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 바뀔 때마다 반복되는 국책은행 인사 논란

김태영 시사저널e. 기자 2022. 7. 12.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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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은행·수출입은행·산업은행 등 풀어야 할 숙제 산더미
국책은행 인사 후순위로 밀리면서 지각 선임 '고질병' 재발

(시사저널=김태영 시사저널e. 기자)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국책은행을 중심으로 반복돼온 인사 논란이 윤석열 정부에서도 반복되고 있다. 낙하산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국책은행 인사가 후순위로 밀리면서 '지각 선임' 고질병까지 도지는 모습이다. 서울에 본점을 둔 KDB산업은행의 경우 윤석열 대통령의 핵심 공약인 부산 이전 문제를 놓고 사 측과 노조 사이 대립이 심화하고 있다. 정부의 대대적인 공공기관 개혁까지 예고됐지만 정작 국책은행 정책금융 관련 혁신과제 논의는 찾아볼 수 없는 상황이다.

6월9일 여의도 산업은행 본점에서 산은 노조가 강석훈 신임 회장의 출근 저지 투쟁을 하고 있다. 강 회장은 전날 노조원들에 막혀 본점 집무실에 들어가지 못했다.ⓒ연합뉴스

기업은행 주요 계열사 경영공백 상태 지속

IBK금융그룹이 대표적이다. IBK캐피탈과 IBK투자증권 대표이사는 지난 3월 중 정해진 임기가 만료됐다. IBK연금보험·시스템·신용정보 수장들도 지난 4월 임기가 끝났다. 하지만 아직까지 계열사 8곳 중 6곳의 차기 대표이사 인선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문제는 IBK기업은행 계열사 8곳 중 IBK투자증권(87.78%)과 IBK시스템(55.63%)을 제외하고는 모두 기업은행 지분이 100%다. 기업은행 자회사 대표이사는 각 사의 주주총회와 이사회 의결을 통해 정해진다. 이 과정에서 일반적으로 IBK기업은행은 정부와 긴밀하게 협의해온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번 대표이사 선임은 계속 지연됐고 이후 진전도 없는 상태다.

자회사 대표뿐만 아니라 기업은행 사외이사 인선도 지연되고 있다. 지난 3월 신충식·김세직 비상임이사 임기가 종료됐지만 후임자는 선임되지 않았다. 현재 김세직 사외이사는 물러났고 신충식 사외이사는 후임 이사 선임 전까지 자리를 유지하기로 한 상태다. 기업은행 비상임이사는 기업은행장의 제청을 받아 금융위원회가 최종 임명한다. 녹록지 않는 금융환경 속에서 신사업 구상과 수익원 다각화 등 기업은행 앞에 놓인 과제가 산적하지만 추진하기 힘든 상황이다. 금리 인상에 따른 리스크가 부상하고 있지만, 기업은행 존재 이유인 중소기업 지원 약화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시장에서는 기업은행이 주력하고 있는 기업금융 부문에서 다른 시중은행과 인터넷 전문은행보다 압도적인 차별성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다. 실제로 지난 1분기 말 기준으로 기업은행의 중소기업금융 시장 점유율은 22.9%에 달한다. 하지만 2020년 역대 최대 수준인 23.1%를 기록한 이후 여전히 20% 초반대에 머무르고 있다. 한국수출입은행의 경우 7월1일 행장 없이 창립 46주년을 맞기도 했다. 수출입은행장 자리는 방문규 전 행장이 6월7일 국무총리실로 자리를 옮긴 뒤 현재까지 공석 상태다.

이렇듯 최근 코로나19 확산세가 완화되면서 국내 기업들의 해외 진출이 활발해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지만 국책은행 수장의 공백은 장기화하고 있다. 새 정부의 경제 부양 정책 속도를 높이기 위해 인선 작업에 속도를 내고 본연의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이유다. 업계에서는 시장이 불안정한 상황에서 수장 공백 장기화로 인해 수출기업 지원 동력이 약해질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오고 있다. 

하지만 새 행장 인선을 두고 연일 잡음은 끊이지 않고 있다. 최근 수출입은행 노조는 성명서를 내고 "현장 경험이 전무한 교수·국회의원 출신 폴리페서 강석훈 산업은행 회장에 이어 수출입은행장마저 폴리페서의 임명이 임박했다는 이야기가 들려온다"면서 "국책은행장은 정체불명의 폴리페서들을 위한 논공행상, 보은인사 자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노조 측은 폴리페서에 대한 임명을 정부가 강행할 경우 낙하산 저지 투쟁 등 강경대응을 예고했다. 다만 일부 언론에 윤희성 전 수은 부행장이 행장에 내정됐다는 보도가 나온 상태다. 기획재정부는 윤 전 부행장을 유력 행장 후보로 놓고 고심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문제가 가장 심각한 곳은 KDB산업은행이다. KDB산업은행은 현재 본점 이전, 매각 기업 정상화, 투입자금 회수 등 풀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 하지만 본점의 부산 이전 문제를 두고 노조와 지난 6월 취임한 강석훈 회장이 대치 중이다. 산은 노조는 "부산 이전 시 산은의 기능과 역할이 축소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윤 대통령 측근인 강 신임 회장이 대통령 공약인 부산 이전을 강행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부산 이전을 둘러싼 갈등에 묻혔지만 대우조선해양 매각 등 조선업 구조조정 방안도 해결해야 할 대표적인 숙제다. 2019년부터 추진했던 대우조선해양 매각은 유럽연합(EU)의 기업결합 불승인 결정에 따라 원점으로 돌아갔고,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합병, 쌍용차 매각 등 아직 풀어야 할 문제가 남아있다. 당장 산업은행이 주도했던 굵직한 매각은 번번이 실패했고, 수조원을 투입해도 기업 정상화는 요원해 보인다. 투입자금 회수율도 20~30%에 불과해 산업은행이 오히려 정부 지원 부담만 늘리는 것 아니냐는 평가까지 나온다. 구조조정 해결사라는 정책금융기관의 역할이 제기되고 있지만 국내 산업구조가 4차 산업으로 전환되면서 산업은행의 역할 또한 진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국책은행 본연의 역할 보장할 장치 필요"

업계에서는 고질적인 관치금융과 정치금융 문제를 끊고 금융시장 선진화를 위한 실질적인 정책을 이행해야 한다고 제언한다. 빠르게 변화하는 시장 변화에 맞춰 금융 산업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 마련이 급선무라는 지적이다. 독립성 강화도 국책은행이 해결해야 할 당면과제다. 사실 정치적 중립성 문제는 꾸준히 제기돼온 오랜 과제이기도 하다. 정치적 중립의무 조항을 명시하고 국책은행이 본연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필요한 법제도 장치를 고민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조직과 예산 운용의 자율성을 얻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무엇보다 정부는 공공기관 구조조정을 예고한 상태다. 윤 대통령은 6월21일 국무회의에서 "공공기관이 과하게 방만하게 운영되고 있다"며 "강도 높은 구조조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서도 산적한 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업계는 지적한다. 한 공기업 관계자는 "물가 급등을 무릅쓰고 전기·가스 등 공공요금을 올린 정부 입장에서는 고물가에 신음하는 국민을 설득하기 위해서라도 '신의 직장'으로 불리는 공공기관에 대한 강도 높고 신속한 개혁이 필요한 상황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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