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경제유람] 금융위기 때 중국처럼..인도, 경제위기 소방수?

2022. 7. 12. 0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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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오늘날 세계경제는 우리 몸의 핏줄처럼 하나로 연결돼 있습니다. 지구촌 각 나라들의 역사와 문화, 시사, 인물 등이 ‘나비효과’가 되어 일상에까지 영향을 미치곤 합니다. 인문학과 경영, 디자인, 사회문제 등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가진 경제학자의 눈으로 세계 곳곳을 살펴보려는 이유입니다. 박정호 명지대 특임교수가 <한국일보>에 3주에 한번씩 화요일 연재합니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지난달 24일 일본 도쿄 총리관저에서 열린 쿼드(Quad·미국·일본·호주·인도 안보협의체) 정상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도쿄=연합뉴스

<40>인도는 코로나19 이후 새로운 대안이 될까

최근 전 세계적으로 경기침체에 대한 우려가 고조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World Bank) 등 국제기구들이 발표하는 각국의 경제성장률 수치는 매달 하방으로 재조정되고 있다. 현재의 국제적 경기 침체 우려는 과거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와도 유사해 보인다. 다만 당시에는 2000년대 이후 급성장한 중국경제의 소비, 투자에 힘입어 전 세계 경제가 빠르게 선순환으로 돌아설 수 있었다.

미국 재무부의 월간자본유출입 보고서에 따르면,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한 2008년 9월 이후 올해 6월까지 14년간 중국이 사들인 미 국채는 4,814억 달러(약 626조 원)에 달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발생 이후, 중국은 미 국채를 꾸준하게 매입함으로써 미국의 저금리 유지와 소비 진작에 적잖은 도움을 줬다. 또 중국 안에서 푼 4조 위안(약 777조 원)의 경기부양 덕분에 세계 경제도 빠른 회복세를 가져갈 수 있었다. 중국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국제경제 분야에서 소방관 역할을 톡톡히 해줬던 셈이다.

최근 국제사회는 급격히 둔화되고 있는 국제경제를 되살릴 수 있는 역할을 인도에 기대하는 듯하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중국은 러시아와 강력한 반미연대를 형성해 예전과 같은 소방관 역할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경기 침체 우려에 중국은 내수 진작에 매달리고 있기도 하다.

13억8,000만 명에 달하는 인도 인구는 넓은 영토와 함께 국가의 성장 잠재력을 끌어올리는 요인이다. 10일 인도 델리 한 이슬람 사원에서 신도들이 기도를 하고 있다. 델리=로이터 연합뉴스

무궁무진한 인도의 성장 잠재력

인도의 잠재력은 충분하다. 인도는 28만㎢(한반도의 15배, 남한의 33배)나 되는 세계 7위의 넓은 국토를 가지고 있다. 또 인구는 13억8,000만 명(세계 2위)으로 세계 인구 6명 중 1명이 인도인이다. 매년 우리나라 인구의 약 1/3 정도(1,600만 명)만큼 늘고 있기도 하다. 방대한 토지와 거대한 인구는 무한한 성장 가능성으로 치환된다. 과거 중국처럼 현재의 경제적 난관을 헤쳐 나갈 대안으로 인도가 꼽히는 이유다.

인도를 더 들여다보자. 240년 동안 이어진 영국의 식민 통치 시대를 1947년 청산한 인도는 거대한 내수 시장을 기반으로 구소련의 사회주의 경제 개발 모형을 도입했다. 정부 주도의 자급자족형 경제 개발을 추진한 것이다. 네루가 주장한 방식으로, 독립 이후 서구 열강에 의존하지 않기 위해 수입대체 및 유치 산업 보호를 목표로 삼고 있다. 정부 주도 성장 정책으로 인도는 식량 자급을 달성했고, 기초 공업과 중화학 공업에서 부분적인 산업화에 성공했다. 또 대규모 숙련 노동력을 포함해 많은 과학ㆍ기술 인력을 육성할 수 있었다. 1960년대 개발경제학 분야의 세계적 학자 라울 프레비시와 한스 싱어는 “개발도상국은 수출을 통한 대외지향적 발전 전략보다 국내 수요를 우선적으로 충족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는데, 그 결과가 인도에서 현실화했다. 중남미 일부 국가와 파키스탄 등도 같은 길을 걸었다.

하지만 성장은 오래가지 못했다. 수입대체산업 육성 전략을 택한 국가들의 성과는 잠시 반짝거리는 데 그쳤다. 많은 경제학자들은 자급자족형 수입대체 전략을 추구한 국가들이 실패한 이유를 아프리카 대륙 국가들을 통해 비교ㆍ설명한다. 아프리카 국가 대부분은 세계대전 이후 신생 독립국으로 비슷한 시기와 상황에서 출범했는데, 수출지향 정책과 수입대체 정책을 택한 국가들을 비교하면 쉽게 확인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인도와 달리 거대 내수 시장을 갖지 못한 한국은 수출지향적 경제 모델을 바탕으로 성장한 대표적인 국가다. 11일 인천 연수구 인천신항에서 컨테이너 선적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뉴스1

수출지향적 경제모델 택한 국가들의 성장

실제 가나는 2차 세계대전 이후 독립할 당시만 하더라도 대표적인 코코아 수출국이었다. 국내총생산(GDP)의 20%를 차지할 정도였다. 독립국 가나는 경제적 자립을 위해 수입대체 전략을 택했다. 이후 코코아 생산에 투입할 자본을 다른 산업에 분산해 투자했고, 이로 인해 코코아 수출은 급격히 감소했다. 그 결과 가나의 1인당 GDP는 1957년 1,500달러에서 1983년 310달러로 되레 쪼그라들었다.

