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K] 자진사퇴 안 하면 '알박기'?..역대 정부 살펴보니

임주현,최유리 2022. 7. 12.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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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지 두 달이 지났습니다. 정권이 교체되면서 여당이 된 국민의힘은 연일 문재인 정부 때 임명된 뒤 임기가 남은 장관급 인사와 공공기관장들의 자진 사퇴를 촉구하고 있습니다. 새 정부의 국정 운영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이유에섭니다.

지난달 14일 한덕수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국무회의가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전현희 국민권익위원장과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은 이 회의에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전날 국무조정실로부터 '참석대상이 아니다'라는 통보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두 위원장은 국무위원은 아니지만, 장관급 공무원으로 그동안 관례적으로 국무회의에 배석해 왔습니다.

두 위원장 모두 문재인 정부에서 임명됐기에 사실상 거취 정리를 요구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 가운데 여당 원내대표도 반복해서 퇴진을 거론했습니다.

"그분들은 법적으로 임기가 보장돼있더라도 물러나는 것이 정치 도의상 맞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그 자리에 앉은 것 자체가 후안무치하고 자리 욕심만 내는 것으로 비칠 뿐입니다."
-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2022.06.16. 국회)

이후 다수의 여당 의원들도 전 정부 인사들의 사퇴 압박에 가세했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표현도 거칠어지고 압박 수위도 높아졌습니다.

김기현 전 원내대표는 자신의 페이스북 글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는 전 정부 인사들을 향해 '후안무치 행태', '똥배짱', '도둑X들'이라는 원색적인 표현을 써가며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페이스북 게시글(2022.07.05.)


같은 당 박수영 의원은 '일종의 대선 불복이자 국기문란'이라고까지 했습니다. 송언석, 한기호 의원 등도 전 정부 인사의 사퇴를 촉구했습니다.

여당 주장대로 임기가 법으로 정해진 '정무직 공무원'임에도, 자신들을 임명한 정치 권력이 바뀌면 알아서 그만둬야 하는 걸까요? 과거 정권교체 시기엔 어땠는지 확인해 봤습니다.

■ 사퇴 압박받는 '정무직 공무원'은 주로 누구?

'정무직 공무원'은 선거로 당선되거나 국회 동의를 얻어 임용됩니다. 고도의 정책 결정 업무를 담당하거나 그런 업무를 보조하는 공무원으로 법률이나 대통령령에서 '정무직'으로 지정한 경우도 해당합니다. 한마디로 '공무원 시험'을 보고 합격해서 신분이 보장되는 경력직 공무원이 아닙니다.

지난해 말 기준 대한민국의 정무직 공무원은 총 136명입니다. 대표적으로 대통령, 국회의원, 국무총리, 국무위원(각부 장관), 감사원장 등이 있습니다.

인사혁신처는 법률과 대통령령으로 지정한 정무직 공무원을 아래와 같이 크게 13개 항목으로 정리해 공개하고 있습니다. 개별 법률에 따라 더 많은 정무직 공무원이 있지만, 가장 대표적인 경우만 뽑아서 정리했다는 게 인사혁신처 담당자의 설명입니다.


이들 대부분은 개별 법령에 각자의 임기가 정해져 있지만, 국회 사무총장과 국무총리, 국가정보원장처럼 임기를 따로 정해두지 않은 경우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실제로 여권이 사퇴 압박을 넣고 있는 임기제 정무직 공무원은 어디까지라고 봐야 할까요? 여권이 주로 거론하는 대상은 '장관급·기관장급' 인사입니다.

그런 점을 감안해 위 13개 항목에 해당하는 정무직 공무원 중 문재인 정부 말기에 임명돼 지금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는 '장관급 이상' 인사들을 추려봤습니다. 위 항목에는 없지만, 여당 의원들이 콕 집어 실명을 언급한 국민권익위원장과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도 포함했습니다.


반면 임기가 남았음에도 정권교체기에 사퇴한 장관급 이상 인사들도 있습니다. 조성욱 전 공정거래위원장과 고승범 전 금융위원장은 지난 5월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사의를 밝혔습니다.


이처럼 정부가 바뀐 후 '알아서 물러난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가 혼재돼 있다 보니 남아있는 인사들에게 사퇴 압박이 가해지고 있는데, 전현희 권익위원장과 한상혁 방통위원장은 "임기를 지킬 것"이라며 공식적으로 중도 사퇴 거부 의사를 밝힌 상태입니다.

전현희 국민권익위원장(좌)과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우)


■ 역대 정부 살펴보니…금융위·공정위 '중도 사퇴' 많아

국민의힘 의원들은 임기제 정무직 공무원도 정부가 바뀌면 "과거부터 정치 도의상" 혹은 "관례상" 중도 사퇴해왔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정말 그랬을까요?

