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10시간 노동·컨테이너 숙식.. 갇혀버린 '코리안드림'

조희연 2022. 7. 12.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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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권 보호 못 받는 이주노동자
월 이틀 쉬고 최저임금도 못 받아
이주노동자 78% 가설건축물 거주
고용주, 체류연장 여부 좌지우지
노동자들 정당한 권리 요구 못해
"정부, 일손난 이유 입국만 확대
노동 착취 현실은 외면" 비판론
지난 8일 찾은 경기도 포천군 가산리에는 가로 7m, 세로 100m쯤 되는 비닐하우스 수백동이 모여 있었다. 그중 한 비닐하우스 앞에서 경운기 한 대가 달달거리는 소음을 내며 힘차게 작동했다. 캄보디아에서 온 A(26)씨는 비닐하우스 안에서 경운기 엔진을 동력 삼아 호스로 채소에 농약을 치고 있었다.

1분만 서있어도 매캐한 농약 냄새가 마스크를 뚫고 코를 찌르는데, A씨는 일회용 마스크만 쓴 채 3시간째 농약을 뿌렸다. 농약이 맵지는 않으냐는 질문에 땀으로 얼굴이 흥건해진 A씨는 연신 “괜찮아요”라는 말만 반복했다.

A씨는 오전 6시30분부터 일을 시작해 오후 5시30분에 작업복을 벗는다. 점심시간 1시간을 제외하면 꼬박 10시간을 일하는 셈이다. 한 달에 쉬는 날은 단 2일. 폭염이 땅을 달궈도, 폭우가 쏟아져도 A씨는 이틀만 쉰다. 이 고된 노동의 대가는 월 200여만원이다. 주휴수당을 포함한 최저임금 기준으론 267만4720원을 받아야 한다.

A씨는 채소가 심어진 비닐하우스 인근에 위치한 또 다른 비닐하우스에서 식사와 잠자리를 해결한다. 차양막이 쳐진 비닐하우스 안 컨테이너가 그의 유일한 안식처다. 4∼5평에 불과한데도 월세로 25만원이 급여에서 차감된다. 그런데도 그는 “에어컨과 화장실이 있어 다른 동료들보단 낫다”고 했다. 20만원짜리 옆방에 사는 여성은 에어컨은커녕 화장실도 없어서 용변을 보기 위해 그의 방을 찾아온단다.

한국에 돈을 벌러오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열악한 근무조건과 생활환경에 고통 받고 있다. 비자 연장 여부를 결정하는 고용주 앞에서 이들은 철저한 ‘을(乙)’이 될 수밖에 없다. 정부는 이런 현실은 외면한 채 ‘일손 부족’을 이유로 외국인 노동자의 입국 인원을 늘리고만 있어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외국인 노동자에게 불리하게 적용되고 있는 관련 지침들을 정비하고, 정부가 단속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다.
자료=고용노동부 연구용역 '고용허가제 외국인근로자의 주거환경 실태조사 및 법제도 개선방안 마련'
11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달 고용허가제(E-9 비자)로 국내 입국이 허용된 외국인 노동자는 6208명이다. 지난 1월(2671명) 대비 132% 급증한 수치다. 정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외국인 입출국이 제한돼 일손이 부족하자 외국인 노동자 입국 인원을 크게 늘렸기 때문이다. 정부는 올 하반기에는 매달 1만명을 입국시키는 것을 목표로 적극적으로 외국인 노동자를 유치하고 있다.

정부는 외국인 노동자 숫자를 늘리는 데만 급급할 뿐, 이들의 노동권 보호에는 별 관심이 없다는 지적이다. 외국인 노동자 대다수는 A씨처럼 하루 평균 10시간 일하고, 가건물인 컨테이너에서 생활한다. 한 달에 쉬는 날도 이틀 남짓이지만 주휴수당은 이들에겐 ‘그림의 떡’이다. 우춘희 이주인권 활동가는 “정부가 이주노동자를 일손이 필요한 곳에 데려다가 채우는 ‘인력 수급 정책’의 대상으로만 보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정부 정책은 이들의 장시간·저임금 노동을 ‘허용’하고 있다. 근로기준법 63조는 농업을 주52시간제 예외업종으로 규정하고 있다. 농업이 계절과 기후 등의 영향을 받는 걸 고려한 것이지만, 외국인 노동자 착취를 가능케 한 조항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자료=고용노동부 연구용역 '고용허가제 외국인근로자의 주거환경 실태조사 및 법제도 개선방안 마련'
고용노동부의 숙식지침 또한 이들의 열악한 주거를 ‘허용’한다. 지난해 11월 고용노동부 용역으로 시행된 실태조사를 보면 농업 이주노동자 중 77.6%는 조립식 패널, 비닐하우스 내 시설 등 가설건축물에 살고 있었다. 주택에 살고 있는 비율은 22.4%에 그쳤다. 고용부는 컨테이너 등 가설건축물도 지자체에서 축조 신고필증을 받은 경우에는 숙소로 사용할 수 있다고 설명하지만, 조사 결과 신고필증을 받지 않은 비율이 85.8%로 대다수를 차지했다.

또 고용부는 가설건축물에 거주하는 이들이 ‘희망하면’ 사업장을 변경할 수 있게 했지만, 현실을 무시한 정책이라는 지적이다. 고용주의 서명이 있어야 한국 생활을 이어갈 수 있는 노동자들에게 사업장 변경 희망은 언감생심이다. 김달성 포천이주노동자센터 대표는 “외국인 노동자들은 매일 고용주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면 체류기간을 연장할 수 없다는 불안감 속에 산다”고 했다. 김이찬 지구인의정류장 대표는 “지금은 고용주가 집이 아닌 곳에서도 외국인 노동자를 살도록 하고 있는데, 주거지로서 건축 허가를 받은 곳만 기숙사로 쓸 수 있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포천=조희연·이희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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