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리랑카에서 '20년 독재정권' 몰아낸 이들은 누구?
최악의 경제난에 분노한 시민들의 봉기로 스리랑카에서 20년 가까이 권력을 독점해온 고타바 라자팍사 대통령 등 라자팍사 가문이 물러나게 됐다. 부패하고 무능한 정권을 한 번에 무너뜨린 콜롬보 민중봉기를 이끈 활동가들이 주목받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11일(현지시간) 스리랑카 정권을 무너뜨린 지난 9일 수도 콜롬보 민중 시위를 한 달 전부터 기획한 가톨릭 신부, 극작가, 광고회사 직원 등 수십 명의 활동가들을 소개했다. 이들은 콜롬보 시위를 위해 지난달부터 콜롬보 인근 해변에서 정기적으로 회합했다. 총리와 재무장관 등이 사임을 발표한 후에도 라자팍사 대통령이 퇴진을 거부하면서 정권퇴진 시위가 동력을 잃어가자 대책마련에 나선 것이다.
이에 활동가들은 ‘아라갈라야(투쟁)’로 불리던 당시 시위에 다시 힘을 불어넣어 9일 라자팍사 대통령의 사퇴를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를 벌이기로 결의했다. 우선 이들은 최대한 많은 이들을 콜롬보에 모이게 하려고 온라인 홍보에 주력했다. 약 500만 가구가 총 800만 개의 페이스북 계정을 갖고 있을 정도로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이용률이 높은 스리랑카 사회의 특성을 활용한 것이다. 온라인 홍보를 펼쳤던 광고회사 출신 디지털 전략가 차메라 데드두와는 “페이스북을 통해 아무런 비용을 들이지 않고 전국 곳곳에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활동가들은 오프라인 홍보 활동에도 힘을 쏟았다. 자원봉사자들은 시위가 집중적으로 벌어질 콜롬보 지역의 중산층 가정을 직접 방문해 시위 계획을 전달했다. 다른 활동가들은 콜롬보 외곽 주민들도 끌어오기 위해 전국 각지에 생겨난 시위대 텐트촌인 ‘고타 고 빌리지(Gota go village)’ 30여 곳을 순회하며 시위에 동참해달라고 호소했다.
활동가들은 시위대의 몸집을 불리기 위해 야당, 노동조합, 학생운동 단체에도 지원을 요청했다. 이들이 접촉한 단체 중에는 스리랑카 최대 학생 단체이자 최근 시위에서 물대포, 최루탄 공격을 뚫고 정부 치안대의 바리케이드를 해체했던 ‘스리랑카 대학생 총연합회(IUSF)’도 있었다.
극심한 경제난과 대통령의 퇴진 거부에 성난 민심은 활동가들의 요청에 폭발적으로 화답했다. 시위를 주도했던 지반스 페이리스 신부는 당초 일부 대중교통 중단과 통행금지령으로 많아야 1만명 정도 모일 것으로 생각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이날 콜롬보에 결집한 인원은 최소 20만명에 달했다. 마케팅 전문가인 아마라툰지는 페이스북과 왓츠앱에 퇴진 시위 관련 게시물을 공유한 뒤 약 2000명의 시위대를 모아 고향 모라투와에서 행진을 시작했는데, 콜롬보로 가는 길에 수만 명이 추가로 합류했다고 말했다.
분노한 군중들은 경찰 방어망을 뚫고 대통령 관저를 급습하는 데 성공했고, 삽시간에 대통령궁과 총리 관저 등 주요 정부 건물을 점령했다. 이에 라자팍사 대통령과 라닐 위크레메싱게 총리는 시위가 시작된 당일 바로 사임 의사를 밝혔다. 시위를 기획한 활동가 중 한 명인 극작가 루완티 드 치케라는 이번 시위가 “이 나라에서 가장 전례가 없었던 모임”이라 평가했다. 페이리스 신부는 “시위대에는 노약자, 청소년, 여성들이 정말 많았다”면서 “이들은 포기하거나 철수하기를 원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라자팍사 대통령이 약속대로 13일 자리에서 물러나면 2005년부터 스리랑카를 장악했던 라자팍사 가문의 ‘가족 통치’도 막을 내리게 된다. 해외 도피설이 돌던 라자팍사 대통령은 현재 콜롬보의 반다라나이케 국제공항 인근 공군기지에 머물고 있다고 AFP통신은 이날 보도했다.
김혜리 기자 ha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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