해당 내용을 확인하기 위해 '문민정부'를 표방한 김영삼 정부부터 문재인 정부에 이르기까지 정권교체기 정무직 공무원의 중도 사퇴 여부를 조사했습니다. 대상은 앞서 살펴본 곳과 같습니다. 인사혁신처가 규정한 13곳의 정무직 공무원 중 임기가 정해져 있는 장관급 이상 인사들입니다.

그 결과 금융위원장과 공정거래위원장이 다른 자리에 비해 중도사퇴가 많았던 걸로 나타났습니다.


2008년 출범한 금융위는 이명박 정부 때부터 지금까지 총 8명의 위원장이 거쳐 갔습니다. 그중 3명의 위원장이 정권교체기에 중도 사퇴했습니다. 금융위원장의 임기는 3년으로 한차례 연임할 수 있습니다.

이명박 정부 때 임명됐던 3대 김석동 위원장은 임기 10개월을 남겨놓고 박근혜 정부 출범에 맞춰 중도 사퇴했습니다. 당시 김 전 위원장은 새 정부 출범에 맞춰 물러나겠다는 뜻을 밝혀왔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박근혜 정부 중반기인 2015년 3월 임명된 5대 임종룡 위원장도 남은 6개월의 임기를 채우지 못했습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직전인 2017년 5월 8일 사표를 냈고 2달이 지난 7월 18일 이임식을 갖고 자리에서 물러났습니다. 임 전 위원장은 이임식에서 "아직도 갈 길이 많이 남았는데, 그 어려움을 여러분께 넘기고 떠나게 돼 미안하다"며 아쉬운 감정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문재인 정부의 마지막 금융위원장으로 기록된 8대 고승범 위원장도 임기 10개월 만에 자리에서 내려왔습니다.


공정거래위원장은 김영삼 정부부터 문재인 정부까지 총 15명이 거쳐 갔는데, 그중 5명이 정권교체기에 사퇴했습니다.

11대 이남기(김대중→노무현 정부 교체기), 13대 권오승(노무현→이명박), 16대 김동수(이명박→박근혜), 18대 정재찬(박근혜→문재인) 위원장이 임기를 짧게는 5개월에서 1년을 남겨놓고 중도 사퇴했습니다. 20대 조성욱 전 위원장도 지난 5월 사의를 표명했습니다.

■ 인권위 등 대체로 임기 채운 곳들도 다수

반면, 2001년 출범한 국가인권위원회의 위원장들은 정권교체기에도 대부분 임기(3년·1회 연임 가능)를 채웠습니다.

노무현 정부 때 임명된 4대 안경환 위원장은 이명박 정부에서도 1년 5개월 가량 일하다 임기 3개월을 남기고 물러났습니다. 이후 임명된 5대 현병철 위원장은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거치며 1년 연임(6대)에도 성공해 6년 임기를 모두 채웠습니다. 박근혜 정부에서 임명된 7대 이성호 위원장도 문재인 정부에서 1년 4개월을 더 근무하며 3년 임기를 채웠습니다. 지금은 문재인 정부 시절인 지난해 9월 임명된 송두환 위원장이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감사원장(10명 중 2명)과 국민권익위원장(7명 중 1명), 방통위원장(6명 중 1명)은 일부 인사만 정권교체기에 스스로 자리에서 내려왔습니다.


정리하면, 진보·보수할 것 없이 역대 정부에서도 '알아서 내려온 경우'와 '자리를 고수한 경우'가 혼재돼있었습니다. 그때도 지금처럼 자리를 고수하려는 임기제 정무직 공무원에게 '그만 내려오라'는 정치적 압박이 가해졌고, 여야 간 힘겨루기가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정부가 몇 차례 바뀌어도 변함없는 이런 모습, 왜 반복되는 걸까요?

■ "정치력 부재에서 비롯"…제도 개선 목소리 나와

다수의 전문가들은 '정치력 부재'를 근본 이유로 꼽았습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인사행정 전문가는 정부마다 반복되는 임기제 정무직 공무원의 자진 사퇴 논쟁을 비판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임기제 고위 공무원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어서 임기제를 정했다는 사실을 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간 정치권은 이러한 제도적 장치를 종종 무시하고 교체해왔습니다. 우리의 역사발전에서 어떤 정부 혹은 어떤 지도자가 한번은 새로운 시도를 해서 새로운 전통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런 논쟁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 같습니다."

이종수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는 문화일보 기고문에서 "권력이 자신의 못난 자식들을 좋은 자리에 앉히려는 불륜이 40년째 계속되고 있다"면서 윤석열 대통령이 시스템을 개선하지 않으면 "알박기와 낙하산의 다람쥐 쳇바퀴는 반복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최창렬 용인대 특임교수(정치학)는 세계일보 기고문에서 "윤석열 대통령도 검찰총장 시절 '임기는 국민과의 약속이므로 지켜야 한다'고 했기 때문에 정부의 공공기관장 사퇴 압력은 '내로남불'로 비판받아도 할 말이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문재인 정부 때 박근혜 정부에서 임명한 기관장들에게 사직을 요구한 혐의로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의 실형이 확정된 데 이어 백운규 전 산업부 장관도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상황에서 여권이 유사한 행위를 반복하고 있다는 주장입니다.

