 벌어질 수 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선거에서 참패한 야당들은 향후 활로 찾기도 힘든 상태에 놓여 있다. 제1야당 입헌민주당의 고민이 가장 크다. 입헌민주당은 이번 선거 비례대표에서 7석을 얻어 일본유신회(8석)에도 못 미치는 성적을 받았다. 야권의 분열도 원인이지만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일본의 여론 자체가 ‘개헌 찬성’으로 옮겨간 것이 입헌민주당 부진의 근본적 이유로 꼽힌다. 입헌민주당은 당명에서도 드러나듯 ‘현행 평화헌법 수호’를 정체성으로 삼아 왔다. 하지만 참의원 선거 당일인 10일 NHK방송의 출구조사에서 ‘헌법 개정을 지지’ 여론은 45%로 ‘헌법 개정 반대’(25%)보다 20%포인트 높았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일본의 개헌 찬반 여론은 비슷했다.
기시다 총리가 자신의 색깔을 강화할수록 입헌민주당의 입지는 더욱 좁아질 전망이다. 경제정책 등으로 자민당과 차별화하기 더욱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야권단일화를 주된 전략으로 삼았지만 패했던 중의원 선거에 이어 이번 참의원 선거에서도 참패하면서 지도부 책임론도 당내에서 불거지고 있다. 당 지도부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개헌 비판’ 노선에 대해 고민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박은하 기자 eunha99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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