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2030을 '영끌'로 내몰았나
“순자산 5억원을 달성한 28살 3년 차 투자자입니다. 2018년 신입사원 때 ‘저는 임원이 되고 싶습니다’라고 말했어요.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고(高)연봉’이라는 편익 뒤에 가려진 비용을 알게 됐습니다. 매일같이 이어지는 접대. 그들의 인생에는 자신의 시간이 없었습니다. 막상 윗분들은 모아둔 돈이 많지 않았죠. 저는 절대로 저렇게 살고 싶지 않았습니다.”
지난해 10월, 유명 네이버 재테크 카페에 한 회원이 올린 ‘투자 성공담’ 중 일부다. 글쓴이는 이 카페에서 운영하는 오프라인 강연을 듣고, 각종 멘토링을 통해 투자에 성공했다고 밝혔다. 당시 그가 공개한 자신의 자산은 약 20억원, 부동산 네 곳을 보유하며 종부세도 연간 600만원 정도를 낸다고 밝혔다. 부채(전세금 등)가 순자산의 3배 수준이었지만 그는 개의치 않고 자신의 경험담을 공유했다.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하고 있는 서른 살 정미현씨(가명)도 이 카페의 회원이다. 2020년 처음 주식투자를 시작했고, 2021년에는 이곳 카페에서 개설한 온라인 강의도 수강했다. 직장 동료들끼리 부동산 스터디를 꾸리기도 했다. ‘임장(부동산 투자를 위해 해당 투자 지역을 직접 방문하는 것)’이라는 것도 지난해 처음 경험했다. 서울에서 전세 원룸에 살고 있지만, 지방 도시에서 기회를 노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네 차례 임장 끝에 정씨는 지난해 봄, 충북 청주시에 있는 2억원짜리 주택을 본인 돈 2000만원을 들여 갭투자했다. 나머지 1억8000만원은 임차인의 전세금이었다.
‘28살 순자산 5억 투자자’도, 청주 집을 매입한 정씨도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2030 세대다. 2021년 한 해는 그랬다. 2020년 코로나19 위기 이후 각국의 유동성이 확대되었고, 금리는 낮았으며 ‘오르는 자산’은 많았다. 가상자산(코인 등)·주식·부동산 가격이 뛰면서 사회 전반에 투자 열풍이 일었다. 자본이 부족한 2030 세대일수록 투자라는 유행에 민감했다.
산이 높으면 골이 깊다. 시장에는 사이클이 있고, 한파는 생각보다 일찍 찾아왔다. 2022년 상반기 전 세계 경제가 인플레이션 공포에 휩싸이면서 각국 중앙은행이 긴축에 나섰다. 자산 가격에 낀 거품이 빠지기 시작했다. 특히 변동성이 높은 가상자산과 주식시장이 우선 요동쳤다. 개당 8000만원을 넘던 비트코인의 가격은 2500만원 수준으로 떨어졌고, 3300포인트를 넘어섰던 코스피 지수는 2300대로 급락했다.
부동산도 예외는 아니다. 2022년 들어 전국 주택 거래량이 뚝 끊겼다. 2020년 7월, 총 1만6002건이던 서울 아파트 월간 거래량은 2022년 3월 1236건 수준으로 떨어졌다. 2021년 10월 168.2까지 치솟았던 수도권 아파트 실거래가 지수(한국부동산원 발표, 2017년 11월 가격을 100으로 놓고 비교)는 2022년 4월 165를 기록하며 약보합세를 보이고 있다.
자산시장의 약세가 거듭되면서 팬데믹 국면에서 대거 유입된 2030 투자자들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1990년대 후반 외환위기, 2000년대 후반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어보지 못한 이들 투자자들이 시장 충격에 취약할 것이라는 전망에 무게가 실린다. 무엇보다 ‘28살 순자산 5억 투자자’나 정미현씨처럼, 본인 돈보다 훨씬 큰 규모로 레버리지(지렛대, 빚)를 동원한 이들에 대한 우려가 사회 전반으로 확대되고 있다.
