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결 같은 호숫길 걷기.. 모락모락 찐빵 만들기 [박준규의 기차여행, 버스여행]
KTX 강릉선 개통으로 강원 산간지역도 서울에서 한결 가까워졌다. 횡성도 수혜 지역 중 한 곳이다. 청량리역에서 KTX-이음을 타고 1시간이면 횡성역에 도착한다. 역에서 차량공유서비스(렌터카)를 이용하면 수려한 자연, 재미난 체험을 즐길 수 있는 횡성의 관광지로 이동하는 게 어렵지 않다.
거울 같은 수면, 횡성호수길 5구간
횡성호수길은 외지 여행객이 부담 없이 찾는 명소다. 1997년 횡성댐 건설로 형성된 호수 둘레를 한 바퀴 도는 걷기여행길로, 전체 6개 구간(31.5㎞) 중 호수 가장자리 평지로만 구성된 5구간(9㎞)이 가장 대중적이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거의 없고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걸을 수 있어서 ‘가족길’로 불린다.
물속에 잠긴 갑천면의 5개 마을 수몰민의 향수가 서린 '망향의 동산'에서 출발한다. 길은 호숫가 산자락으로 연결된다. 내내 거울같이 잔잔한 호수를 바라보며 걷는다. 매끄러운 수면에 주변 산자락과 하늘이 그림처럼 비친다. 계절 따라 산빛도 변하고 이를 담은 호수의 색깔도 달라진다. 스르르 빨려 들어갈 듯 몽환적이어서 ‘오색꿈길’이라는 별칭이 붙었다.
산책로는 두 개 코스로 나뉜다. 가볍게 A코스를 한 바퀴 돌아도 좋고, B코스까지 완주하면 금상첨화다. 각각 4.5㎞, 1시간 30분가량 걸린다. 입장료는 성인 2,000원이다.
내가 만들면 무조건 꿀맛! 안흥찐빵 모락모락마을
횡성 서쪽 평창과의 경계인 안흥면은 명실상부 찐빵의 고장이다. 면 소재지를 관통하는 주천강(酒泉江)을 한자어 그대로 해석하면 ‘술샘’이다. 술을 빚기에 적당한 습기는 발효음식과 찐빵 숙성에 최적의 조건이었다. 산간 청정지역에서 생산하는 팥은 맛있는 팥소의 재료가 됐다.
1960년대 초까지만 해도 안흥은 영동과 영서를 잇는 교통과 물류의 중심이었다. 오일장이 열릴 때면 인근에서 몰린 인파로 북적거렸다. 당시 막걸리를 파는 판잣집에서 한 개에 5원하는 찐빵에 시래깃국까지 제공했는데 서민들에게는 값싸고 고마운 한 끼였다. 이렇게 시작된 찐빵이 1970~80년대에 고랭지 채소를 운반하는 인부들, 강릉과 서울을 오가는 승객의 간식으로 인기를 끌었다. 밭농사하는 농부들의 새참거리로도 그만이었다. 그러다 1990년대 중반 면사무소 앞 찐빵 가게가 언론을 통해 소문이 나며 안흥찐빵은 전국적으로 유명해졌다.
올 2월에는 면 소재지 외곽에 찐빵 만들기 체험을 할 수 있는 ‘안흥찐빵 모락모락마을’이 문을 열었다. 부드러운 반죽을 5등분해 각각에 팥소를 넣고 둥글게 모양을 빚는다. 그런 다음 자색고구마와 말차 분말로 색깔을 낸 반죽을 빵 위에 장식한다. 이제 찜통에 넣고 30분만 기다리면 된다.
찐빵이 익을 동안 모락모락공방에서 컵 만들기와 '팥 찜질팩' 만들기도 할 수 있다. 미디어아트와 VR체험 시설을 갖춘 모락모락라운지도 시간 때우기에 그만이다. 곳곳에 설치된 ‘빵양' '팥군’ 캐릭터와 인증사진을 찍거나 나무놀이터에서 시간을 보내는 사이 찐빵이 완성됐다는 안내방송이 흘러나온다.
