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억 붓고도 고용창출 낙제.. '뜨거운 감자'된 주 52시간제 [심층기획]

안병수 2022. 7. 12. 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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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정부, 대대적 노동개혁 예고
근로자 1명당 月 최대 80만원 지원해
자금·인력난 中企에 '땜빵 인력' 수혈
4년간 고용유지율 89.6% 성과 냈지만
고용증감 15.9%.. 평균比 10%P 낮아
경영계 "업무 효율 낮은데 비용만 증가"
정부, 주 52시간제 개편 하반기 구체화
노동계 "새 정부가 제도 무력화" 비판
"대화 통해 접점 찾아야 윈윈" 지적도
정부가 주 52시간 근무제 개편의 ‘군불’을 때고 있다. 지난달 고용노동부가 연장근로 시간 총량 관리 단위를 현행 ‘주 단위’에서 ‘월 단위’로 바꾸겠다는 정책 방침을 내놓은 데 이어 이달 초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주 52시간 근무제가 획일적·경직적으로 운영되고 있어 개선이 필요하다”며 개혁 의지를 거듭 밝혔다. 이처럼 드라이브를 걸기 시작한 윤석열정부의 노동개혁은 이달 출범하는 전문가 집단인 미래노동시장연구회가 판을 짠 뒤 하반기에 구체화될 전망이다.

노동계에선 결사반대 기류가 강하다. 특히 주 52시간 근무제 개편을 두고 새 정부가 사실상 제도 무력화에 나섰다며 집중적인 비판을 쏟아 내고 있다. 반면, 경영계 등 일각에선 문재인정부 때인 2018년 도입한 이 제도가 기업들의 업무효율성을 떨어뜨리고 각종 사회·경제적 비용을 증가시키는 등 부작용이 적잖다고 지적한다.

11일 세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정부는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 및 정착을 위해 최근 4년 동안 1000억여원에 이르는 지원금을 지급해 온 것으로 확인됐다. 주 52시간 근무제 실시를 위한 교대제 근무 도입 등 고용 유지에 쓰인 돈인데, 일자리 창출 효과는 고용장려금 사업 평균에 한참 못 미쳤다. 이 때문에 해당 사업의 정부 자체 평가는 최근 2년 연속 ‘낙제점’이었다. 막대한 보조금으로 겨우 지탱해 온 주 52시간 근무제를 궤도에 오를 때까지 끌고 가야 할지, 전면 손질에 나서야 할지가 한동안 노사갈등의 뇌관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저녁이 있는 삶’, 유지비용만 연간 300억원

정부는 기존의 ‘일자리 함께하기’ 사업에 2018년 7월 ‘주 근로시간 단축제’ 지원 유형을 신설했다. 주 52시간 근무제 신규 적용 기업에 근로자 1명당 최대 월간 80만원을 지원하는 것이 골자다. 그간 신규 근로자 채용에 따른 인건비 지원 등으로 활용됐던 제도를 주 52시간 근무제를 뒷받침하기 위해 탈바꿈시킨 것이다.

그러나 이 제도는 기업들의 고용 유지 효과는 있었지만, 지원금을 마중물로 한 지속적인 일자리 창출에는 실패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본지가 입수한 고용부 자료에 따르면 정부는 해당 사업에 2018∼2021년 4년간 1135억8200만원을 쏟아부었다. 단순 계산으로 연간 약 300억원에 달하는 비용이 투입됐다. 특히 해당 기간 상용근로자 300인 미만의 중소·중견 기업에 전체 지원금의 61.4%(696억9300만원)가 몰렸다. 자금·인력난에 시달리는 영세 업체들을 중심으로 주 52시간 근무를 맞추기 위해 ‘땜빵 인력’을 대거 수혈해 왔다는 얘기다.
사업 효과는 일장일단이 극명했다. 지원 종료 후 6개월 이상 고용을 유지한 비율은 4년 평균 89.6%로 일자리 함께하기가 속한 고용장려금 사업 전체 평균의 80.2%에 비해 높았다. 다만 이는 가뜩이나 취업기피에 시달리는 영세 기업들이 업무 차질을 우려해 쉽게 고용을 줄일 수 없는 사정임을 감안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집계 기간이 6개월로 짧아 그간 지원금에 의존해 온 기업들의 실제 고용 유지 능력에 비해 성과가 과장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반면 지원을 받기 전과 비교해 1년 새 일자리 수 변화를 가리키는 고용증감률은 15.9%로, 전체 평균 24.5%보다 10%포인트 가까이 낮았다.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으로 어쩔 수 없이 쪼개기 일자리를 만들었지만, 이를 지원금을 통해 유지하는 것 외에는 뚜렷한 고용 효과가 없었던 것이다.