2030은 얼마나 자산시장에 뛰어들었나
그렇다면 얼마나 많은 2030세대가, 얼마나 큰 빚을 짊어지고서 자산시장에 뛰어든 것일까? 장혜영 정의당 의원이 금융감독원을 통해 확보한 자료에서 그 규모를 가늠해볼 수 있다. 투자 유행이 정점에 이르던 2021년 2분기까지 가상자산·주식·부동산 시장에 참여한 투자자들을 연령별로 분석했다.
〈그림 1〉은 국내 4대 가상자산 거래소(업비트, 빗썸, 코인원, 코빗)의 신규 계좌 개설 현황을 연령대별로 나누어 살펴본 결과다. 가상자산 침체기였던 2019년 1분기만 해도 20대 가입자의 신규 계좌는 5117개에 불과했다. 그러나 코로나 팬데믹 이후 2030 세대 신규 가입자 수는 큰 폭으로 늘어난다. 비트코인 가격이 개당 2000만원을 넘어가기 시작한 2020년 4분기에 가상자산 거래소의 신규 계좌 개설 인원은 급증했다. 이때 가장 적극적으로 뛰어든 이들이 30대다. 전체 신규 가입자 34만여 명 가운데 12만여 명이 30대 가입자였다.
비트코인 가격이 개당 7000만원을 넘어선 2021년 1분기에는 20대 가입자가 폭증했다. 81만명으로 전 연령대에서 가장 많았다. 암호자산 시장은 2021년 2분기에 주춤했지만, 이 시기에는 더 많은 계좌(20대 92만명, 30대 90만명)가 개설됐다. 다른 모든 연령대에 비해, 2030 세대가 시장을 주도했다.
거래 금액도 만만찮다. 연령만 놓고 보면 ‘코인판의 주포’는 30대다. 30대 가입자들은 2021년 상반기(1·2분기 합산)에만 1826조원 넘게 거래했다. 20대의 거래액도 1139조원을 넘어선다. 이 기간 모든 연령대의 총거래액은 약 4945조원 수준. 전체 거래액의 59%를 2030 세대가 기록한 셈이다.
주식시장은 어떨까? 〈그림 2〉는 연령대별 증권 계좌 개설 수를 비교한 결과다. 2018년까지만 해도 전체 증권 계좌에서 40세 미만 청년층의 계좌 수는 32.4% 수준이었다. 그러나 2020년 코로나 팬데믹과 함께 2030 세대의 참여가 급증하면서 그 비율이 38%(2021년 2분기)까지 치솟았다. 특히 2020년 신규 증권 계좌는 총 1818만 개인데, 이 중 청년층(40세 미만)의 신규 계좌는 1074만 개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팬데믹 국면에서 각 증권사가 비대면 계좌 개설을 유도하고, 신규 가입자에 대한 이벤트(첫 거래 시 사은품으로 주식을 주는 방식)를 벌인 것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은다)’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한 부동산시장에서도 젊은 주택 매입자들이 늘었다. 특히 이들이 동원한 주택담보대출 규모가 눈에 띈다. 〈그림 3〉은 연령대별 가계 주택담보대출 신규 취급액을 분기별로 분석한 결과다. 2020년 1분기부터 2021년 2분기까지 만 40세 미만이 시중은행으로부터 빌린 주택담보대출은 약 111조원이다. 전체 신규 주택담보대출의 46.9%가 이들 청년층에서 발생했다.