스티커를 붙인 포장 용기에 모락모락 김이 나는 찐빵을 담으면 나만의 안흥찐빵이 완성된다. 품질은 이미 검증됐고 내 손으로 직접 만들었으니 맛이 없을 수가 없다. 횡성 잡곡라떼를 곁들이면 더욱 좋다. 찐빵 만들기 체험은 오전 10시, 오후 2시 진행하며 1시간가량 소요된다. 예약(033-344-5990) 필수, 체험료는 1만 원이다.
2.4km 관동옛길 달리는 횡성루지
육상 루지는 동계올림픽 썰매 종목인 루지에 칼날 대신 바퀴를 단 무동력 레저스포츠다. 별도의 동력 없이 중력에 몸을 맡긴 채 탑승자가 속도를 조절할 수 있다. 전국 여러 곳에 루지 체험장이 있지만 횡성루지는 좀 특별하다.
횡성 우천면과 안흥면을 잇는 42번 국도 고갯길(전재) 아래에 터널이 뚫리면서 방치되던 도로를 그대로 활용했다. 인위적으로 코스를 만들지 않아 자연을 훼손할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신호등이 없는 자연 속 도로를 달리는 느낌이 든다. 코스 곳곳에 괴물나무, 동화나라, 우주터널 등 다양한 테마의 조형물을 설치해 재미를 더했다. 42번 국도는 고속도로가 없던 시절 서울과 강릉을 잇는 최단 거리 ‘경강국도’였고, 조선시대에 개설된 역사적인 길이라 ‘관동옛길’이라 불리기도 했다.
횡성루지의 전체 길이는 2.4㎞, 내려가는 데 8~12분 정도 걸린다. 매표소에서 고갯마루의 출발지점까지는 전동 셔틀 차량으로 이동하기 때문에 한 번에 두 가지 재미를 만끽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오를 때는 천천히 웅장한 주변 산세를 감상하고, 내려올 때는 루지의 속도감을 즐길 수 있다.
이용료는 성인 1회권 1만2,000원, 2회권 2만1,000원이다. 횡성호수길, 안흥찐빵 모락모락마을, 횡성루지체험장을 이용하면 2,000~3,000원을 횡성관광상품권으로 되돌려준다. 횡성 관내에서 현금처럼 쓸 수 있다.
첩첩산중 무더위 해방구, 병지방계곡
횡성에서 시원한 계곡을 찾는다면 갑천면 어답산 자락에 위치한 병지방계곡을 추천한다. 옛날 진한의 마지막 임금인 태기왕이 다녀갔다고 해서 어답산(御踏山)이고, 박혁거세에게 쫓기던 왕이 재기를 꾀하며 병사를 모아 방어하던 곳이라 병지방(兵之坊)이라는 지명이 붙었다고 전해진다. 분명 표지판 안내대로 따라가는데 길을 잘못 들었나 의심이 들 정도로 첩첩산중이다. 왕이 숨어든 곳이라는 옛날 이야기가 그럴듯하게 들릴 만큼 주위가 한적하다.
깊은 골짜기인 만큼 영화에나 나올 법한 심산유곡의 비경이 펼쳐진다. 바닥의 조약돌이 비칠 만큼 맑은 계곡과 병풍처럼 둘러진 수려한 산세가 6㎞가량 이어진다. 계곡에서 물놀이할 수 있는 공간은 병지방오토캠핑장과 선바위자연캠핑장 부근 등 몇 곳으로 한정돼 있다. 평시 인적이 뜸한 이곳도 여름 한철엔 차량으로 붐빈다. 도로변에 주차장을 확충했지만 휴가철에는 어느 정도의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박준규 대중교통여행 전문가 blog.naver.com/saka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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