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원 사퇴로까지 번진 YTN시청자위 회의록 삭제 사태
YTN 시청자센터 회의록 삭제로 불거진 사측·시청자위 갈등 장기화
'시청자위 의견진술' 첫 선례 안게 된 방통위 "종합적으로 검토 중"
[미디어오늘 노지민 기자]
YTN의 시청자위원회 회의록 삭제 논란이 장기화하고 있다. 일부 위원 사퇴로 시청자위원회의 법정 최소 인원이 미달할 상황에 처한 가운데 최근 회의록을 두고도 이견이 확인되고 있다.
YTN 시청자위원회의 김보라미(법무법인 디케 변호사)·김응록(송원대 토목공학과 교수) 위원은 지난달 28일 열린 6월 회의에서 사의를 밝혔다. 시청자위원회 요구에 대한 사측의 대응이 미흡하고, 앞으로 개선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이유다.
두 위원 사퇴는 반년 가까이 이어진 시청자와 YTN간 갈등에서 비롯됐다. 지난 1월 우장균 YTN 사장의 회의 불참을 지적한 회의록이 비공개되면서 시작된 소위 '회의록 삭제 사태'가 계기다.
그간 YTN 시청자센터는 수차례 민감한 내용을 회의록에서 들어냈다. △우장균 사장 불출석으로 시청자위원들 보이콧이 이뤄진 1월 회의록 전체(사측은 정족수 미달 등으로 회의가 성립하지 않았다고 판단)△이를 3월 회의에서 비판한 김보라미 위원 발언 △4월 회의에서 회의록 관련 방송통신위원회 유권해석을 받았다고 밝힌 신웅진 당시 YTN시청자센터장 발언 등이다. 방통위가 유권해석한 일이 없다고 밝히면서 신 센터장 발언은 허위보고 논란으로 번졌다.
이에 시청자위원들이 지난달 9일 이례적으로 임시회의를 열어 우 사장의 사과, 회의록 관련 '허위보고' 감사, 시청자센터 책임 규명과 조직 쇄신 등을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시청자위원회가 방통위에 직접 의견진술을 할 수 있도록 YTN 시청자센터가 절차를 진행해달라는 요청도 했다.
임시회의 이후엔 갈등이 봉합될 것처럼 보였다. YTN이 회의록 복구에 이어 지난달 27일자로 시청자센터장과 담당 팀장을 교체하면서다. YTN 관계자는 당시 미디어오늘에 “이 사태가 더 이상 확대되는 걸 막기 위해 회사 측에서 여러 가지 대응 방안 중 하나로 시청자위원회의 카운터파트를 교체해 새롭게 관계를 정립해나가려는 것”이라며 “저희도 새로운 관계 정립을 위해 액션을 취했으니 이후 더 발전적인 논의를 해야할 것”이라 설명한 바 있다.
YTN은 이어 지난 3일 YTN 옴부즈맨 프로그램 '시민데스크'로 우 사장의 사과를 내보냈다. 지난달 28일 회의에서 우 사장이 “결과론적으로 시청자위원회에서 발언한 내용들이 삭제가 된 것은 대표이사 사장으로서 봤을 때에도 온당치 않은 일이었다고 판단한다. 시청자위원회와 위원들게 YTN을 대표해서 머리 숙여 진심으로 사과의 말씀을 올린다”고 밝힌 대목이다. 이날 회의에서 두 시청자위원이 사퇴한 일, 시청자위 운영에 대해 일부 위원이 문제를 제기한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
복수의 시청자위원들은 당시 회의에서 사측과 일부 위원간 날선 공방이 오가면서, 회의록이 어떻게 올라올지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임태훈 위원의 경우엔 “문구 조율에 응하지 않았다”면서 “지난 회의에서 전임 센터장이 '제2노조가 사장 흔들기 시작했다, 어려운 시기'라는 식으로 얘기를 해서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 있느냐, YTN 구성원들도 이런 걸 알아야 된다고 말을 했더니 이걸 뺄 수 없겠느냐는 연락이 왔다”고 전했다.
YTN 바깥에서 사태를 지켜본 한 공영방송사 시청자위원은 회의록 문구 삭제 논란을 두고 “회의록 공개는 방송법에 의해 시청자 권익을 보호하는 장치인데 시청자를 우습게 보는 부분”이라며 “시청자위원 스스로의 결정이 아니라 YTN 차원에서 공개를 안 한다는 게 어떤 의도인 생각을 해봐야 할 지점”이라 지적했다. 만약 시청자위원의 주장이 잘못된 측면이 있다면 이 역시 투명하게 공개해 평가를 받고 토론에 부쳐야 했다는 것이다.
김동찬 언론개혁시민연대 정책위원장은 “어떤 회의체에 가더라도 당사자가 동의하지 않은 상황에서 회의록에 적시된 걸 임의로 삭제하는 일은 잘못된 것”이라며 “갈등이 발생했을 때 결정하는 건 사장인데, 사장이 적극적으로 노력하지 않았던 것 같다”고 밝혔다.
시청자위원 역할과 위상에 대한 전현직 경영진의 방향 전환이 충분한 소통 없이 이뤄진 측면도 지적했다. 김동찬 정책위원장은 “YTN 시청자위원회가 전임 사장 시절 구성됐고 방통위에서 좋은 평가를 받은 걸로 알고 있다. 사장이 바뀌고 나서 상대적으로 소극적 운영으로 바뀌면서 신뢰관계가 깨진 상황이라고 본다”며 “왜 YTN은 확연히 차이를 느낄 정도로 운영 방향이나 기조를 바꿨는지, 어떤 판단이 있었는지 짚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간 개별 방송사 사례라며 거리를 둔 방통위도 시험대에 올랐다. 시청자위원회는 지난달 28일 방송법 제88조 제2항에 근거해 시청자위원회 대표자의 방통위 의견진술을 요구했다. 앞서 이들은 지난달 임시회의를 통해 사측에 관련 절차를 요청했지만 거부 당했다며, 국민신문고 민원으로 이를 접수했다. 2주가 지났지만 방통위는 “선례 등 관련한 레퍼런스가 충분하지 않아 종합적으로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김보라미 위원은 지난달 30일 서울신문 기고에서 “방송사가 거부할 경우 시청자위원회는 법이 정한 업무조차도 공식적으로 수행하기 어렵다. 방통위는 시청자위원회 대표자의 의견 진술에 대해 명확한 절차와 범위를 마련해 시행할 필요가 있다”며 “시청자위원회의 의결이 실질화될 수 있도록 방통위 및 방송사들의 의무와 책무 역시 명확히 규정돼야 할 것”이라 촉구한 바 있다.
김동찬 위원장은 “애초 그 법을 만들 때 시청자위 권한을 파격적으로 강하게 부여한다는 취지가 있었는데 실질적으로 그렇게 운영되지 않았다”며 “한 번도 작동한 적이 없는 조항이기 때문에 맹점들을 한 번 경험해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방통위 기본 기조는 시청자위원회가 형식적으로 운영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라며 “그런 기조에 맞춰 이 사안도 충분히 상징적인 판단을 할 수 있을 것”이라 밝혔다.
한편 YTN은 당장의 보궐 위원 선임 없이 7월 시청자위원회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11인 시청자위원회에서 두 위원이 빠지면 방송법상 최소 정원인 10인에 미달하기에, 정식 해촉 절차에 앞서 위원들이 논의할 시간을 갖기로 했다는 설명이다. YTN 관계자는 “시청자위원회에서 저희 사정을 감안해주시고, 위원님들 자체적으로 설득하는 작업도 하고 계신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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