주택담보대출 잔액도 청년층의 비중이 점차 커지고 있다. 2018년 4분기만 해도 이들 청년층의 주택담보대출 잔액은 96조원, 전체 주택담보대출 잔액 대비 26.4% 수준이었다. 그러나 2021년 2분기에는 잔액이 132조원으로 크게 늘었고 그 비율도 30.9%로 늘었다. 이들 지표는 국내 6개 시중은행(국민·우리·하나·신한·SC·씨티)에서 빌려준 금액만 담겨 있다. ‘영끌’의 또 다른 요소인 신용대출, 제2금융권 대출 등을 고려하면 2030 세대의 ‘가계대출 문제’가 상당할 것으로 추정된다.
데이터를 통해 팬데믹 이후 자산시장을 살펴보면 이렇게 정리해볼 수 있다. 부동산시장에서 2030 세대는 확연한 존재감을 보인다. 주식시장에서는 젊은 신규 투자자가 늘었다. 그리고 가상자산 시장은, 사실상 2030 세대가 주도했다.
팬데믹 투자가 바꾼 일상
36세 직장인 박한석씨(가명)는 팬데믹 이후 본격적으로 주식시장에 뛰어들었다. 2018년 처음 주식 계좌를 만들었지만 1000만원 이상 거래를 시도한 것은 2020년 하반기부터였다. 나름 원칙을 정해 매매하지만, 술자리에서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원칙이 흔들리곤 했다. 사석에서도, 애인과 데이트를 할 때에도 주된 대화 주제는 주식이었다. 넷플릭스에서 〈개미는 뚠뚠〉 같은 주식 예능을 골라 봤고, 휴일에는 각종 주식 관련 유튜브 채널을 몰아 보았다. 2022년 들어 손해가 만만치 않지만 증권사 계좌에 예치되어 있는 여유자금을 은행으로 되돌릴 생각은 없다. “가지고 있는 현금으로 주가가 더 떨어지면 주울 생각이다”라는 박씨는 장기적으로 GDP가 성장하는 만큼 증시도 오를 것이라 믿고 있다.
휴학 중인 27세 대학생 윤병권씨(가명)는 한때 블록체인 업계 취업을 생각했다. 지인이 가상자산 시장에서 큰돈을 번 것을 보고 이 업계를 선망하게 됐다. 그러나 선망했던 지인의 ‘성과’는 하루아침에 무너졌다. 이른바 ‘루나 사태’를 겪으며 ‘집 한 채’ 금액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투자에서 아예 멀어질 생각은 없다. 윤씨는 돈이 생길 때마다 미국 애플사의 주식을 사 모으고 있다. 아직 젊기 때문에 적립식으로 꾸준히 모으면 좋을 것이라 여긴다.
자산시장에 뛰어든 2030 세대의 투자는 기술 환경의 변화로 인해 새로운 유행을 만들어냈다. 박한석씨의 일상처럼 이들 세대가 자산시장에 참여하는 중심에는 유튜브 같은 소셜미디어가 놓여 있다. 흔히 ‘경제 유튜브 3대장’으로 불리는 삼프로TV(구독자 200만명)·슈카월드(224만명)·신사임당(182만명) 외에도 증권사 소속 스타 애널리스트들의 개인방송도 인기를 끌고 있다. 가상자산 단타 매매는 유명 BJ들의 인기 콘텐츠 중 하나다. 2021년부터 유튜브 쇼츠(Shorts:최대 60초 분량 숏폼 동영상)가 서비스를 개시하면서 스마트폰 앱으로 ‘단타 매매’를 하는 영상도 인기를 끌었다.