정부도 자체 평가에서 낮은 고용증감률을 지적했다. 고용부는 지난해 2020년도 일자리 사업성과 평가 보고서에서 일자리 함께하기 사업에 대해 “고용유지율에 비해 고용증감률이 낮은 편”이라고 언급하며 네 가지 평가 등급 중 2번째로 낮은 ‘개선 필요’ 판정을 내렸다. 고용부에 따르면 2021년도 일자리 사업성과 평가에서도 같은 등급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당국이 사업성과 평가를 사업별로 공개한 2020년부터 2년 연속 좋지 못한 평가를 받은 것이다. 고용부 관계자는 “앞으로 예산을 예년보다 줄이는 쪽으로 가닥이 잡혔다”며 “주 52시간 근무제 정착까지 다양한 지원방안을 강구할 예정이다”라고 밝혔다.

◆기싸움만 하세월… “노사, 터놓고 해결책 찾아야”

해마다 수백억 원을 쏟아붓는 지원금의 실효성 문제뿐 아니라 제도를 둘러싼 노사갈등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당장 주 52시간 근무제 개편은 노동계의 연례행사인 여름철 전국 각지 시위인 ‘하투’(夏鬪)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은 지난 2일 서울 도심에서 5만여명이 집결한 전국노동자대회를 열고 주 52시간 근무제 개편 등을 ‘노동 개악’으로 규정하며 저지 투쟁을 선언했다. 향후 정책 추진이 본격화하면 이런 움직임은 더욱 격렬해질 가능성이 크다.
경영계도 속앓이 중이다. 정부 개편안이 넘어야 할 산이 적지 않아서다. 주요 내용인 월 단위 연장근로는 법을 개정해야 하는데 ‘여소야대’ 국회를 넘을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 법이 바뀌더라도 노사합의가 전제돼야 사업장에서 실시할 수 있다는 단서가 달릴 전망이다. 이에 기업별 노동조합의 힘이 클 경우 사실상 개편안이 사문화하거나, 월 단위 연장근로가 단체교섭의 볼모로 잡힐 우려가 적지 않다.

결국, 노사 간 타협과 공감대 형성 없이는 현장 혼란만 가중될 공산이 크다.

관련 설문조사에서도 양측의 인식 차는 뚜렷하게 드러난다. 지난해 10월 중소기업중앙회가 상용근로자 300인 미만 중소·중견 기업 414곳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에서 응답 기업의 54.1%가 현행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에 어려움을 느낀다고 답했다. 그 이유로는 ‘구인난’이 52.2%로 가장 많았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고용부가 근로자 13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에서는 응답자의 77.8%가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을 잘한 일로 평가했다.

전문가들은 노사가 극한 대립에서 벗어나 대화와 타협을 통해 접점을 찾아야 노사 모두에게 긍정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연장근로는 근로자의 동의 없이는 시간을 늘릴 수 없는데도 무조건 한쪽에 불리한 것처럼 비치고 있다”며 “사회적 합의기구에서 굵직한 노사단체뿐 아니라 다양한 기업과 근로자의 목소리도 담아내 접점을 찾을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유길상 전 한국고용정보원장은 “무조건적인 비판 논리만 내세우면 노사 모두 진정성을 의심받을 수 있다”며 “일자리 창출과 삶의 질 개선이라는 궁극적인 목표를 세우고 대화하면 타협할 수 있을 것이라 본다”고 강조했다.

안병수 기자 ra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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