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0시간 노동에 월급 200만원, 비닐하우스 월세는 25만원.. 이곳에서 일하시겠습니까?
주 52시간제 예외업종 됐지만
장시간 노동·저임금 수단으로 변질
열악한 가설건축물 주거 환경 여전
농장주 손에 달린 체류기간 연장
문제제기 보다 감수 택하는 이주노동자
진우씨의 업무는 오전 6시30분에 시작해 오후 5시30분이 돼서야 끝이 났다. 점심시간 1시간을 제외하고 꼬박 10시간을 일했다. 이날만 있던 특별한 야근이 아니다. 진우씨는 한달 중 2일을 제외한 28∼29일을 하루 10시간씩 일한다. 폭염경보가 발동해도, 폭우가 쏟아져도, 그는 단 하루도 날씨를 이유로 쉬지 않는다. 그렇게 일한 대가로 매달 200만원의 임금을 받는다. 진우씨는 주변에 일하는 동료들의 근무 조건도 “다 똑같다”고 했다.
진우씨가 관리하는 비닐하우스 30동 중 하나는 그의 집이다. 차양막이 쳐진 비닐하우스 안으로 들어가면 보이는 컨테이너에 그가 산다. 빛 한줄기 들어오지 않는 이 방의 월세는 25만원. 옆 방에 사는 동료들에 비하면 비싼 편이지만, 대신 그의 방에는 에어컨과 화장실이 있다. 20만원짜리 옆방에 사는 여성은 에어컨은커녕 화장실도 없어서, 용변을 보기 위해 그의 방을 찾아오곤 한다. 그마저도 비닐하우스 밖에 나무판자로 만들어진 재래식 화장실을 사용하는 옆 비닐하우스 사람들보다는 나은 편이다.
한글 가명을 사용했지만, 사실 진우씨는 캄보디아에서 온 이주노동자다. 그의 옆방과 옆 비닐하우스에 사는 동료들 역시, 이주노동자들이다. ‘진우’ 같은 이름을 가진 20대 한국인들은 월 200만원을 받고 280시간을 일하지도, 월세 25만원짜리 비닐하우스에 살지도 않을 테다. 그래서 농가는 항상 인력난에 시달린다. 특히 지난 2년 코로나19로 외국인 입출국이 제한되면서 농가의 구인난은 더욱 심화됐다.
올해 들어 코로나19 확산세가 줄어들자 고용노동부는 외국인 노동자의 입국 인원을 빠르게 늘리고 있다. 11일 고용부에 따르면 지난달 고용허가제(E-9 비자)로 국내 입국이 허용된 외국인노동자는 6208명을 기록했다. 지난 1월(2671) 대비 두배 수준으로 늘렸는데, 올 하반기에는 매달 1만명 입국을 목표로 하고 있다. 또한 지난 6일에는 법무부가 예년보다 한달 빠르게 외국인 계절근로자(E-8 비자) 7388명 도입을 확정하기도 했다. 법무부는 “인력난 해소를 위해 배정 시기를 앞당겨 달라는 농·어촌 요청을 반영했다”고 설명했다.
이주노동자 인권단체들은 이처럼 고용부가 국내 인력 수요를 메우기 위해 외국인노동자를 공급하는 데만 골몰하며, 이들의 열악한 인권 문제는 방치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우춘희 이주인권 활동가는 “정부가 이주노동자를 일손이 필요한 곳에 데려다가 채우는 ‘인력 수급 정책’의 대상으로만 본다”며 “이주노동자가 어떤 곳에서 사는지, 얼마나 오랫동안 일하는지, 최소한의 인간적인 대우를 받기는 하는지, 그 실상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고 꼬집었다.
◆근로기준법 63조가 ‘허용’한 장시간·저임금 노동
포천에서 마주한 이주노동자들의 삶은 정부의 무관심을 증명하는 듯 했다. 정부 정책은 이들의 장시간‧저임금 노동을 ‘허용’하고 있다. 근로기준법 63조는 농업을 주52시간제 예외업종으로 규정한다. 농업이 계절과 기후 등의 영향을 받는 걸 고려한 처사지만, 외국인 노동자에겐 착취를 가능케 한 조항이 됐다.
농촌경제연구원이 2020년 발간한 ‘농업 고용환경 변화에 따른 외국인근로자 활용 정책 방안’ 보고서는 농업이 근로기준법 63조에서 예외업종이 된 취지를 “농업이 계절, 기상, 기후 등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이어 “이러한 농업의 특수성이 강제적인 연장근로와 임금 미지급, 초과수당 미지급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라면서 “이러한 사항은 법률상 금지되는 조항이므로 이를 강력하게 규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지금처럼 폭염이든 폭우든 관계없이 근무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기후 조건에 맞춰 노동시간을 조절하고 그에 상응하는 임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고용노동부의 숙식지침 또한 이들의 열악한 주거를 ‘허용’한다. 2020년 이주노동자 속헹씨가 비닐하우스에서 숨진 채 발견된 이후 고용부는 이주노동자 주거 환경을 개선하겠다며 지침을 내놨지만, 현실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지난해 11월 고용노동부 용역으로 시행된 실태조사를 보면 농업 이주노동자 중 77.6%는 여전히 조립식 패널, 비닐하우스 내 시설 등 가설건축물에 살고 있었다. 주택에 살고 있는 비율은 22.4%에 그쳤다. 고용부는 컨테이너 등 가설건축물도 지자체에서 축조 신고필증을 받은 경우에는 숙소로 사용할 수 있다고 설명하지만, 조사 결과 신고필증을 받지 않은 비율이 85.8%로 대다수를 차지했다.
또한 고용부는 가설 건축물에 거주하는 이들이 ‘희망하면’ 사업장을 변경할 수 있게 했지만 전문가들은 현장을 무시한 정책이라고 비판한다. 고용주의 서명이 있어야 한국 생활을 이어갈 수 있는 노동자들에게 사업장 변경 희망은 그림의 떡이란 이유에서다.
김달성 포천이주노동자센터 대표는 “농장주와 이주노동자의 관계는 완전한 갑을관계”라고 설명했다. 고용허가제는 이주노동자에게 3년의 체류기간을 부여하는데, 고용주의 동의 서명을 얻으면 기간을 4년10개월까지 연장이 가능하다. 반대로 고용주 심기를 불편하게 한다면 체류기간이 연장되지 못한다는 불안감이 이들에게는 있다. 게다가 진우씨처럼 주변 농장들의 상황도 “다 똑같다”는 걸 아는 경우, 섣불리 문제제기 하기보다 감수하고 남아있기를 택할 가능성이 높다.
이에 전문가들은 고용부의 이주노동자 숙소 관련 지침을 개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김이찬 지구인의정류장 대표는 “고용부의 숙식비 징수 지침은 사용주가 아파트 등의 시설을 제공하는 경우 월 통상임금의 20%, 그 밖의 임시 주거시설은 13%를 징수할 수 있게 한다”면서 “고용주가 집이 아닌 컨테이너 같은 곳에 노동자를 살게 하면서도 20만원을 받을 수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진우씨처럼 7명이 사는 경우 고용주는 월 140만원의 임대료를 받는다. 김 대표는 “이런 숙식비 징수지침을 없애고, 주거지로서 건축 허가를 받은 곳만 기숙사로 쓸 수 있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글=조희연 기자 cho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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