프롭테크의 확산도 2030 세대의 투자를 더욱 부채질했다. 프롭테크란 부동산(Property)과 기술(Technology)의 합성어다. 각종 빅데이터와 지리정보를 결합해 아파트 가격의 추이를 분석하고, 지도를 보며 각종 개발 정보와 호재를 파악할 수 있다. 특히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 시스템과 연동해 아파트 단지별 최근 매매 현황을 파악하는 앱이 인기다. 네이버부동산·직방·다방 같은 매매 중개 앱 외에도 호갱노노, 리치고, 디스코, 아실 같은 시장 분석 앱도 ‘필수 설치 앱’으로 여겨진다. 부동산 재테크를 전문으로 하는 네이버 카페에서는 회원들이 ‘임장 리포트(직접 투자할 만한 동네를 돌아다니고, 그 결과를 회원들과 공유하는 게시물)’를 작성할 때 프롭테크 앱 화면을 캡처해 함께 올릴 것을 권고하기도 한다. 스마트폰만 가지고도 아파트 단지별 가격 동향과 거래 현황, 지역 입지 등을 한눈에 확인하는 문화는 부동산 투자를 주식이나 코인처럼 쉽게 접근하도록 한다. 스마트폰에 익숙한 2030 세대일수록, 이들 프롭테크 앱에 대한 의존도가 크다.
자산 정보에 대한 접근성이 좋아지면서 ‘과잉 정보’나 ‘작전’에 노출될 가능성도 커졌다. 27세 3년 차 직장인인 한미루씨(가명)는 지난해 동창들과의 모임에서 처음 ‘코인 투자’를 권유받았다. 당시 최씨의 친구는 “코인으로 200만원 벌었다”라며 투자를 권유했고, 앉은 자리에서 케이뱅크와 업비트 가입을 도왔다. 계좌 개설은 인터넷 쇼핑만큼이나 쉬웠다. 주식을 투자한 적도, 은행에서 펀드에 가입한 적도 없던 한씨는 여윳돈 160만원을 업비트 계좌에 넣었다.
한씨는 가상자산 거래 과정에서 오픈카톡방에 의존했다. 카톡방에 모여 있던 사람들은 방장의 지시에 맞춰 일사불란하게 코인을 매입했다. 한씨도 카톡방 안내에 맞춰 총 4가지 종류 코인을 매수했다. 그러나 1년 뒤, 한씨는 가지고 있던 모든 가상자산을 손절했다.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던 코인이 업비트에서 상장폐지되었기 때문이다. 한씨에게 해당 코인을 추천했던 오픈카톡방은 벌써 사라졌다. 한씨 손에 남은 금액은 약 30만원, 이때 기억에 대해 한씨는 “가상자산은 애초에 분석이 필요한 영역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파친코에서 동전을 넣듯 돈을 입금했던 것 같다. 다만 나중에 주식을 할 때에는 꼭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말한다. 가상자산 업계에서는 각 가상자산(코인)의 기반 기술이 다르다는 점을 강조한다. 향후 해당 코인과 연결된 블록체인 기술이 서로 경쟁하며 NFT(대체 불가능 토큰), 디파이(DeFi·탈중앙 금융) 같은 미래 기술의 기반이 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실제로 거래소에 원화를 입금하는 대다수 2030 투자자들이 해당 기술을 이해하고 접근하는 것은 아니다. 한씨가 ‘파친코’라고 언급했던 투기적 요소, 오픈카톡방에서 오가는 미확인 정보가 투자의 기반이 되기도 한다.
투자라는 문화의 이면에 존재하는 ‘불안감’
팬데믹 국면에서 확대된 투자 열풍을 단순히 집단적인 투기 욕망으로 해석하는 게 옳을까? 2021년 9월, 서울 노원구에 위치한 69㎡ 아파트를 5억9000만원에 매입한 8년 차 직장인 이자연씨(32·가명)는 집을 매입하던 시절의 ‘감정’을 잊지 못한다고 말한다. 2020년부터 회사에서도, 사석에서도 이씨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은 코인·주식·부동산(이른바 코·주·부)을 이야기했다. 전세로 오피스텔에 거주하던 이씨에게 회사 동기들은 “절대 전세 살지 마라”며 아파트 매입을 권했다. 무엇보다 이대로 있다간 금리가 저렴한 ‘보금자리론’을 이용하지 못할 것이라는 조급함이 들었다. “보금자리론은 매매가 6억원까지 대출이 가능한데, 2021년에 어지간한 서울 아파트는 대부분 6억원을 넘겼다. 이대로 있다간 안 되겠다 싶어서 6억이 넘지 않는 집을 찾다가 지금 이 아파트를 고르게 됐다.”
