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에 달궈진 모래, 겨울 난방에 쓴다..모래배터리 등장
열 손실률 낮은 모래 뜨겁게 달궈
핀란드서 난방에너지 공급망 가동
쉽게 설치할 수 있고 비용도 저렴
여름날 밤 맨발로 해변 모래사장을 걸어보면 낮에 햇빛을 받아 달궈진 모래의 온기가 아직도 남아 발바닥에 따뜻하게 전해져 오는 걸 느낄 수 있다.
건축 자재로 많이 쓰이는 모래는 수백도에 이르는 높은 열 에너지를 저장할 수 있다. 게다가 열 손실률이 낮다. 모래의 열전달계수(heat transfer coefficient)는 0.06와트(0.06W/m²·°С)로 공기(0.024)보다는 높지만 나무(0.13)보다는 훨씬 낮다. 이는 모래가 매우 오랜 시간 열을 유지할 수 있다는 걸 뜻한다. 계수가 작을수록 열이 잘 전달되지 않는다. 해가 진 후에도 오랜 시간 모래가 따뜻한 상태를 유지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섭씨 40도의 모래 1kg이 20도로 낮아지는 데는 5시간30분이 걸린다.
모래의 이런 특성을 이용한 모래배터리가 개발돼 가동을 시작했다. 영국 ‘비비시’ 보도에 따르면 최근 핀란드 남서부 칸칸페 마을에 세계 최초의 모래배터리가 설치돼 가동 중이다. 높이 7m, 폭 4m의 단열 철제 컨테이너로 이뤄진 모래배터리에는 모래 100t이 들어 있다.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의 큰 단점 가운데 하나는 전력을 끊김없이 생산할 수 없다는 점이다. 햇빛이 없는 밤이나 바람이 불지 않는 날에는 전기를 공급하지 못한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장치가 바로 에너지저장장치다. 에너지저장장치를 이용하면 낮이나 바람이 많이 불 때 열심히 전기를 생산해 모아놨다가 필요할 때 즉시 공급할 수 있다. 그러나 리튬이온배터리를 비롯한 기존 에너지저장장치는 효율이 낮아 덩치가 크고 비용도 많이 든다. 게다가 배터리의 주요 소재인 리튬은 값도 비싸고 구하기도 어렵다.
반면 모래배터리는 소재를 쉽게 구할 수 있고 장치도 간단해 비용이 훨씬 저렴하다. 모래배터리를 개발한 폴라나이트에너지(Polar Night Energy)는 건설 비용이 킬로와트시당 10유로(1만3천원) 미만이라고 말한다.
수개월간 500도 유지 가능
모래배터리의 원리는 사실 간단하다. 태양광이나 풍력 등 재생에너지로 생산한 전기를 이용해 모래를 뜨겁게 달군 뒤, 필요할 때 난방 원료로 쓰는 것이다. 저항 가열(전기가 통하는 물질에 전류가 흐를 때 생기는 저항을 이용한 가열) 방식으로 모래 온도를 500도까지 높인 뒤, 열 교환기를 통해 뜨거운 공기를 순환시킨다.
이번에 만든 모래배터리는 정격 전력 100kW를 기준으로 8MWh의 에너지를 저장할 수 있다. 배터리의 수명은 10년이다. 회사가 밝힌 건설 단가대로라면 건설 비용이 1억원을 밑돈다. 회사쪽은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따라 온도는 600~1000도, 저장 용량은 최대 20GWh, 정격 전력은 100MW, 수명은 수십년까지 가능하다고 밝혔다.
모래배터리를 개발한 폴라나이트에너지(Polar Night Energy) 개발자들은 ‘비비시’에 “모래는 열을 저장하는 데 매우 효과적이어서 시간이 많이 지나도 잘 식지 않는다”며 “수개월간 온도를 500도로 유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여름에 데워놓은 모래로 난방 에너지 수요가 많은 겨울에 쓸 수 있다는 얘기다. 회사 쪽은 이같은 모래배터리가 겨울이 긴 북유럽에서 유용한 난방 에너지 공급 방식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청정에너지 확산을 위한 국제기구인 미션 이노베이션(Mission Innovation)은 모래배터리를 최대한 활용할 경우 2030년까지 연간 5700만~2억8300만톤의 온실가스를 줄일 수 있을 것으로 추정한다.
현재로선 난방에만 쓸 수 있어
미국의 국립재생에너지연구소(NREL)도 '친환경 전력'을 위한 실용적 에너지저장장치로 모래배터리에 주목하고 있다. 이 연구소는 석영 성분이 풍부한 규사를 이용한 에너지저장장치 ‘인듀어링’(ENDURING)을 개발하고 있는데, 이 모래배터리의 가열 온도는 1200도다. 연구소는 “기본 시스템은 최대 2만6천MWh의 열 에너지를 저장하도록 설계했다”며 “모듈식으로 만들 수 있어 저장 용량을 쉽게 늘이거나 줄일 수 있다”고 밝혔다.
모래배터리의 단점은 현재로서는 난방 에너지로서만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모래배터리의 실용성을 살리려면 다시 전기로 전환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선 터빈을 비롯한 복잡한 장치가 추가돼야 한다. 비용과 효율을 더 따져봐야 할 문제다.
그때까지는 활용 범위가 온수, 난방 등 열이 필요한 곳에 에너지를 공급하는 정도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최초의 모래배터리 역시 지역 난방 시스템을 운영하는 발전소에 설치됐다.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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