최 교수는 그러면서도 "한국 정치에서 중립적 인사가 아닌 인물이 임기제를 내세우면서 자리를 고집하는 것 역시 구태의 전형이 아닐 수 없다"며 "소모적인 논쟁을 끝내기 위해선 정치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 '어떻게 바꿔야 하나' 두고 학계·정치권 '이견'

문제는 정권교체기마다 해당 문제가 여야 간 뜨거운 화두로 떠올랐음에도 사회적 논의가 충분치 않았다는 겁니다.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하면, 정권교체 시 임기제 공무원의 중도 퇴진 문제를 면밀히 연구한 바는 손에 꼽을 정도입니다.

관련 연구를 진행한 적이 있는 한 행정법 전문가는 "학계 공감대가 형성될 만큼 많은 논의가 된 것은 아니다"면서 "나도 논문을 작성하면서 다른 문헌을 거의 참고하지 못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몇 안 되는 연구 결과를 놓고도 전문가들의 의견은 엇갈리고 있습니다. 각 기관의 독립성을 지켜주는 차원에서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임기를 보장하는 게 원칙이지만, 새 정부와 손발이 안 맞을 경우 그 피해가 국민에게 돌아갈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오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너무 친정부 인사만 중용하면 '코드 인사'가 횡행하고 부처별 정책의 연속성을 해칠 수 있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습니다.

"상식적으로 정무직은 (퇴임하는 대통령과) 같이 사퇴하는 게 맞는데, 임기가 있는 정무직의 경우에는 이게 사퇴하는 게 맞느냐 하는 것에 대해서 솔직히 (학계에서) 의견이 좀 갈립니다."
- 오성호 상명대 행정학과 교수

정치권도 마찬가지입니다. 공수가 바뀌어 여당이 된 국민의힘은 '교체'를, 야당이 된 더불어민주당은 '임기 보장'을 외치고 있는데 의견 차가 좁혀질 기미는 보이지 않습니다.
미국 정부의 ‘플럼북’. 표지가 자두색이어서 ‘플럼북’이라고 불린다.


■ 미국 사례에 주목…"우리 현실 맞는 대안 찾아야"

이런 가운데 우리와 같은 대통령제를 채택하고 있는 미국의 사례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미국은 대선이 끝나면 차기 대통령이 임명할 수 있는 고위 공무원부터 장·차관급에 이르기까지 약 9,000개에 이르는 주요 직위 리스트인 '플럼북(Plum Book)'을 만들어 공개하고 새 정부의 인사지침으로 활용합니다.

플럼북에는 공무원의 임명 형태와 보수 등급, 임기 만료일 등 세세한 정보까지 담겨있어 대통령 인사에 대한 책임성을 높이고 권한의 자의적 남용을 막는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플럼북에 등재된 임기제 공무원들은 원칙적으로 사임하지 않습니다. 대신 대통령이 해임할 수 있는 '정당한 이유'가 인정되면 임기제 정무직 공무원을 해임할 수 있습니다. 다만 해임의 정당성을 두고 의회의 견제가 강하게 작동하기 때문에 상당한 수준의 정치적 후폭풍은 감수해야 합니다.

그래서 이런 미국의 플럼북을 본떠 '한국식 플럼북'을 만들자는 제안도 나옵니다.

김종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최근 자신의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공공기관장을 정무직과 전문직으로 분류해 정권교체 시 정무직도 함께 퇴진하도록 법제화하자고 제안했습니다. 이른바 우리 상황에 맞는 '한국식 플럼북'에 정권교체 후에도 '남을 자리'와 '교체될 자리'를 아예 못박아버리자는 겁니다. 이는 학계에서도 종종 나왔던 제안입니다.


사실 '한국식 플럼북'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과거 노무현 정부가 우리 헌정사상 처음으로 한국판 플럼북을 발행한 바 있습니다. 문재인 정부도 노무현 정부의 사례를 참고해 '국가 주요 직위 명부록'을 발행했습니다.

하지만 아직 제도화돼 있지 않다는 게 한계로 지적됩니다. 미국은 플럼북 발행을 상·하원이 공동으로 4년마다 발행하고 있지만 우리는 정부에 따라 왔다 갔다 하는 데다 내용도 미국의 것처럼 충실하지 못하다는 게 한계로 지적되고 있습니다.

이참에 관련 제도를 손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입니다.

익명을 요구한 한 행정법 전문가는 "나라마다 정치적 상황이 다른 만큼 정치권에서 그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우리 현실에 맞는 범위를 설정해줘야 한다"고 촉구했습니다. 오성호 상명대 행정학과 교수는 "법제화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제대로 운영하느냐가 더 중요하다"면서 심도있는 논의의 필요성을 강조했습니다.

인포그래픽: 김서린

임주현 기자 (leg@kbs.co.kr)

최유리 SNU 팩트체크센터 인턴기자 (ilyouch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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