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中 시위했더니 결국 돈 지급..중국 농촌은행 잠재적 시한폭탄

김민성 2022. 7. 12.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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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0일 중국 허난성 정저우시에서 열린 대규모 시위 (출처:구글)


지난 10일 새벽 5시쯤, 중국 중부 허난성 정저우시 인민은행 계단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허난성의 부패와 폭력에 반대한다', '돈을 돌려 달라'는 내용이 담긴 현수막이 물결을 이뤘습니다.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 허난성에 있는 4개 농촌은행에 예금을 맡긴 사람들입니다.

이날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대략 3천 명 정도로 추산됩니다.

[연관 기사] “내 돈 돌려달라”…중국, 3천 명 시위에 폭력 진압

“허난성 정부에서 폭력조직과 결탁해 예금주들을 폭행했다”, “허난성 정부의 부패와 폭력에 반대한다”, “허난성은 무법천지다”라는 등의 현수막을 든 예금주들 (출처:구글)


허난성에 있는 위저우신민셩 은행과 상차이후이민 은행, 저청황화이 은행, 카이펑 신동방은행은 지난 4월 18일부터 예금 인출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부실은행으로 지정됐기 때문입니다. 내줄 돈이 없다는 것입니다.

당장 필요한 돈을 찾을 수 없게 된 사람들은 40만 명에 이릅니다. 금액은 400억 위안, 우리 돈 7조 8천억 원입니다.

청천벽력같은 소식을 들은 중국 전국의 예금주들이 정저우를 찾아 5월부터 수십 명 씩 혹은 수백 명 씩 단체 시위를 벌였습니다.

'피 같은 돈'을 떼일 수 없다는 절박감에섭니다.

“허난은행은 전국 백만 명의 사람들에게 해를 입혔다”라는 내용이 담긴 현수막을 든 예금주들의 시위, 지난 5월 (출처:웨이보)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은행들은 물론 은행들을 감독할 허난성 정부 기관까지 아무런 대책을 내놓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방역 당국 관계자 5명이 예금주들의 이동을 막고 시위를 벌이지 못하기 위해 천 3백여 명의 건강코드를 녹색(자유로운 이동 가능)에서 빨간색(이동 불가능)으로 조작하는 일까지 벌어졌습니다.

이처럼 어처구니 없는 일들이 이어지면서 예금주들은 더는 참지 못하고 일요일(7월 10일) 새벽, 기습적으로 모여 대규모 시위를 벌인 것입니다.

정저우에 사는 왕 모 씨는 자신과 부모님이 은행에 맡긴 돈이 20만 위안(한화 약 4천만 원)인데 허난성 당국이 전혀 문제 해결에 관심을 보이지 않고 돈을 찾을 길이 막막해 시위에 참여하게 됐다며 현지 매체와 인터뷰를 통해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 '시위'했더니…결국 허난성 정부, 은행 대신 돈 지급하기로

이날 새벽에 시작된 시위는 오후까지 이어진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 같은 대규모 시위는 좀처럼 중국에서는 일어나기 쉽지 않습니다. CCTV 공화국이라고 불릴 만큼 몇미터만 가면 CCTV가 설치돼있고 각종 위치 추적 시스템이 발달해 개인의 이동을 샅샅이 감시하는것이 중국의 특색 아닌 특색이기 때문입니다.

3천여 명의 시민들이 그것도 새벽 시간대 기습적으로 모일 수 있었다는 사실에 중국이 사회 안전 시스템에 구멍이 뚫린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돕니다.

어쨌든 이번 대규모 시위의 영향이었을까요? 중국 허난성 당국이 즉각 대책을 내놓았습니다.

허난성 은행보험감독국과 허난성 지방금융감독국이 예금주들에게 돈을 지급하겠다는 내용이 담긴 문서


허난성 은행보험감독국과 허난성 지방금융감독국이 시위가 끝난 다음 날인 11일 저녁, 예금주들에게 은행을 대신해 돈을 지불하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예금이 5만 위안(한화 천만 원가량) 이하인 에금주들에게는 15일부터 돈을 지급하기로 했습니다.

5만 위안 이상은 추후 일정을 잡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은행 계좌에 있는 모든 돈을 줄지는 확실치 않습니다.

도시은행이 아닌 농촌은행의 특성상 높은 고금리를 미끼로 예금주를 모은 뒤 예금을 정식 장부가 아닌 펀드처럼 운용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럴 경우에는 이번 지급 대상으로 빠진다고 허난성 은행보험감독국은 밝혔습니다.

