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문화재는 모두 환수되어야 할까?..환수문화재에 얽힌 이야기
일본, 미국 등서 돌아온 40여점 한자리에
국외소재문화재재단과 공동으로 9월 25일까지
현실적으로 환수 어렵다면 현지 활용 방안 강구해야
문화유산은 저마다 풍성한 이야기를 품고 있다. 오랜 시간 전해져 오는 동안 갖가지 사연이 쌓이면서다. 문화재 자체의 의미와 가치에 더해 역사의 더께까지 얹혀지는 것이다. 약탈 등 여러 이유로 해외로 나갔다가 고국으로 환수된 문화재들의 이야기는 더 풍성할 수밖에 없다.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나라 밖 문화재의 여정’(9월 25일까지)은 해외에서 돌아온 환수 문화재 특별전이다. 기존 문화재 전시와 달리 유물 각각이 지닌 본래 가치를 살피고 유출과 환수의 과정 등 저마다의 사연까지 들어보는 전시회다. 또 21만여점의 해외 소재 문화재의 환수·활용 방안, 문화재 반환을 둘러싼 국제적 갈등의 해결책 등도 생각해 보는 귀한 자리다.
문화재청 산하 고궁박물관과 국외소재문화재재단(재단)이 마련한 특별전에는 40여점이 출품됐다. 해외 소재 우리 문화재의 조사와 연구·환수·활용을 맡은 재단의 설립 10주년을 맞아 그동안 환수된 784점 중 일부를 선보이는 것이다. 상당수는 환수 당시에 소개됐지만 이번에 일반에 처음 공개되는 출품작들도 많다.
검은 옻칠 바탕에 영롱한 자개 장식을 한 나전칠기(나전 매화·새·대나무무늬 상자), 올해 미국 경매에서 구입한 조선 왕들의 글씨(어필)를 수록한 책 ‘열성어필’, 구리안료(동채)를 칠한 ‘백자 동채 통형병’, 지난 달 언론에 공개돼 화제를 모은 ‘독서당 계회도’, 조선 후기 보병 갑옷인 ‘면피갑’ 등이 대표적이다. 일본 소장자에게 지난해 구입한 나전칠기 상자는 조선 후기 작품이다. 나전칠기는 청자·불화와 함께 고려시대 미의식을 대표하는 유물이다. 전시장에는 정교하고 격조높은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고려시대의 ‘나전 국화·넝쿨무늬 자합’(2020년 일본서 구입)이 함께 전시돼 비교해 볼 수있다.
‘백자 동채 통형병’은 바닥에 한국에서 활동한 영국 선교사 스탠리 스미스가 1914년 수집했음을 보여주는 표식이 있어 문화재의 구체적 해외 유출경위를 확인하는 사례다. ‘독서당 계회도’는 1531년 작품(추정)으로 현존하는 계회도 중 실경산수화가 포함된 가장 오래된 계회도다. 회화·기록물이 적은 조선 전기 유물이라 주목되는데, 일본 소장자가 미국 경매에 내놓은 것을 구입했다. 계회(契會)는 조선 문인들이 결속·친목을 위해 가진 모임을, 계회도는 계회를 기념해 그림을 그리고 참석자 명단을 기록한 기록화를 말한다. ‘면피갑’은 독일 상트오틸리엔수도원이 기증한 유물이다. 이 수도원은 2005년에 조선 후기 대표적 문인화가이자 진경산수를 정립한 겸재 정선의 작품 21점이 수록된 ‘겸재 정선 화첩’을 영구 대여방식으로 성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에 기증했는데 전시에 함께 나와있다.
전시회에는 또 1897년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하면서 만든 국새(국가 도장)인 ‘국새 황제지보’(보물) 등 한국전쟁 당시 도난당했다가 미국에서 돌아온 국새들, 독일 로텐바움세계문화예술박물관이 불법 반출을 확인하고 반환한 ‘문인석’, 일제강점기에 약탈당했다가 돌아온 ‘조선왕조실록 오대산사고본’(국보), 해시계인 ‘앙부일구’(보물) 등도 선보인다.
특히 영화 <덕혜옹주>로 잘 알려진 덕혜옹주의 애달픈 사연을 떠올리게 하는 유물로, 덕혜옹주가 어릴 때 입었던 옷인 ‘덕혜옹주 당의(예복으로 저고리 위에 덧입는 상의)와 스란치마(장식용 띠인 스란이 있는 예복용 치마)’도 나왔다. 임경희 고궁박물관 연구관은 “문화재 환수 과정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영상, 복제품도 활용한 ‘면피갑’, 국새의 인면(글자가 새겨진 부분)을 볼 수있도록 한 설치작업 등 관람객의 이해를 돕기위한 전시방식에도 공을 들였다”며 “해외의 우리 문화재에 관심이 더 높아지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역사적 혼란기에는 파괴·약탈 등 문화재 피해가 잦다. 러시아 침공에 따른 우크라이나 전쟁에서도 문화재 피해 소식이 들린다. 잦은 외침과 임진왜란,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등 격동의 시기에 우리 문화재도 상당한 피해를 입거나 해외로 유출됐다. 2012년 재단이 설립되면서 겨우 해외 실태 조사와 환수 작업이 본격화됐다. 현재 국외에 있는 문화재는 일본·미국 등 25개국에 21만4208점에 이른다. 이는 박물관·미술관 소장품같이 공식 확인된 숫자로 개인소장품 등 미공개 문화재를 포함하면 실제론 2배를 넘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본다.
유출된 경위는 약탈·훔치기 등 불법, 판매에 따른 수집이나 기증·선물 등 적법한 경우도 있다. 흔히 해외 소재 문화재는 모두 환수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합법적 유출일 경우 강제 환수할 방법은 없다. 설사 불법 유출이라도 불법을 증명하기 어렵고, 증명하더라도 소유한 국가·개인이 반환을 거부할 경우 현실적으로 마땅한 방법이 없다. 불법 반출된 문화재와 관련해 유네스코가 1970년 제정한 ‘문화재 불법 반·출입 및 소유권 이전 금지와 예방수단에 관한 유네스코 협약’, 1995년 유네스코와 국제사법위원회(사법통일국제연구소·UNIDROIT) 주도로 체결된 ‘도난 또는 불법 반출된 문화재의 국제적 반환에 관한 UNIDROIT 협약’ 등 국제 협약이 있으나 유명무실하다. 문화재 약탈국인 강대국들의 비협조, 소급적용 불가 조항 등으로 실효가 적은 것이다. 이집트·그리스가 영국·프랑스 등과 문화재 반환을 놓고 치열한 다툼을 벌이지만 성과가 부진한 이유다.
결국 문화재 원산국들은 소장국·소장자를 대상으로 법적 환수노력과 함께 자발적 반환·기증(영구 대여) 등을 끈질기게 설득하는 한편으로는 직접 구입하기도 한다. 이번 전시 출품작들도 다양한 방식으로 환수됐다. 현실적으로 법적 환수에 엄청난 시간과 비용·노력이 드는 만큼 오히려 해외 현지에서의 활용이 중요하다는 분석도 있다. 전시·전시 공간·학술적 연구 지원, 수리·복원 후원 등을 통해 현지에서 문화재가 널리 알려지게하는 방식이다. 강임산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지원활용부장은 “불법 유출일 경우 당연히 법적 환수노력을 다해야 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정부와 국민들의 관심 속에 우리 문화재 가치가 현지에서 알려지고 더 인정받도록 해외에서의 적극적 활용방안도 중요하다”고 밝혔다.
도재기 기자 jaek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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