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는 1인 기업, 본인이 하는 만큼 클 수 있다”...‘특종왕’ 조백건 기자 [송의달 L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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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기자의 꽃은 ‘특종(特種·scoop)’입니다. 글쓰는 일이 본업인 기자(記者)에는 여러 유형이 있지요. 분석 기사를 잘 쓰거나, 칼럼 또는 아름다운 문장을 쓰는 사람.... 이 가운데서 다른 언론 매체가 놓친, 단독 취재로 특종기사를 많이 내는 기자의 존재감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죠.
조백건(曺栢乾·42) 기자는 조선일보 편집국에서 최다(最多) 특종 기록을 써가고 있는 현역 기자입니다. 그는 작년 5월부터 올해 5월까지 1년 동안 7건의 특종을 해 사내 1위에 올랐습니다. 보통 기자들이 10~20년동안 할 만한 특종 숫자를 그는 1년 만에 달성한 겁니다. 그는 신참 기자로 활동을 시작한지 4년 6개월만에 10건의 특종기사를 써서 일찌감치 사내에서 ‘특종 제조기’란 별명을 얻었습니다.
조 기자는 2011년 12월 말 열린 조선일보 편집국 연말 국회(局會)에서 그해 최다 특종상을 받았는데요. 양상훈 편집국장(현 주필)은 그에게 “이름(백건)처럼 특종을 100건 할 때까지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며 축하했습니다. 조선일보 최고의 민완(敏腕) 기자인 조백건 기자를 만나 그의 생각과 비결을 들어 봤습니다.
◇자신을 소개한다면
“고려대 사회학과를 졸업했고 2007년 11월 조선일보 수습기자 47기로 입사해 15년째 조선일보에서 기자 생활을 하고 있다. 사회부, 정치부, 프리미엄뉴스부를 거쳐 작년 12월부터 사회정책부에서 감사원과 국토교통부(교통 분야)를 출입하고 있다.”
입사 이후 모두 몇 건의 특종을 했나?
“(특종을 워낙 많이 하다보니) 전체 개수는 세어본 적이 없다. 어림짐작으론 한 해 2건 정도 특종을 했다고 치면 15년차를 감안했을 때 30개 정도 하지 않았을까. 작년 1월부터 올 5월까지는 8개 정도 특종을 했다.”
조 기자는 그러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최근에 한 특종 기사 가운데 김명수 대법원장이 임성근 부장판사가 2020년 사표를 내자 ‘수리하면 여당이 (당신을) 탄핵 못한다’며 반려한 이른바 ‘탄핵 거래’ 사건 기사가 기억이 난다. 확인하는데 특히 애를 먹었기 때문이다. 또 김명수 대법원장이 ‘항공기 회항’ 사건으로 기소된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한 직후인 2018년 초, 김 대법원장의 며느리(변호사)가 일하는 한진 법무팀이 대법원장 공관에서 만찬을 가진 ‘한진만찬’ 기사는 내용을 듣고 최종 확인을 하는데 4개월이 걸려 기억에 남는다.
산업통상자원부 원전 담당 공무원들이 남북정상회담 직후인 2018년 5월 작성했다가 감사원 감사 도중 삭제한 ‘북한 원전건설 추진’ 문건에 북한 신포 등에 원전을 지어주는 내용이 담겼다는 기사, 임지훈 카카오 전 대표가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 등을 상대로 국내 성과급 소송 중 역대 최고액인 887억원의 성과급 지급 소송을 제기했다는 기사를 쓰기도 했다.”
◇많은 특종을 하는 비결을 공개한다면
“무엇보다 운(運)이 좋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열정, 집념 이런 것과 무관하게 우연히 쉽게 얻어 걸리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비결 비슷한 게 있다면 선배들이 자주 말씀해주셨던 ‘루틴 체크’(routine check) 아닐까 싶다. 전화로든, 카톡으로든, 익명의 취재원의 경우 이메일로든 틈이 나면 수시로 취재원에게 말을 걸어 잡담을 하면서 업무 얘기도 주고받는 식으로 꾸준히 챙기는 것이 나에겐 가장 효과적이었던 것 같다.”
혹시 취재 과정에서 본인만의 특별한 버릇이나 습관이 있나?
“취재 기자로서 나만의 버릇은 기사에 따라 속옷을 맞춘다는 것이다. 가령 취재한 내용이 꽤 파급력이 있어 며칠 굴러갈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 기사를 쓰는 첫째 날 입는 속옷과 후속 기사를 쓰는 둘째 날과 셋째 날 착용하는 속옷이 다 정해져 있다. 이 순서를 안 지켰더니 기사가 어그러지는 것을 경험한 뒤 징크스가 돼 버렸다.”
신문기자직을 택한 동기는?
“솔직히 특별한 동기는 없다. 대학 4학년 때 공부를 계속 하려고 하다가 잘 안 돼서, 뭘 할까 고민하던 차에 친구가 조선일보 인턴을 지원하는 것을 보고 같이 지원해 인턴을 하게 됐다. 인턴 생활이 기자 생활인줄 알고 입사했다.”
◇신문기자는 어떤 직업인가?
“어떻게든 취재해서, 어떻게든 마감해야 하는 직업인 것 같다.”
기자가 된 후 가장 보람있었던 순간은? 가장 아쉬웠던 순간이라면?
