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 시스템 바꿨는데.. 장관 후보자 낙마 왜?

법률 잣대와 尹心에 발목

송옥렬(왼쪽부터), 정호영, 김승희, 김인철.  뉴스1·연합뉴스

“(대통령)비서실은 정책 위주로 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에 대한 비위를 캐는 건 안 하는 게 맞아요. 그래서 제가 민정수석실을 없앴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5월 용산 대통령실 출근길에 법무부에 인사정보관리단을 신설해 인사검증을 맡기는 취지에 대해 설명한 말이다. 대통령실 민정수석실이 과거 은밀하게 진행하던 인사검증을 국회의 통제를 받는 법무부에 맡겨 투명성과 객관성을 강조하려는 취지의 개편이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8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제1차 민선 8기 시·도지사 간담회에 참석하고 있다.   뉴시스

정부는 인사혁신처장이 가진 대통령 임명·위촉 인사에 대한 정보 수집·관리 권한을 대통령비서실장이 아니라 법무부에 위탁하는 대통령령을 개정하면서 대통령실 인사기획관(추천)→법무부 인사정보관리단(1차 검증)→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2차 검증)의 3단계 인사 추천·검증 시스템을 완성했다. 

그러나 윤석열정부 출범 후 61일 만에 1기 내각에서 4명의 장관 후보자가 낙마했다. 전임 정부 1기 내각으로 한정했을 때 문재인정부는 3명, 박근혜정부는 6명이 인사청문회 전후로 낙마했다. 문 정부는 1기 내각 완성에 96일이, 박 정부는 51일이 걸린 것과 비교하면 윤 정부가 강조한 인사검증 시스템이 매끄럽게 작동되는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문 정부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으로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없이 출범했다. 

정호영 전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   공동 취재사진

특히 낙마한 장관 후보자 중에서는 윤 대통령과 인연이 있는 인사들도 포함됐다. 오랜 지인으로 알려진 정호영 전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와 윤 대통령의 사법연수원 동기인 송옥렬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가 대표적이다. 이외에 검찰에 고발된 경우 김승희 전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와 풀브라이트 장학금 ‘아빠 찬스’와 교육부 징계 전력 등으로 논란이 된 김인철 전 교육부장관 후보자도 스스로 물러났다. 

시스템을 바꿨지만 윤 정부의 인사 낙마가 반복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인사검증을 경험한 이들은 윤 대통령이 강조해온 ‘법치’, 법률의 잣대가 오히려 국민 눈높이와 괴리를 부른다고 지적했다. 법적으로, 절차적으로는 문제가 없어도 입시와 병역·채용에서 ‘부모 찬스’ 의혹과 재산 형성 과정의 꼼수는 ‘조국 사태’ 이후 가장 여론의 반발이 큰 부분이다. 윤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꼽히는 이상민 행정안전부·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자녀의 인턴과 논문 대필 등 입시와 채용 관련 의혹에서 가장 큰 비판을 받았다. 정 후보자도 두 자녀가 병원장 재직 중 의학전문대학원에 편입학한 것에 대해 ‘아빠 찬스’라는 비판이 제기됐지만 “단 한 건도 불법이거나 도덕적으로 부당한 행위를 한 적이 없다”고 항변했다. 

‘법적으로 문제가 없으면 괜찮다’는 판단은 27년을 검사로 살아온 윤 대통령의 가치관과 인사 추천·검증을 맡은 검찰·법조인 출신 인사들이 공유하는 인식의 한계라는 지적도 나온다. 고도의 정무적 판단으로 접근해야 할 인사를 실력주의·능력주의 기조 아래 법적으로 문제만 없으면 여론을 설득할 수 있다는 법조인의 시선에서 판단한다는 것이다. 인사 추천 라인에는 검찰 수사관 출신인 복두규 인사기획관, 검사 출신의 이원모 인사비서관이 있다. 1차 인사검증을 하는 법무부 인사정보관리단에는 박행열 인사혁신처 국가공무원 인재개발원 리더십개발부장이 초대 단장에 임명됐지만 ‘윤석열 사단’으로 분류되는 이동균 부장검사를 비롯해 대통령직인수위원회를 거친 검사들이 합류했다. 2차 인사검증은 검사 출신의 이시원 공직기강비서관이 맡고 있다. 

윤석열 정부 초대 공정위원장 후보로 지명된 송옥렬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 후보자가 지난 10일 자진 사퇴 의사를 밝혔다.   뉴스1

인사검증을 하는 입장에서는 임명권자의 의지를 거스르기 어렵다는 하소연도 나온다. 특히 임명권자가 임용하려는 의지가 강할 경우 인사검증에서 문제점을 담은 보고서를 올리는 것 자체가 부담스럽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인사검증 라인에서 부정적인 보고서를 올린 것을 뒤늦게 문제 삼아 모 실세 장관이 취임 후 검증 라인의 인사 조처를 한 사례도 있다고 한다. 인사검증 과정에서 ‘윤심(尹心)’이 강하게 반영될 경우 ‘부적격’ 의견을 쉽게 올리기 어렵다는 것이 실무자들의 토로다. 송 후보자의 경우 검증 과정에서 본인도 과거의 성추행 발언을 한 사실을 인정했고, 검증 라인에서도 이를 엄중하게 봤지만 임명이 강행된 것으로 전해졌다. 

과거 인사검증 업무를 맡았던 한 인사는 인사검증의 요체에 대해 “인사는 고도의 정무적 감각이 필요한 통치 행위”라며 “법적으로 문제가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은 기본이다. 중요한 것은 여론과 국민의 눈높이에서 판단할 수 있는 균형 감각이다”고 강조했다. 

이창훈 기자 corazo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