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나간 라자팍사 가문이 스리랑카에 재앙을 불렀다" NYT
기사내용 요약
타밀 반군 토벌한 동생이 대통령돼 형을 총리로 임명
정부 요직 모두 친인척으로 채우고 외채로 흥청망청
[서울=뉴시스] 강영진 기자 = 디폴트(채무 불이행)에 빠진 스리랑카 국민들이 봉기해 부패한 총리를 축출했다. 이와 관련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11일 "정신나간 가문이 스리랑카에 재앙을 불렀다"는 제목의 기고문을 실었다. 기고자는 남아시아, 동유럽, 중동 문제를 다루는 언론인이자 작가인 카필 코미레디다.
고타바야 라자팍사는 2009년 30년에 걸친 타밀 반군을 섬멸한 해결사로 명성을 얻었다. 당시 총리는 형인 마힌다 라자팍사였다. 2011년 총리에서 물러났던 마힌다는 이슬람 반군의 자살 폭탄 공격이 이어지면서 고타바야의 단호한 지도자 위상에 힘입어 2015년 다시 총리가 됐다. 당시 대통령이던 고타바야(73)가 마힌다(76)를 총리에 지명한 것이다.
두 사람은 "번영과 영광의 비전"을 제시했다. 그러나 물가가 치솟았고 식량난과 연료난이 크게 악화했으며 정전이 계속되면서 스리랑카는 붕괴 위기에 처했다.
스리랑카는 막대한 부채, 중국의 지정학적 야심, 팬데믹,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초래된 세계 식량 및 연료난 등 각종 원인에 라자팍사 가문의 오만과 부주의가 버무려진 완벽한 재난에 직면해 있다.
스리랑카 사태는 나이지리아, 라오스, 아르헨티나, 파키스탄 등 개도국에서도 고물가로 인한 소요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정면 경고다.
라자팍사 대통령은 수천명의 시위대가 대통령궁에 들이 닥친 지난 9일 도주했다. 뻔뻔한 탈주극은 지난 5월 총리 관저가 시위대에 둘러싸이자 사임한 그의 형과 닮은 꼴이다.
라자팍사 가문은 1970년 아버지가 공석으로 남긴 의석을 마힌다가 승계할 당시만 해도 영향력이 없었다. 이후 30여년 동안 불안정한 스리랑카 정국을 헤쳐 나오면서 마힌다는 인권옹호자에서 강경민족주의자로 탈바꿈했다. 고타바야가 1998년 IT회사에 일자리를 구해 미국으로 이주한 뒤 2003년 미국 시민권을 받을 때까지도 가문의 앞날은 불투명했다.
2005년 마힌다가 대통령에 당선했을 때 가족들을 대거 정부 고위직에 임명했다. 고타바야는 국방장관에 지명돼 타밀 분리주의 반군을 제압했다. 싱할리족이 다수인 나라에서 2등 시민 취급을 받던 타밀족의 저항을 무차별 유혈 진압했다. 진압과정이 너무나 잔혹해서 전쟁 범죄로 비난받았다. 두 사람은 독재를 강화했고 외채를 늘리는 방법으로 지지기반을 굳혔다. 남아시아에서 인도와 경쟁하던 중국의 지원에 기댔다. 중국은 네팔, 미얀마, 파키스탄에 막대한 대출을 한 상태였다.
인도의 전략적 요충인 스리랑카는 중국 전략에서 매우 중요했고 중국 정부는 라자팍사 형제들을 돈으로 옭아맸다. 중국은 스리랑카 외채의 10%를 차지해 일본과 함께 최대 채권국이 됐지만 고리채였다. 수십억 달러가 유입되고 수도 콜롬보에서 흥청망청 돈을 쓰는 불요불급한 공사들이 진행됐다.
라자팍사 형제들은 스리랑카의 주권을 담보로 제공했다. 중국이 지원한 돈을 자기 가문의 터전인 남부 함반토타에 항구를 짓는데 썼다. 부채 상환을 제대로 못한 스리랑카가 2017년 함반토타 항구와 인근 토지 1만5000에어커를 중국에 99년 기한으로 조차했다. 라자팍사 가문은 2년 전 투표로 축출됐지만 중국은 인도양에 거점을 마련할 수 있었다.
라자팍사 가문은 나라를 망치는데 그치지 않았다. 2019년 부활절 일요일에 이슬람 테러리스트들이 전국에서 269명을 살해했고 이는 라자팍사 가문이 다시 권력을 잡는 계기가 됐다. 형제는 정부 각료들을 모두 능력이 검증안된 친인척으로 채웠고 막대한 외채가 있음에도 경제를 일으키겠다며 세금을 큰 폭으로 인하했다.
잘못된 결정이 불운을 불렀다. 세금 감면으로 정부 세입이 줄어든 상황에서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이 닥쳐 스리랑카의 주 수입원이던 관광산업이 큰 타격을 입었다. 외채 상환에 몰린 정부는 자동차 수입과 복합비료, 농약의 수입을 금지하면서 하룻밤새 유기농으로 전환한다고 발표했다.
결과는 참담했다. 주요 수출품인 차 생산이 18% 줄었고 곡물 생산은 43% 줄었다. 정부가 농약 수입을 금지해 절약한 돈이 4억달러였으나 쌀 수입액은 4억5000만 달러가 됐다. 비료수입을 재개했지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결정타가 됐다. 생필품, 특히 연료난으로 나라가 혼돈에 빠졌다.
라자팍사 형제들은 자신들이 아니라 누가 집권하더라도 재난을 피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주장할 것이다. 그러나 라자팍사 형제들이 스리랑카의 민주주의를 훼손하고 정부기관을 망가트렸으며 나라를 자기 가문의 기업울 경영하듯 한 것을 감안할 때 그런 주장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 비판과 협상에 개방돼 있는 민주적 정부라면 분명 전국민이 겪는 고통을 완화할 수 있었을 것이다. 기업이 무너지고 필수의약품이 고갈됐으며 중산층 가족들조차 끼니를 걸러야만 한다. 스리랑카는 독재자가 만들어낸 객관적 교훈 사례다.
스리랑카 국민들은 중국돈에 기대 번영의 환상을 약속한 라자팍사 가문에 눈이 멀었다. 이 점은 같은 길을 걷는 취약한 나라들에게 생생한 경고다. 인도도 부채한도를 늘리고 식량과 연료가 부족한 긴급 지원 대상이 됐지만 아직도 정신차리지 못하고 있다.
반세기 이상 민족 갈등을 겪어온 스리랑카 주민들이 라자팍사 가문에 대한 분노로 뭉치게 된 점은 희망적이다. 타밀족과 싱할리족은 지금 한 배를 타고 있다. 그러나 라자팍사 가문을 축출한 승리의 기쁨이 곧 잘못된 통치가 빚은 아픔과 맞닥트리게 될 것이다.
라자팍사 가문은 지금 숨어 있지만 그들이 벌인 약탈 만행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공감언론 뉴시스 yjkang1@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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