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재정정책 발언 지적했는데 고발? 토론을 합시다"
안철수 재정 정책 관련 발언, 이상민 연구위원이 비판하며 토론제안…국민의당, 허위사실 고발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공표죄 폐지 주장도 "표현의 자유 과하게 억압"…"고발 취하해야"
[미디어오늘 장슬기 기자]
대선 당시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현 국민의힘 의원)의 재정정책 관련 발언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국민의당(현 국민의힘과 합당)이 재정정책 전문가를 고발한 것을 비판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공익인권변론센터, 포용재정포럼, 참여연대는 12일 오전 서울 통인동 참여연대에서 “고발 말고 토론합시다”라는 이름의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 피고발건 비판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연구위원은 지난 1월19일 민중의소리가 운영하는 유튜브 '곰곰이' 채널에 출연해 안 후보 관련 발언을 반박했다. 이 연구위원은 “D4라는 개념은 존재하지 않는다”며 “연금충당부채 또는 재무제표상 부채를 D4라고 안철수 후보가 직접 네이밍을 한 거다. 이건 D4라고 하면 잘못된 개념”이라고 말했다. 이 연구위원은 한국 기재부가 만든 'D1, D2, D3, 및 재무제표상 부채' 개념과 IMF의 'D1, D2, D3, D4' 개념은 이름만 같고 성격이 다른데 안 후보가 이를 혼동해 사용했다고 설명했다.
또한 안 후보는 2088년 한국의 국민연금 누적적자 규모가 1경7000조원에 달할 것이라고 주장했는데 이 연구위원은 현재 가치로 환산하지 않은 오류를 지적하며 구체적 산출근거를 요구했다.
이후 국민의당 측이 선거법 위반 등 법적 대응을 시사하며 영상 삭제를 요구했고 이 연구위원과 곰곰이 채널 측은 '공개 토론'을 역으로 제안했다. 토론은 없었고 국민의당에선 이 연구위원을 지난 3월4일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공표 및 정보통신망법상 허위사실 적시 명예훼손 혐의로 서울서부지검에 고발했다. 서울 마포경찰서는 지난 4월 고발인 조사를 진행했다. 이 연구위원에 대한 조사는 12일 오후 진행된다.
이날 회견에서 이상민 연구위원은 “재정에 대해 의견, 정책의 문제점을 무엇이고 개선 방식은 무엇인지 발표하는 것이 평소 업무인데 업무를 통해 고발당할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며 “학자들 사이에서 재정을 바라보는 입장이 다를 수 있다. 그런데 정부가 한쪽 편만 들어 다른 한쪽 학자들을 전부 고발한다면 절반 혹은 절반 이상은 피고발인이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연구위원은 “그때도 그렇지만 지금도 안 후보의 말이 틀렸다고 생각한다”라며 “안 후보 측이 억울한 부분이 있다면 고발이 아니라 토론을 하자”라고 주장했다. 이어 “공론장에서 토론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기대했던 토론에는 응하지 않고 고발장이 날아온 건 안타깝다”며 “토론 상대자는 꼭 안 후보일 필요는 없고 (안 후보가) 지명하는 어떠한 전문가든 토론할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민변 공익인권변론센터는 이 사건을 공익변론 사건으로 지정해 변호인단을 구성했다. 변호인단에 참여하고 있는 조수진 변호사는 이날 “이 사건은 대선후보가 형사사법절차를 이용해 정책 공약에 대한 학술적 비판에 제재를 가한 사건으로 표현과 학문의 자유가 침해됐다고 판단한다”고 말했다.
조 변호사는 이 사건이 '허위'를 말한 것이 아니며 사실이 아닌 의견 영역의 발언인 점, 대선을 앞두고 정책검증을 위한 공익적 발언이기 때문에 '비방'을 목적으로 하지 않았다는 점, 해당 발언이 안 후보의 사회적 평가(명예)를 훼손하지 않았다는 점 등을 근거로 허위사실에 의한 명예훼손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조 변호사는 “대법원 판례를 보면 적시한 사실이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은 비방목적이 부인된다고 일관되게 판단하고 있다”며 “또한 판례에서는 의견을 제시할 때는 죄가 되지 않고 이러한 사안은 고발보다는 가급적 학문적 논쟁, 사상의 자유 영역에서 해결해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또한 “D4의 개념을 잘못 썼다고 안 후보의 명예가 훼손됐느냐”며 “정치인 등은 공적인 인물이기 때문에 대중의 비판을 어느정도 감수해야 한다는 게 법원의 입장”이라고 했다.
조 변호사는 이번 사건이 참고인도 없고, 이미 발언 영상이 온라인상에 있기 때문에 빠른 시일 내로 결론이 날 것으로 예상했다.
국민의당이 이 연구위원을 고발한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죄가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다며 법조항 자체에 대한 문제제기도 나왔다. 이지은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선임간사는 “공직선거법상 후보자 허위사실공표죄는 유권자의 표현의 자유를 과도하게 침해해 폐기해야 한다는 주장이 학계와 시민사회에서 오랫동안 이어져왔다”며 “후보자 비방과 비판을 뚜렷하게 구분하기 어렵고 특히 선거기간에는 진실과 허위를 구분하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공직선거법 제250조(허위사실공표죄) 2항을 보면 당선되지 못하게 할 목적으로 후보자에게 불리하도록 후보자 등에 대해 허위의 사실을 공표하거나 공표하게 한 자와 허위의 사실을 게재한 선전문서를 배포할 목적으로 소지한 자는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상 3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선임간사는 “선거시기에 유권자는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자를 당선되게 하려고 자유롭게 의사를 표현할 자유가 있고 원하지 않는 후보자가 떨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할 수 있다”며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없다면 대의민주주의는 의사를 제대로 반영하기 어려울 것이고 후보자가 무슨 말을 하든 입다물고 투표만 하라는 것인가”라고 말했다. 이어 “선거시기 유권자는 어느때보다 할말이 많아지는 시기”라며 “고발 취하를 촉구한다”고 했다.
재정분야 학자도 기자회견에 참여했다. 강병구 인하대 경제학과 교수(포용재정포럼)는 “연구자의 합리적 문제제기에 논리적으로 대응하지 않고 검찰에 고발하는 행위는 연구자의 사회적 참여와 기여를 가로막는 부적절하고 반사회적 행태”라며 “연구자 비판이 부담스러운 정치가들이 연구자들의 비판에서 작은 티끌을 발견해 의도적으로 검찰고발이나 소송으로 대응하는 경우 오래 지속되고 결말이 나기 어려운 법적 공방 과정에서 심리적·경제적·시간적 어려움으로 연구자들의 에너지가 소진돼 사회참여를 통한 민주주의 발전은 크게 저해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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