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정부 "응급상황시 불가피한 임신중단 시술은 의료진의 법적 의무"
미국 보건복지부는 11일(현지시간) 응급상황에서 임신부의 생명이나 건강을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해서 임신중단 시술을 제공한 의료진은 연방 법률에 따라 보호된다고 밝혔다. 미국 연방 대법원이 여성의 임신중단 권리를 인정한 ‘로 대 웨이드’ 판결을 폐기한 이후 상당수의 주가 임신중단을 금지하거나 엄격히 제한하자 정부가 연방 법률을 앞세워 견제에 나선 것이다.
AP통신 등에 따르면 미 복지부는 이날 의료 종사자는 임신중단이 금지된 주일지라도 응급의료법(EMTALA)이 규정한 응급상황에서 임신부의 생명과 건강을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임신중단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는 내용의 가이드라인을 배포했다. 1986년부터 시행된 응급의료법은 미국인들이 의료비 납부 능력에 상관없이 응급 상황에서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비어 베세라 복지부 장관은 의료기관에 보낸 서한에서 “응급실에 온 임신부가 응급의료법상 응급상황이고 임신중단이 환자의 상태를 안정시키는 데 필요할 경우 의료진은 반드시 그 치료를 제공해야 한다”라면서 “만약 주법이 임신부의 생명에 대해서도 임신중단 금지 대상에서 예외를 두지 않으면 그 법보다 연방법이 우선된다”라고 밝혔다. 베세라 장관은 “이는 새로운 정책을 시행하는 것이 아니고 기존 법상 있는 의무를 알리기 위한 것”이라면서 “의료 서비스 제공자가 응급실에 온 환자의 상태를 안정시키기 위해 이런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 법적 의무가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미국 대법원은 지난달 여성의 임신중단 권리를 인정했던 1973년의 ‘로 대 웨이드’ 판결을 공식 폐기했다. 여성의 임신중단 권리는 미국 헌법이 보장한 권리가 아니라고 판단한 것이다. 이후 공화당이 집권한 보수 성향의 주들은 임신중단을 사실상 금지하거나 엄격하게 제한하는 법률을 시행하기 시작했다.
임신중단을 금지하거나 엄격하게 제한하는 주의 법률들은 대체로 임신중단 서비스 제공자를 처벌하는 방식으로 제재를 가하고 있다. 임신중단을 금지하거나 엄격하게 제한한 주들도 임신부의 건강이나 생명이 위협을 받는 경우 임신중단을 허용하는 예외를 두고 있지만 의료 서비스 종사자들은 향후 고발이나 처벌을 당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주저할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이 때문에 보건 전문가들은 임신중단이 금지되거나 엄격히 제한된 주에서 임신부 사망률이 높아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한편 미 연방 하원은 이번 주에 로 대 웨이드 판결 취지를 입법화하기 위한 새 법률안에 대한 표결을 진행할 예정이다. 이 법안은 여성의 임신중단 권리를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민주당 주도로 하원을 무난히 통과할 것으로 보이지만 공화당이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상원을 통과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워싱턴 | 김재중 특파원 herme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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