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헌 시계 빨라지는 일본, 정말 전쟁 가능한 나라 되나
자위대 헌법 명기 등 찬성파 내에서도 의견 갈려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의 피살 이틀 만에 치러진 일본 참의원 선거에서 집권 자민당이 압승하면서 그가 '필생의 과업'으로 남기고 떠난 평화헌법 개정이 실현될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커졌다. 자민당 총재인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11일 "개헌안을 국회에서 가능한 빨리 발의해 국민투표로 연결하겠다"고 말했다.
일본의 군대 보유를 금지한 헌법 9조에 자위대의 존립 근거를 명기하는 문제가 개헌 논의의 최대 쟁점으로, 동아시아에 대형 안보 변수가 등장한 셈이 됐다.
기시다 "아베 뜻 계승... 가능한 빨리 발의에 이르도록"
11일 확정된 최종 개표 결과 자민당을 위시한 개헌 세력이 개헌안을 단독 발의할 수 있게 됐다. 연립여당인 자민당(63석)과 공명당(13석), 야당인 일본유신회(12석)와 국민민주당(5석)을 합해 93석을 획득했고, 3년 전 참의원 선거에서 이들이 이미 확보한 의석(84석)을 더하면 177석이 된다. 참의원 개헌안 발의 정족수(166석·참의원 전체 의석인 248석의 3분의 2)를 여유 있게 넘긴 것이다.
전범국 일본이 2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직후인 1946년 2월 제정된 일본 헌법은 9조에 '전쟁 포기'(1항)와 '군대 불보유'(2항)를 규정해 '평화헌법'으로 불린다. 아베 전 총리는 일본을 '보통국가'로 만들기 위해 9조 2항을 삭제하는 개헌을 추진했다. 그러나 일본이 '다시 전쟁을 할 수 있는 나라'가 될 수 있다는 우려로 한국, 중국 등 주변국 반발이 극심했고, 일본 여론도 부정적이었다.
그러나 중국과 북한의 안보 위협이 커지면서 여론이 바뀌기 시작했고, 올해 들어 북한의 핵실험 협박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계기로 찬성 여론이 우세해졌다. '국민 여론'과 '국회의 개헌 발의 의석'까지 확보한 기시다 총리는 개헌을 추진할 수 있는 최적의 여건을 만났다. 보수온건파로 분류되는 그는 선거 대승 하루 만에 '개헌안의 조속한 발의' 방침을 밝혀 '아베의 유지'를 받드는 모양새를 일단 취했다.
찬성파 내에도 이견... '자위대 명기' '긴급사태조항'이 쟁점
중국 관영매체 글로벌타임스는 11일 "일본이 개헌에 성공하면 해외 참전이 가능해지고, 군사 대국화를 추구할 것"이라며 "일본과 아시아태평양지역을 포함한 전 세계에 지극히 해로울 것"이라고 경계했다.
기시다 총리가 추진하는 개헌으로 일본은 '전쟁하는 나라'가 될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다소 과장된 주장이다. 자민당은 아베 내각 시절인 2018년 우선 논의 대상인 '개헌 4개 항목'을 정했는데, '전쟁 포기'(9조 1항)는 포함돼 있지 않다. 개헌을 논의하는 공식 기구인 국회 헌법심사회의 논의 대상도 아니다. 일본 여론도 9조 1항 개정에는 여전히 부정적이다.
다만 '군대 불보유' 조항을 삭제 또는 수정하는 문제는 진전될 여지가 있다. 자위대 존립 근거를 헌법에 명기해 자위대의 위헌 논란을 해소하는 방안이 '개헌 4개 항목'에 들어 있기 때문이다. 기시다 총리는 지난해 자민당 총재 경선에서 ‘개헌 4개 항목'을 총재 임기(2024년 9월) 안에 달성하겠다고 공약했다.
자민당은 방어용 무력 사용만 가능한 자위대를 정식 군대인 국방군으로 개편하는 내용의 개헌안을 제안했다 큰 반발을 불렀고, 이후 '헌법 9조를 유지하되 자위대의 합헌 근거를 마련한다'는 절충안을 냈다. 자민당의 구상이 관철될지는 불투명하다. 개헌 세력 중 일본유신회는 자위대 보유 명기 방안에 적극 찬성하지만, 공명당은 소극적이고 국민민주당은 입장이 불분명하다. 개헌에 부정적 야당이 9조 개헌에 강력 반발하는 것도 변수다.
기시다 "가을 임시국회에서 민의 받들어 논의하길"
일본의 개헌 절차는 이렇다. ①국회 헌법심사회의 논의 ②국회의원 또는 헌법심사회의 개헌안 국회 제출과 심의 ③중의원과 참의원 각각 재적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개헌안 발의 ④국민투표에서 18세 이상 국민 과반 찬성으로 승인 후 새 헌법 공포순이다.
현재 ①의 단계가 진행 중으로, 지난해 10월 기시다 내각 출범 이후 현재까지 회의가 16차례 열렸다. 자민당을 위시한 개헌 세력은 중의원의 개헌안 발의 정족수도 채운 상태다. ②와 ③ 단계에서 각 정당이 개헌안의 내용에 대해 합의할 수 있을지가 개헌 달성 여부와 추진 속도를 가를 전망이다.
다만 개헌 세력이 보수의 여망을 반영해 급진적 개헌안을 내면 국민투표 통과 여부가 불투명해진다. 아베 전 총리의 사망으로 개헌 찬성 여론이 강해져 국회의 찬성파가 빠르게 이견을 해소한다면, 기시다 총재 임기 안에 단일안이 나올 가능성이 있다. 반대로 아베 전 총리의 리더십 부재로 단일안 도출에 진통을 겪을 수도 있다. 강경파가 주도해 급진적인 개헌안을 발의한다 해도 국민투표라는 마지막 관문이 남는다.
결국 아베 전 총리의 사망과 자민당의 참의원 선거 대승으로 개헌에 힘이 실리는 것은 맞지만, 개헌이 실현되기까지는 갈 길이 멀다는 얘기다.
도쿄= 최진주 특파원 parisco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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