이에 반해 비슷한 시기 독립해 비슷한 자원을 갖고 출범한 코트디부아르는 대표 생산품인 커피, 코코아, 목재 등의 수출을 촉진하는 정책을 시행했다. 수출이 효자가 되면서 코트디부아르는 1957년부터 1983년까지 연평균 5~7%씩 성장했다. 1인당 GDP 역시 2배 이상 상승했다.

한국 역시 수출지향적 경제모델을 바탕으로 성장해 온 대표적인 국가다. 경제개발 초기 내수시장 규모가 크지 않았던 시절에는 협소한 국내시장보다 방대한 세계시장을 대상으로 제품을 판매하는 것이 더욱 유리했다. 이뿐만 아니라 해외시장까지 고려해 대규모로 생산할 경우 규모의 경제 효과도 거둘 수 있었다. 한국 경제가 남다른 성과를 보일 수 있었던 이유는 더 있다. 대외지향적 경제체제의 경우, 국내 기업 간의 경쟁이 아닌 해외 기업과의 경쟁 상황에 노출된다. 이러한 과정에서 국내 기업들은 자연히 자신들의 경쟁력 수준을 국제적인 상황과 비교해서 파악할 수 있고, 그 과정에서 생산성 향상과 기술 개발에 더욱 박차를 가하게 된다.

다시 인도로 돌아가보면, 네루식 자급자족형 모델은 시행 초기 성공적이었지만 역효과는 오래갔다. 특히 폐쇄적인 사회주의식 경제 모델을 운용하기 위해 과도한 규제를 도입함으로써 이른바 ‘규제의 천국’이 됐다. 영세 기업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대기업의 진출을 금지시키고, 중화학산업 대부분을 국영기업으로 운영했다. 생산 품목과 시설 규모, 지역 등에 대한 허가 절차를 엄격하게 운영함으로써 해당 산업 부문 발전의 저해, 생산성 저하, 보조금 지급 증가 등 부담만 키웠다. 더욱이 규제 일변도 정책은 인도 전역을 관료 부패의 온상지로 만들었다.

또 외국인 지분 한도를 규정하는 외환관리법을 도입해 외국인 투자를 막았고, 노동법을 엄격히 적용해 경직적인 노동 환경을 조성해 비즈니스 환경을 악화시켰다. 네루식 경제 개발 모델은 더 이상의 성장을 유인해내지 못했으며, 오히려 실업의 증가, 빈부의 격차 등 경제 전반의 실패로 이어졌다. 결국 1991년에는 금융위기를 맞기도 했다.

나렌드라 모디(왼쪽) 인도 총리가 2019년 6월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과 만나 악수하고 있다. 양국은 경제적으로 협력하고는 있지만 동북부 접경지역에서 군사 충돌 등 갈등을 빚어 왔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개혁ㆍ개방 정책으로 선회했지만...

실패의 쓴맛을 본 인도는 1990년대부터 시장 경제 원리를 근간으로 하는 혁신적인 개혁ㆍ개방 정책으로 전환했다. 각종 규제 철폐, 공기업의 민영화, 보조금 삭감 등을 통한 자유시장 원칙을 도입, 외국 자금과 기업 유치를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수출입 분야에서도 종전의 포지티브(허용된 것만 가능) 승인 제도에서 네거티브(허용하지 않은 것만 제외하고 모두 가능) 승인 제도로 개편했으며, 특정 분야를 제외한 산업 대부분에 외국인 직접 투자를 허용했다. 이런 전환은 인도 시장을 급속하게 성장시키는 전기가 됐다. 1951~74년 3.6%, 1981~91년 5.4%로 저조하던 GDP 성장률은 개혁 이후 14년 동안(1992~2005) 연평균 6.3%라는 놀라운 수치로 화답했다. 2000년대로 한정하면 연평균 8% 수준을 넘는 초고속 성장세를 보여왔다.

인도가 보여준 최근 성과가 뛰어나다 하더라도 향후 이 같은 성장속도를 지속할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다. 더 정확히 말해 코로나19 이후 급격히 냉각되고 있는 전 세계 경제를 인도가 되살릴 수 있다는 믿음을 갖기에는 너무 이른 듯하다. 최근 인도가 처한 비즈니스 환경이 그리 녹녹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고질적인 지정학적 갈등은 경제적 악재가 되고 있다. 인도는 안정적인 국내 정치에도 불구, 중국·파키스탄 등과 접경지역에서의 분쟁이 끊이지 않는다. 1947년 인도-파키스탄 분리 독립 이후 당시 인도와 파키스탄에 각각 63%, 37%로 분할된 카슈미르 지역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약고다. 인도 동북부 접경과 인도양 지역에서는 중국과의 갈등이 지속되고 있다.

지정학적 갈등으로 나렌드라 모디 정부는 최근 중국산 제품 중 인도산으로 대체 가능한 제품 3,000개를 제시하고 지속적으로 줄여 나가겠다고 밝혔다. 인도 전자정부기술부는 동영상서비스 틱톡, 메신저서비스 위챗, 알리바바그룹의 모바일 브라우저 등 59개 중국 앱을 영구 퇴출시키기도 했다. 5세대 이동통신 5G 사업에서도 중국 기업을 공식적으로 배제했다. 최근 다른 나라를 향해서도 자국 유치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관세를 인상하거나 수입규제를 다시 확대하고 있는 실정이다. 네루식 자급자족형 정책으로 되돌리고 있는 셈이다. 무한한 성장 잠재력을 가진 인도지만, 세계 경제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기대하기에는 아직 신뢰를 쌓지 못한 모습이다.

박정호 명지대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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