이자연씨가 매입한 노원구 아파트는 1999년에 지어진, 낡고 작은 아파트다. 이씨는 “나도 내가 고점에 매입한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시세차익에 대한 욕구보다 불안감이 더 컸다. 만약 ‘5년 후에 더 저렴한 가격으로 집을 살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면 판단을 미뤘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안 사면 평생 집을 못 살 것 같았다”라고 설명했다. 이씨는 본인이 저축과 주식투자로 모은 종잣돈에 주택담보대출과 신용대출을 받아 말 그대로 ‘영끌’로 집을 매수했다. 집을 사기 전까지는 각종 앱과 부동산 관련 커뮤니티, 단톡방을 드나들었지만 매입 이후로는 모든 정보 채널을 닫았다고 한다. 자신을 짓누르던 ‘불안감’이 해소됐다는 이유였다.
이자연씨처럼 2030 세대가 자산시장에 뛰어든 2020~2021년에는 집단적인 불안감이 팽배했다. 당시 사회를 가장 극단적으로 묘사한 두 가지 신조어가 바로 ‘파이어(FIRE)족’과 ‘포모(FOMO)’다. 파이어족이란 경제적 독립(Financial Independence)과 조기 은퇴(Retire Early)를 추구하는 이들을 뜻한다. 이른 나이에 넉넉하게 돈을 벌어 빨리 노동에서 벗어나는 삶을 지향하겠다는 것인데, 이를 위해서는 투자가 필수적이다. 불과 수년 전 유행했던 욜로(YOLO·오늘을 즐기는 삶)와는 대척되는 모습이다.
반면 포모는 흐름이나 유행을 놓치고 소외되는 현상을 의미한다. 유동성이 확대되고 자산 가격이 상승하는 동안 자신만 자산을 늘리지 못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표현하는 말로 활용되었다. ‘벼락거지’처럼 비슷한 신조어도 튀어나왔다.
자산 상승 국면에서 혼자 뒤처진다는 두려움과 성공한 소수에 대한 선망은 ‘불안감’을 만들어내는 중요한 축이다. 여기에 ‘취업하고 돈을 모아 중산층 아파트에 거주하는’ 이른바 ‘보통의 삶’을 누리기 어렵다는 불안감도 가중되었다.
이 불안은 12년 전 평균 임금소득과 자산 가격을 비교해보는 것만으로도 쉽게 공감이 가능하다. 2010년 대졸 신입사원 평균 초임은 대기업 3291만원, 중소기업 2475만원이었다(인크루트 조사). 2022년에는 이 수치가 대기업 5356만원, 중소기업 2881만원(사람인 조사)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다수가 재직하는 중소기업의 임금은 12년 동안 그리 크게 오르지 못했다.
반면 주택 가격(자산 가격)은 같은 기간 두 배 이상 뛰었다. 서울 중소형 아파트(60㎡ 초과 85㎡ 이하)의 평균 매매가격은 2010년 4월 ㎡당 538.4만원에서 2022년 4월 ㎡당 1476.6만원으로 올랐다. 수도권 전체를 놓고 보더라도 2010년 4월 364.4만원에서 2022년 4월 786.3만원으로 두 배 이상 늘어났다.
2010년 초봉 2475만원을 받던 중소기업 신입사원에게 85㎡짜리 서울 아파트는 4억5700만원이지만, 2022년 초봉 2881만원을 받는 중소기업 신입사원에게 같은 면적·지역의 아파트 가격은 12억5500만원을 넘는다. 2010년 자산 가격이 ‘아끼고 모으면 해볼 만한 목표’라면 2022년 자산 가격은 ‘애초에 포기하거나, 다른 방법을 강구해야 하는 미래’가 된다.
