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미 보수 "미국대사 돌아가라" 외치는데..골드버그, 16일 '퀴어축제' 공개 연설
윤 대통령 팬클럽 활동 단체 주도로
대사관 앞에서 '부임 반대 집회' 시작
"바이든, 차별금지법 통과 무언의 압박"
미 대사관 "차별적이어도 표현의 자유"
‘베테랑 외교관’이자 ‘대북 강경파’로 꼽히는 필립 골드버그 신임 주한 미국대사의 부임을 친미 성향의 보수단체들이 반대하고 있다. 이들은 “성소수자 대사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주장하며 이미 부임한 대사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주장한다. 1년 6개월간 공석이었던 주한 미 대사 자리를 채우게 된 골드버그 대사는 부임 후 첫 주말 행보로 16일 열리는 서울퀴어문화축제를 택했다.
‘동성애자 대사를 한국에 받아들일 수 없다.’ 붉은색 글씨로 적힌 팻말이 12일 오전 주한 미국대사관 앞에 등장했다. ‘주한 미국대사 부임 반대’ 집회는 지난 대선 때 윤석열 대통령의 팬클럽 활동을 했던 대윤본부 동우회가 주도하고 있다. 이들은 매일 오전 주한 미국대사관 앞에서 피켓 시위를 한다.
손한나 대윤본부 동우회 대표는 “‘대북제재 외교’는 좋지만, 성소수자가 공인으로 활동하는 것은 국가·가정 등에 있어 대북제재보다 손해가 크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바이든 미국 정부가 골드버그 대사를 보낸 건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통과시키겠다는 무언의 압력 아닌가”라며 “대사는 물러나야 한다”고 했다. 미국대사 역할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능력이나 외교정책 방향 등에 대한 문제제기가 아니라, 본인이 공개적으로 밝힌 적도 없는 개인의 성적 지향만을 문제삼은 것이다.
주한 미국대사관은 경향신문에 보낸 시위 관련 입장문에서 “미국에서는 표현의 자유와 집회의 자유가 민주주의의 역동성을 지키는 데 필수적이라고 믿는다. 설령 표현의 내용이 차별적·공격적이더라도 보호받아야 하는 것은 마찬가지”라며 “혐오 표현에 가장 확실하게 대항하고자 한다면 표현 자체를 억압할 것이 아니라 관용을 증진하자는 목소리를 더욱 장려해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오랜 신념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In the United States, we believe freedom of expression and freedom of assembly are essential to a vibrant democracy. This includes protections for discriminatory or offensive speech, as we have long held that the strongest weapon against hateful speech is not repression, but more speech that promotes tolerance.
- 주한 미국대사관이 경향신문에 밝힌 ‘골드버그 대사 부임 반대 시위에 관한 입장’ 中
골드버그 대사는 미 국무부가 외교관에게 부여하는 최고위 직급인 ‘경력 대사(Career Ambassador)’로, 한국은 그의 네 번째 대사 부임지다. 버락 오바마 미 행정부 때인 2009년부터 2010년까지 국무부의 유엔 대북제재 이행 담당 조정관으로 활동했다. 북한에 대해선 비교적 강경한 발언을 이어왔다.
골드버그 대사는 한국의 성소수자 혐오에 ‘정면 돌파’를 택했다. 그는 오는 16일 서울광장에서 열리는 퀴어축제에 참여해 성소수자 권리를 지지하는 공개 연설을 할 예정이다. 마크 리퍼트, 해리 해리스 전 대사도 퀴어축제에 참여한 바 있지만, 연단에 서 공식 연설을 하는 것은 골드버그 대사가 처음이다.
성소수자의 권리를 보장하지 않는 한국에 어떤 메시지를 내놓을지 주목된다. 서울시는 올해 퀴어축제를 허용하면서 축제 시간과 행위를 제한했다. 이 조건을 어기면 추후 광장 사용을 제한하겠다고 했다. 정부와 국회의 방치 속에 수년째 제자리걸음인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도 시급한 과제다.
지난달 방한한 웬디 셔먼 미 국무부 부장관은 국내 성소수자들과 간담회를 가졌고, 지난 5월 미국을 대표해 윤석열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한 미국 부통령의 배우자 더글러스 엠호프 변호사는 성소수자 방송인 홍석천씨를 만났다. 주한 미국대사관 측은 같은 달 차별금지법제정연대의 단식농성장을 방문해 지지 서한을 전달하기도 했다. 주한 미국대사관은 미 연방대법원이 동성결혼을 합법화한 2015년부터 퀴어축제의 부스 행사에 참가해왔고, 2017년부터는 성소수자 인권의 달인 6월에 대사관 건물 외벽에 성소수자 인권의 상징인 무지개 깃발을 내걸고 있다.
경찰은 16일 열리는 퀴어축제에 참여하는 주요 인사들의 경호를 강화할 방침이다. 주한 미국대사는 마크 리퍼트 전 대사 피습 사건 이후 신변보호 대상으로 지정된 터다.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가 총격을 받고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진 뒤 경찰에는 외빈 등 신변보호 대상자의 안전에 전력을 기울이라는 지침이 내려졌다. 경찰은 최대한의 경호·경비 인력을 행사장 주변에 배치할 계획이다.
박하얀 기자 whit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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