“한국 최고 언론사인 조선일보에 들어와 좋은 선후배들을 알게 된 것이 가장 보람된 일이다. 가장 아쉬웠던 순간은 2008년쯤 연세대 장학생 기사를 쓴 직후였다. 어려운 환경에서 우수한 성적을 올린 이 학교 장학생들을 인터뷰해 사회면톱 기사로 쓴 적이 있었는데, 기사가 나간 날 아침에서야 ‘아차’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 학생들의 사진과 실명(實名)이 담긴 기사에서 그들의 어려운 사정을 너무 자세하게 썼기 때문이다. ‘그 학생들이 가장 친한 친구에게조차 신문에 난 얘기를 하지 못했을 것 같다’ ‘상처를 줬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나의 아둔함에 짜증이 났다.”
◇어떤 ‘마음’으로 기자 생활을 하고 있나?
“아침에 주로 서울 삼청동 감사원 기자실로 가서 머문다. 기자실에 도착하기까지 걸리는 1시간 20분의 시간을 활용하는 게 좋아 자주 간다. 이 시간에 기사들을 읽고 주변에 안부 문자를 하고, 고마운 사람에게 ‘카톡 선물’을 보내기도 한다. 그동안 미뤄뒀거나 깜빡 잊고 하지 못했던 걸 이 시간에 한다. 회사 월급으로 자녀를 키우고, 회사가 제공하는 리조트로 가족 여행을 갈 수 있어 ‘감사한 마음’으로 생활하고 있다.”
여태 쓴 기사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기사가 있다면?
“사회부 경찰기자로 있던 2008년 4월,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써달라면서 연세대에 1억원을 기부하고 이름도 남기지 않고 떠난 할머니를 찾아 나서는 과정을 썼던 기사가 기억에 남는다. 그 할머니의 표정이 인상적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사회부장께서 첫 기부 기사가 나간 직후에 ‘할머니를 찾으라’고 지시해 찾는 일을 내가 맡았다. 단서는 할머니가 기부 후 경기도 파주시 금촌행 버스를 타고 떠났고, 60대 후반에 자녀 0명을 둔 정씨 성(姓)이라는 것 뿐이었다. 파주로 갔지만 모래밭에서 바늘 찾는 심정이었다. 하루를 꼬박 허탕치고 돌아오니 압박감이 더 커졌고 그날 밤 꿈 속에서 ‘연세대가 기독교 학교이니 할머니도 기독교 신자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날 파주 지역 교회에 전화를 돌려 ‘자식 0명을 둔 60대 정씨 성을 가진 할머니’를 물색했다. 56번째 교회에서 ‘그런 분이 한 분 계시다’는 말을 듣고 할머니의 집 앞을 찾아 기다렸다. 집에서 나오는 할머니는 저를 보자 ‘누구시냐’며 미소를 보이셨는데, 인정이 흘러넘쳐 나오는 미소였다. 이 표정은 아직도 나에게 위안이 된다. 할머니는 이 때 ‘기부한 적 없다’며 돌아섰지만, 이듬해 또 연세대를 찾아 3000만원을 기부하시고 떠날 때 ‘작년에 기자 한 명이 집으로 찾아왔는데 매정하게 대해서 미안했다’고 했다고 한다.”
◇신문기자로서 목표가 있다면?
“기자로 활동하는 동안 사람들이 출퇴근길에 따뜻한 웃음을 지을 수 있는 미담(美談)성 박스 기사들을 많이 쓰고 싶다.”
- 기자 직업은 쉽지 않은 일인데, 그럼에도 기자 생활의 보람이라면?
“기자는 힘든 직업인 것 같다. 거의 매일 ‘내 능력으론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느끼고 있다. 그래도 아침에 발제한 내용을 오후에 기사로 쓰고 밤 늦게까지 추가 취재를 해서 기사에 집어 넣는 ‘중노동’을 감수하는 이유는, 기사는 결국 나만의 ‘작품’이기 때문이다. 내가 만든 일부 작품이 파장을 일으켜 사람들의 대화에 등장하는 걸 우연히 옆에서 들을 때의 기쁨은 정말 크다. 별다를 것 없는 내가 만든 기사가 사람들에게 조금의 영향이라도 주고 있다는 걸 확인하게 되는 순간이 가장 기쁘고 보람있다.”
◇몸담고 있는 조선일보는 다른 언론사와 무엇이 다른가?
“‘확인’과 ‘보강’ 두 가지가 크게 다르다. 입사 초기 선배들에게 많이 들었던 말 중에 하나가 ‘확인했느냐’는 것이었다. 취재원 한 명으로부터 들은 정보가 있으면, 그걸 그대로 쓰면 안 되고 반드시 다른 취재원들을 추가 취재해서 사실인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을 세밀하게 가려내야 한다는 가르침이었다. 이것은 조선일보 기자 사회에서 면면(綿綿)히 이어져온 전통이며 큰 강점이다.
다른 하나는 보강(補强)이다. 복수로 확인한 팩트를 더 돋보이게 하기 위해 추가 취재를 해서 팩트를 더 딴딴하게 만들고, 이를 담은 기사도 판갈이를 할 때마다 고치고 고쳐 압축적이고 간결한 기사를 만들어내는 조선일보의 보강 작업은 타 언론사 모두 인정하는 조선일보의 트레이드마크 같은 것이다.”
후배 기자 또는 기자가 되려는 젊은이에게 조언한다면?
“요즘 후배 기자들은 모든 방면에서 나보다 나은 것 같아 특별히 조언할 게 없다. 다만, 기자를 준비하는 분들에게는 ‘기자는 1인 기업에 가깝고, 그래서 본인이 하는 만큼 본인을 키워나갈 수 있는 직업이니 관심 있으면 도전하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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