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 개정됐지만 부정청약 '피해자' 분쟁 여전..SH공사도 5년째 다툼

유엄식 기자 2022. 7. 12.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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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헌동 SH서울도시주택공사 사장이 올해 3월 서울 서초구 내곡지구 5,6단지(뒤 아파트) 인근에서 내곡지구 분양원가 공개 설명회를 하고 있다. 현재 내곡지구6단지(서초포레스타6단지) 분양권 계약유지 문제로 SH공사와 한 선의의 피해자가 소송 중이다. /사진제공=뉴시스

부정청약에 연루된 분양권을 사서 입주한 '선의의 피해자'를 구제하기 위한 법률 개정안이 시행됐지만 현장에선 여전히 분쟁이 이어지고 있다. 개정 법률이 소급적용되지 않아 법 개정 전에 발생한 분쟁에는 영향을 끼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가 부정청약 관련 '선의의 피해자'를 상대로 진행 중인 계약취소 소송 과정에서 무리한 합의안을 제시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계약을 유지하려면 시세를 반영해 최초 분양가보다 약 12억원 높은 금액을 내라고 요구했다는 것이다. 이 사례 역시 법 개정 전에 발생한 분쟁이다. 법 개정의 취지와 SH공사가 서민 주거 안정을 위해 설립된 공공기관이란 점을 감안할 때 적절치 않은 행태라는 지적이 나온다.
8년 전 3.7억 분양한 아파트, 15억~17억 요구한 SH공사
12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SH공사 법무대리를 맡은 A법인은 서초포레스타 거주자 B씨를 상대로 진행 중인 계약취소 소송 2심 판결을 앞두고 계약유지를 전제로 이 같은 합의안을 제시했다.

B씨는 SH공사가 2014년 분양한 서초포레스타 6단지 전용 59㎡ 분양권을 2015년 1월 말 매입했다. 등기부등본상 소유주 정상 등록 여부를 확인했고, 인근 중개업소에서 거래했다. 매도자에 약 2억원의 프리미엄을 지급했다. 해당 평형 최초 분양가는 3억7000만원으로 B씨는 실제 주택 구입에 5억7000만원 가량을 쓴 것이다.

당시 공공분양 단지도 분양권 전매 제한 등 부동산 규제가 없었기 때문에 B씨의 분양권 매입은 적법한 절차를 따른 것이다.

하지만 2017년 정부가 아파트 분양권 부정청약 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B씨의 불행은 시작됐다. 국토부 조사결과 해당 분양권 원당첨자가 부정한 방식으로 청약에 당첨된 사실이 확인됐다. 시행사인 SH공사는 당시 주택법 규정에 따라 B씨에게 계약이 취소될 수 있다는 공문을 보냈다.

이 아파트에서 2015년 4월부터 계속 거주 중인 B씨에겐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SH공사가 분양권 계약취소를 결정하면 분양 원금만 받고 쫓겨날 처지에 놓여서다.

SH공사는 2018년 3월 관련 규정을 근거로 처분금지 가처분 및 계약취소 소송을 제기했고, B씨는 이에 불복하며 법적 다툼이 이어졌다. B씨는 이 과정에서 헌법재판소에 계약취소 근거 규정(주택법 65조 2항)에 대한 위헌법률심판도 청구했다.

하지만 재판부도 B씨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2018년 10월 1심 재판부는 "부정청약 확인 시 계약취소를 할 수 있다"는 조항은 법리적으로 타당하다고 봤고, 헌법재판소도 올해 3월 기존 주택법 조항에 따라 시행사 측에 재량권을 부여한 것은 합헌이라고 판시했다. 과거 비슷한 분쟁을 거친 당사자들은 대부분 계약유지로 합의를 봤다는 점도 이 같은 판결에 영향을 줬다.

