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말기 안 보이는데..무인 햄버거 주문 어떻게 하나요
(서울=연합뉴스) 오보람 기자 = 12일 오전 찾은 서울 마포구 한 패스트푸드점은 '비대면 시대'가 성큼 다가왔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했다.
입구에 들어서자 점원은 한 명도 보이지 않고 빌트인 식으로 설치된 무인단말기(키오스크) 4대만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그 옆에 음료수가 나오는 기계와 커피머신이 나란히 붙어 있고, 'It's SELF ORDER Time'(셀프로 음식을 주문해야 하는 시간입니다)이라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키오스크로 결제 방법, 메뉴, 매장 이용 여부, 포인트 적립 여부 등을 차례로 선택한 뒤 결제하니 영수증이 출력됐다. 디지털에 익숙한 젊은 세대라면 1∼2분 안에도 주문이 가능해 보였다.
그러나 음식을 받아오는 과정은 꽤 낯설게 느껴졌다. 영수증에 찍힌 번호가 카운터 모니터에 뜨면 '픽업(PICK UP)' 구역으로 가 영수증 바코드를 스캔한다. 이후 스크린에 나오는 1에서 9까지 번호를 확인한 뒤 해당 번호의 사물함을 노크한다. 자동으로 사물함 문이 열리면 비로소 음식을 찾을 수 있다.
음료수도 '셀프'다. 다시 자리를 옮겨 음료수 기계에서 얼음과 음료를 따라 자리로 가져와야 한다.
1990년대생인 기자에게도 쉽지만은 않은 일이었는데,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 이들이 이런 일을 해내야 한다면 어떨까. 실제로 시각장애인 10명은 이날 오전 11시 30분께 이 매장을 찾아 햄버거를 주문하는 과정을 체험했다. 시각장애인권리보장연대 '내돈내산 권리찾기 캠페인' 활동이었다.
이들은 햄버거 하나를 먹기 위해 지난한 과정을 겪어야 했다. 매장 입구로 들어서는 것부터 쉽지 않아 보였다. 출입문 옆을 더듬어 문열림 버튼을 눌렀지만 이내 닫히는 통에 어깨를 부딪쳤고, 구불구불한 구조 때문에 안에 들어서는 데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진짜 문제는 햄버거를 주문하는 일이었다. 키오스크에는 음성지원이나 점자도 없고, 글자를 확대하는 '돋보기' 기능은 너무 작게 표시돼 잘 보이지도 않았다. 일부는 스크린에 코가 닿을 만큼 가까이 얼굴을 들이대고 힘겹게 메뉴를 찾았고 혹시나 소리가 들릴까 하며 귀를 갖다 대는 이도 있었다.
버튼을 잘못 눌러 영어 메뉴판으로 바뀌거나, 전혀 다른 메뉴를 선택해 더 많은 금액을 결제하는 일도 빚어졌다. 영수증에 나와 있는 화장실 비밀번호와 주문 번호를 옆 사람에게 묻는 사람도 많았다.
약 5분이 걸려 겨우 햄버거를 주문한 시각장애 3급 최정일(43) 씨는 "같은 브랜드라도 매장마다 메뉴 순서가 달라 주문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모든 게 관문"이라며 "평소 무인 매장에 가서 주문할 때도 뒤에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으면 눈치가 보이기도 한다"고 말했다.
운 좋게 키오스크 좌측 하단에 있던 '직원 호출' 버튼을 찾은 이들은 직원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이 매장에는 홀에 나와 손님을 도와줄 수 있는 직원이 3명 있다.
빛이 있는지 정도만 분간할 수 있는 시각장애 1급 정민석(20) 씨는 "직원분 도움 덕분에 어렵지 않게 햄버거를 주문했다"면서도 "앞으로 무인 매장이 더 많아질 텐데 언제까지 도움을 받을 순 없지 않겠나 싶다. 음성 지원이라도 해주면 좋겠다"고 했다.
7∼8분 만에 햄버거 주문에 성공한 이모(29) 씨 역시 "카드 넣는 곳이나 적립 바코드를 대는 곳조차 찾기가 어렵다"며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모두 편하게 사용할 수 있는 시설이 많아지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10명 모두 주문을 마치고 음식을 받아들기까지는 꼭 1시간이 걸렸다.
시각장애인권리보장연대는 최근 보건복지부가 공개한 무인주문기 접근성 강화를 위한 장애인차별금지법 시행령 안이 '3년 내 단계적 적용' 방침이어서 시행이 너무 늦다고 반발하며 이번 캠페인을 기획했다. 유예기간을 둔 탓에 2026년까지 3년 반을 더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남정한 대표는 "시각장애인이 어떤 어려움을 겪는지 보여주고 공감을 얻기 위해 나왔다"며 "키오스크를 설계·제작하는 단계부터 장애인의 접근성을 고려해 함께 살아가는 사회가 되도록 해달라"고 강조했다.
ramb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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