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우회전 땐 '일단정지' 걸려든 운전자들 "법 바뀐 줄 몰랐어요"
"먹고 사는데 바빠 신문이나 뉴스를 못 봅니다. 오늘부터인지 몰랐어요."
12일 보행자 보호가 강화된 개정 도로교통법이 시행됐지만 도로의 운전자 대다수는 법이 바뀐 걸 모르고 있었다.
경찰 관계자는 "바뀐 도로교통법의 기본 원리는 간단하다"며 "사람이 있으면 서라는 것이고 사람이 없으면 가되 우회전만큼은 오른쪽에서 건물이나 가로수, 코너 같은 사각지대가 있으니까 정지해서 확인하고 가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아이들이 튀어나올 수도 있고 신호를 안지키고 길 건너려는 사람도 있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날부터 전방 차량신호가 초록불이라도 우회전하려면 전방 횡단보도 앞에서 멈춰야 한다. 보행자 유무를 살피고 우회전을 진행하면서 두 번째 횡단보도 앞에서도 보행자 유무와 상관없이 한 차례 더 정지해야 한다.
경찰 관계자는 "두 번째 횡단보도에 사람이 없다고 해도 운전자는 서행이 아닌 정지를 해야 한다"며 "정지의 기준은 바퀴가 완전히 멈추는 것"이라고 했다.
이날 점심을 먹으러 회사에서 차를 끌고 나온 직장인 김모씨(39)는 "사실 그동안 교차로에서 보행자가 없는데도 안 가는 차를 보면 클랙슨(경적)을 울리면서 가도 된다고 생각했었다"고 했다.
김씨의 행동은 교통사고를 유발할 수도 있다. 도로교통법상 원활한 차량 소통을 위해 횡단보도 신호가 파란불이어도 우회전할 수 있다 보니 그간 통행은 사실상 운전자의 판단에 달려있었다. 보행자가 길을 건너고 있는데도 위협적으로 우회전을 하는 경우도 많았다.
경찰청과 도로교통공단의 분석에 따르면 2018년부터 3년간 우회전 차량에 치여 사망한 보행자는 212명이었다. 최근 5년 내 국내 교통사고 사망자 3명 중 1명이 보행자였다. 지난해 교통사고 보행 사망자의 52.5%(547명)는 횡단보도에서 사망했다. 횡단보도에서 우회전하는 차량에 대한 모호한 통행 규정을 개정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됐던 이유다.
이화사거리 인근 건물에서 일하는 황근수씨(60)는 "내가 건물 3층에서 아침마다 횡단보도를 보고 있으면 되게 불안하다"며 "직진 신호가 떨어지면 빠르게 달리던 차량이 그대로 우회전하려고 온다. 그런데 신호가 떨어지면 뛰는 아이들도 있다"고 했다. 황씨는 "우회전할 생각만 가지고 그냥 오는데 애들이 뛸 때 차량이 급하게 서면 굉장히 불안하다"고 했다.
일부 시민들은 운전자 입장에서 보행자가 진짜 건널지 안 건널지 판단하기 어렵다고 호소한다.
경찰은 '보행자의 통행의사가 외부로 표출됐을 때'를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에 따라 보행자가 횡단보도에 발을 디디려고 하는 경우나 손을 드는 등 운전자에게 횡단 의사를 표시할 때 운전자는 반드시 일시 정지해야 한다. 위반 시 단속 대상이다.
이 밖에도 경찰은 △ 횡단보도 앞에서 대기 중인 보행자가(또는 보행자 무리) 차도를 두리번거리는 경우 (보행자 대기 장소가 횡단보도 앞이나 주변이 아닌 경우 제외)△보행자가 횡단보도 가시권 인도에서 횡단보도를 향해 빠르게 걷거나 뛰어올 때(횡단보도에서 멀리 떨어진 인도에서 사고 위험성이 없는 보행자가 다가오는 경우 제외) △보행자가 횡단보도 앞 주변 또는 운전자가 볼 수 있는 범위에서 주위를 살피는 의도·행위가 명확한 경우 등도 단속 대상이라고 밝혔다.
경찰 관계자는 "법의 개정 취지가 보행자 사고를 예방하려는 것"이라며 "운전자 입장에서 보행자가 건너려는지 안 건너려는지 파악하기 어렵다면 우선 일시정지 후 상황을 파악하는 방법으로 접근해 사고를 예방하는 게 최우선"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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