정치권에선 비슷한 피해를 막기 위해 주택법 개정을 추진했다. 그 결과 지난해부터 부정, 불법청약으로 당첨된 분양권을 전매해도 매도인과 이해 관계가 없는 '선의의 피해자'로 확인되면 기존 계약을 유지해야 하는 조항이 신설됐다. 하지만 이 규정은 소급적용이 되지 않아 B씨는 구제받지 못했다.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헌동 서울주택도시공사 사장이 4월 25일 오후 서울 용산구 용산주거안심종합센터에서 열린 개관식에서 현판식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국토부 "계약취소분 원분양가 수준 공급" 가이드라인도 무색
국토부도 지난해 재분양에 따른 시세차익을 기대하고 집값 급등기에 시행사나 조합이 입주자를 대상으로 같은 소송을 제기할 가능성을 고려해 기존 계약을 취소한 뒤 재분양할 경우에는 이자비용 등 최소 비용만 더해 가급적 원분양가 수준으로 공급토록 시행규칙을 개정했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SH공사 측 법률대리인이 과도한 요구를 했다는 게 B씨의 주장이다. 2심 재판부도 양측의 합의를 권고한 상황으로 알려졌다. 재판부는 "피고(B씨)가 이 사건 부동산을 점유하고 있다면 사용이익 정산 문제가 있을 수 있고, 원고(SH공사) 측도 이 사건 부동산 근저당권 등 처리를 위해 후속 조치가 필요할 것으로 보이므로 가급적 당사자 조정이나 화해로 마무리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의견을 냈다.

B씨는 "A법인은 시세와 비슷한 수준을 부담한다는 전제로 기존 계약을 유지하고 계속 거주할 수 있게 하겠다고 제안했다"고 주장했다. 현재 해당 단지 같은 평형 시세는 KB부동산 기준 15억이며, 온라인 매물 호가는 17억원 내외로 형성돼 있다. 최초 원분양가를 고려할 때 B씨가 12억~13억원을 추가 부담해야 한다는 의미다.

B씨는 SH공사 측이 합의를 위해 시세와 근접한 금액을 요구했다는 근거로 재판부가 "(양측이) 조정하는 경우 '시가 상당'은 다소 과도한 측면이 있다"며 원고에 보완책을 주문했다는 점을 제시했다.

B씨는 "SH공사는 서울시가 서민주거 안정을 위해 설립한 공공기관 아니냐"며 "겉으로 반값 아파트 등 저렴한 주택을 공급하겠다고 하면서 뒤에선 선의의 피해자에게 과도한 보상을 요구하는 이중적 행태를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수중에 당장 10억원이 넘는 돈을 어떻게 구하냐"며 "사실상 나가라는 통보"라고 토로했다.

이에 대해 SH공사 측은 "전례에 비춰 시가(감정가)에 합의할 수 밖에 없다는 뜻을 전달했을 뿐 12억원을 더 내라는 합의안을 제시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공사 측은 이어 2015~2016년 불법 청약 적발 뒤 전매가 이뤄진 11세대를 대상으로 선의 매수 소명자료 제출 및 재공급을 안내해 B씨를 제외한 10명은 적극 구제했지만 B씨는 별도의 소명 절차를 진행하지 않아 구제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2021년 1월 부산 해운대구 마린시티 자이아파트 입주민들이 최초청약인 부정당첨으로 인한 선의의 피해를 호소하는 집회를 열었다. /사진제공=뉴스1
SH공사 뜻대로 진행되면 다른 피해자들도 수 억원 더 내야…與, 선의의 피해자 소급적용 구제 입법 추진
B씨와 같은 문제로 조합 또는 시행사와 법적 분쟁을 진행 중인 피해자들은 이번 소송 결과를 주시하고 있다. SH공사 측의 합의안이 관철되면 향후 시행사 측이 이를 근거로 과도한 추가 금액을 요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점을 고려해 정치권에선 주택법 추가 개정이 추진되고 있다.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달 말 아파트 부정청약 사실을 모르고 해당 분양권을 전매로 취득한 선의의 피해자에 대해선 계약 시점과 관계없이 소급적용해서 구제하는 내용의 주택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 법이 통과되면 현재 계약취소 분쟁 중인 전국 45가구(부산 해운대 마린자이 40가구, 서울 동작구 아크로리버하임 4가구, 서초구 서초포레스타 1가구)를 비롯해 같은 이유로 분쟁 중이지만 알려지지 않은 선의의 피해자들도 사후 구제받을 길이 열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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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엄식 기자 usyoo@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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