결국, 상당수 예금주들은 피해를 보전받기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부실 농촌은행 용의자 검거 중국 허난성 시창시 경찰 통지문 (출처:바이두)


■ 시위 끝나자 공교롭게 '용의자' 잡았다고 발표

시위가 끝나자마자 이번에는 경찰이 은행 범죄 관련 용의자들을 붙잡았다는 발표를 했습니다.

허난성 쉬창시 공안국은 10일 통지문을 통해 용의자 뤼이(吕奕)가 이끄는 범죄조직이 2011년 이후 허난 신카이푸 그룹을 이용해 상호출자와 자본금 및 주식 증자, 은행 임원들을 조종하는 등의 방법으로 여러 농촌은행을 실질적으로 통제해왔다고 밝혔습니다.

또 예금 유치와 금융상품 판촉을 위해 제3자 온라인 금융 플랫폼과 자신들이 설립한 플랫폼, 다수의 캐피탈 브로커 등을 이용했다고 덧붙였습니다.

그러면서 용의자들을 무더기로 체포하고 이 사건에 관련된 자금과 자산을 압류·동결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공안 당국은 용의자가 몇 명인지, 어떻게 은행들을 조정했는지 그리고 은행과의 연관성은 어떤 것인지 특히 11년 이상 장기간에 걸쳐 불법 수신 행위가 있었는데 이에 대한 금융당국과의 관련성 여부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발표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만약 대규모 시위가 없었다면 과연 허난성 정부가 은행을 대신해 돈을 준다고 하고. 경찰이 용의자를 잡았다고 발표했을까요?

성난 민심을 가라앉히려 부랴부랴 대책을 내놓았다는 인상이 깊게 드는 부분입니다.

2020년 파산한 바오샹 은행


■ 중국 농촌은행 '1,600여 곳'…언제든 잠재적 시한폭탄

중국 농촌 지역에 기반을 둔 은행은 천 6백여 곳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농촌은행은 농촌 지역의 소기업과 주민들을 지원하는 역할을 하도록 만들어진 중국에서만 볼 수 있는 특색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중국 농촌은행은 기반이 취약하고 자본을 끌어들일 수 있는 채널이 한정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자금 압박에도 취약해 쉽게 농촌 지역의 붕괴를 촉발할 수 있고 이렇게 되면 전체 은행 시스템에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특히 제조업과 부동산, 도·소매업 등 국가 경기 침체에 취약한 지방 중소기업에 대출하는데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다보니 대출 연체율도 더 높아지는 경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앞으로도 예금을 지급하지 못하는 농촌은행들이 줄을 이을 수 있다는 가능성이 높은 것입니다.

중국에서는 2020년 예금주 473만 명이 있던 바오샹 은행이 채무불이행으로 파산한 것을 비롯해 알려진 것만 해도 4개 은행이 파산한 바 있습니다.

시위 강제해산하는 과정에서 공권력 폭력 진압 (출처:웨이보)


■ 시위 진압에 보여준 中 폭력성 민낯 드러나

이번 농촌은행 예금주들의 시위과정에서 중국 당국의 폭력성이 여과없이 드러났습니다.

현수막과 종이만 들고 구호를 외치는 예금주들을 향해 보안요원들로 보이는 건강한 20대 청년 수백여 명이 갑자기 몰려들더니 강제 해산을 시도했습니다.

손으로 때리고, 발로 차고, 강제로 끌어내리고, 심지어 쇠파이프까지 동원됐습니다. 상당수 예금주들이 부상을 입고 병원으로 옮겨졌습니다.

금융기관의 말만 듣고 조금이라도 높은 금리를 받기 위해 돈을 맡겼던 사람들을 마치 범죄인처럼 취급하자 예금주들은 "폭력을 써서 진압해야 하는 것은 은행이나 용의자들인데, 왜 우리를 이렇게 단속하느냐"며 울분을 터뜨렸습니다.

중국 전체 인구의 40%가량은 아직 농촌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농촌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지난해 샤오캉(小康,모두가 잘사는 사회)사회를 달성했고 농촌 지역의 빈곤 탈출에도 성공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그러나 농촌은행의 부실이 현실화되고 이로 인한 피해가 확산되면서 오히려 농촌 발전을 가로막는 존재가 되고 말았습니다.

정저우 시위에 대한 네티즌 반응 (출처:웨이보)


농촌은행의 금융 피해는 눈덩이처럼 불어나는데 당국은 나 몰라라 뒷짐을 지고, 이에 분통을 터뜨린 예금주 수천 명이 시위를 벌이는 보기 드문 현상이 중국에서 일어났습니다.

또 이 과정에서 폭력 진압의 민낯이 사진과 동영상을 통해 전 세계에 유포되면서 중국 정부 통제 방식의 문제점을 그대로 노출시키고 말았습니다.

김민성 기자 (kims@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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