문제는 이들이 찾는 ‘지름길’이 대부분 빚을 동원한 ‘레버리지’라는 점이다. 자산 가격이 상승하는 동안 레버리지는 부를 만들어내는 자양분이 된다. 앞서 소개한 정미현씨가 충북 청주 주택을 매입한 것처럼, 집값이 10%만 올라도 정미현씨의 2000만원 투자금은 4000만원으로 불어난다. 수익률 100%다.
그러나 인플레이션 위기 앞에서 금리 부담은 ‘돈을 동원하는 비용’을 키운다. 제로금리 환경에서 대출을 일으킨 사람이라면, 기준금리가 1~2%만 올라도 주택담보대출을 비롯한 각종 대출이자가 큰 폭으로 늘어나게 된다. 가령 본인 돈 2억원에 대출금 4억원을 동원해 부동산을 매입했을 경우, 은행 대출금리가 3%라면 월 이자는 100만원 수준이다. 그러나 대출금리가 7%로 오를 경우, 매달 갚아야 하는 이자는 240만원으로 늘어난다. 만약 주택 가격이 더 오르지 않는다면, 집을 계속 보유한다는 건 매년 투자금을 까먹는 결과로 이어진다. 2010년대 중반까지 이어졌던 주택 하락장에서 ‘하우스푸어’ 현상이 나타난 것도 이 때문이다.
2030 세대의 자산 참여 과정에서 정치는 무능하고 무책임했다.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은 주택 가격 폭등이라는 환경을 만들어내 2030 세대가 자산시장에 매달리는 환경을 만들었고, 이는 20대 대통령 선거 패배의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 국민의힘이라고 책임에서 자유롭진 않다. 20대 대통령 선거를 앞둔 2022년 1월, 당시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는 주식양도세 징수(연간 5000만원 이상 수익을 거둔 모든 투자자에게 20~25%의 양도세를 부과)를 전면 폐지하겠다고 공약했다. 이 공약대로 윤석열 정부는 6월16일, 증권거래세를 0.2%로 인하하고 주식 양도세를 100억원 이상 대주주에게만 물리겠다는 경제정책을 발표했다. 2023년 도입 예정이던 가상자산 과세(250만원 이상 소득을 낼 경우, 20% 세율로 과세)도 2년 유예하기로 했다. 투자자 친화적인 정책이라고 설명했지만, 자산시장에서 발생하는 부의 재분배는 약화되었다.
정치가 ‘투자 성향이 강한 유권자’에 집중하는 동안 2030 세대 사이에서 생겨나는 양극화는 관심 밖으로 멀어지고 있다. 자산시장에 참여할 만한 종잣돈을 모으는 게 불가능한 2030 세대는 정책 수혜의 대상에서도, 여론의 관심에서도 밀려난다. 과열된 투자 열기는 ‘빚을 내서라도 자산시장에 참여해야 하는’ 강박과 불안감을 만들어내는데, 이는 금융 취약계층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광주청년드림은행에서 금융 사각지대에 놓인 청년을 상담하는 주세연 센터장과 박수민 이사장은 2030 세대의 금융 문제가 투자 측면만 부각되는 걸 경계한다. 박 이사장은 “당장 먹고살 돈을 마련하지 못해서 30만원, 100만원을 빌리느라 불법 금융에 노출되는 청년도 많다. 이들 중에는 직장 내 투자 분위기를 쫓아가기 위해 빌린 돈으로 주식을 했다가 크게 손실을 보는 경우도 있다. ‘돈을 너무 쉽게 빌릴 수 있는 환경’이 더 큰 문제다”라고 말했다. 양극화에 불안감을 느낀 2030 세대가 투자의 세계로 우르르 몰려들었고, 이 여파는 한국 사회에 각종 후유증을 걱정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후유증의 대부분은 청년층의 부채 문제에서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김동인 기자 astori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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