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서울시, 성희롱 가해자들 경징계..비판 일자 '징계수위 문건' 삭제
징계 수위 논란에 "표현 다듬으려 잠시 삭제"
서울시가 내부망에 직장 내 성희롱·성폭행 사건 처리 결과를 공개했다가 하루 만에 삭제했다. 폭력이나 언행 수위에 비해 징계 수위가 가볍다며 공무원들 사이에서 논란이 일자 게시물을 내린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시는 “표현을 가다듬기 위해 잠시 삭제했다”며 “추후 다시 게재할 것”이라고 했다.
서울시는 지난 8일 행정포털 시업무공지 게시판에 ‘2022년 상반기 직장 내 성희롱·성폭력 사건 처리 결과 공개’ 문건을 올렸다. 문건에는 올해 상반기 접수된 4건의 성희롱·성폭행 사건의 구체적인 내용과 징계 수위가 담겼다.
첫 번째 사례는 A부서 주무관들이 집단으로 피해자를 희롱한 사건이다. 문건에 따르면 한 주무관은 피해자에게 “○○ 입술이 체리인지 체리가 ○○ 입술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옆에 있던 다른 주무관은 “체리가 ○○ 입술이라고 상상하면서 먹는 거야?” “오빠가 도와줄까”라며 희롱했다. 또다른 주무관은 “옛날 서무들은 미스라고 불렀는데” “커피 타오라고 시키면 찍소리도 못했는데”라고 말했다고 한다.
해당 주무관들은 징계 의결 결과 감봉 처분을 받았다. 지방공무원 징계규칙상 감봉은 경징계에 해당한다. 비위 정도가 약하고 경과실일 경우에만 감봉 처분을 받을 수 있다.
더 노골적인 성희롱 사례도 적발됐다. B씨는 작업 중 호스를 입으로 부는 피해자에게 차마 입에 담지 못할 말을 서슴지 않았다가 신고를 당했다. B씨는 사무실에서 성기와 항문으로 보이는 착시 사진을 보여주고 피해자의 머리를 쓰다듬은 혐의도 있다.
그밖에 C씨는 저녁 식사 자리에서 다른 직원을 두 차례 껴안은 뒤 얼굴을 만지려고 했고, D씨는 익명 게시판에 높은 수위의 성 비하 댓글을 달았다가 신고 대상이 됐다.
징계규칙상 비위 정도가 심하고 중과실이거나 비위 정도가 약하더라도 고의가 있는 경우 해임이나 파면 처분을 받게 된다. 그러나 B씨는 정직 1개월, C씨는 정직 3개월, D씨는 정직 1개월의 처분을 받았다. 이들의 비위 정도가 심하지 않거나 고의가 없었다고 시가 판단한 것이다.
처리 결과가 공개되자 업무포털 자유게시판에는 비판글이 연이어 게재됐다. 한 작성자는 “서울시 성희롱 성폭력 사례 결과 공개 대박”이라며 “업무포털 게시판에 저런 말을 쓰고 정직 1개월만 받는 게 말이 되냐”고 했다. 이 글에는 “충격”“정직이라니 서울시 수준 암담하네” 등의 댓글이 달렸다.
논란이 일자 서울시는 성희롱·성폭력 사건 처리 결과를 포털에서 삭제했다. 서울시가 2020년 12월 발표한 ‘서울시 성차별 성희롱 근절 특별대책’에 따르면 직장 내 성희롱 성폭력 처리 결과는 공개가 원칙이다. 특별대책에는 ‘사례와 징계, 처리 결과 등을 반기별로 공개한다’고 적혀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12일 “내부 비판 때문에 삭제한 것은 아니다. 피해자와 사전에 합의된 내용을 공개한 것이기는 하지만 심한 표현이 많이 들어 있어 일단 내린 상태”라며 “내용을 보완해 다시 공개할 것”이라고 했다. 가해자들의 징계 정도가 약한 것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선 “인사위원회나 징계위원회 회의 내용은 비공개”라고 했다.
이홍근 기자 redroo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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