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생활 노출 싫어… 2030 “계약 끝나기 전엔 방 안보여줄래요”
집주인과 갈등 빚는 경우 늘어
계약때 ‘방 보여주기’ 조항 등장
“죄송해요. 그 방은 세입자가 나가기 전까진 보여드리진 못할 것 같아요.”
서울 영등포구에서 공인중개사로 일하는 김모(56)씨는 지난 6월 방 1개짜리 오피스텔을 보러 온 손님에게 이렇게 사과하고, 같은 구조의 다른 방을 대신 보여줘야 했다. 지금 그 방에 사는 세입자가 방을 보여주지 않겠다고 해서다. 그는 “사생활이 노출되는 게 싫다”고 했다고 한다. 집주인까지 나섰지만 결국 그는 자기 방을 보여주지 않았고, 그가 이사를 간 다음 날에야 거래 희망자에게 빈방을 보여줄 수 있었다. 김씨는 “요즘 젊은 세입자들을 중심으로 다음 세입자 등에게 방을 보여주는 데 비협조적인 사람들이 많아서 고민”이라고 했다.
“모르는 사람이 내가 사는 방을 보는 것이 싫다”는 20~30대 세입자들이 늘고 있다. 옷장이나 화장실 내부는 물론, 부엌이나 냉장고 등도 외부에 드러내지 않고 싶은 개인적인 공간이라는 의미에서다. 과거에는 계약 기간이 끝나가는 세입자가 집 비밀번호나 열쇠를 공인중개사에게 맡겨두고 편할 때 집을 보라고 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공인중개사들 사이에서는 사생활에 민감한 20~30대가 많이 사는 지역에서는 이제 이런 풍경은 찾아보기 힘들다는 반응이 잇따르고 있다. 젊은 층이 많이 사는 지역의 공인중개사들은 집주인에게 임대차 계약서를 쓸 때 ‘계약이 끝나 집을 비우기 전에 방을 보여주는 데 적극 협조한다’는 조항을 꼭 넣으라고 집주인에게 권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젊은 세입자들은 “세입자 집이라고 언제든 들어와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시대착오적”이라고 반박한다.
하지만 이런 변화 탓에 방을 구하는 사람들도 난감한 경우가 많다. 자기가 앞으로 몇 년씩 살아야 할 집인데 실제 상태가 어떤지 보지도 못하고 계약을 할 수는 없지 않으냐는 것이다. 그렇다고 세입자가 짐을 뺄 때까지 마냥 기다릴 여유가 없는 경우도 적지 않다. 경기 용인시에 사는 김모(57)씨는 “직장인인 딸이 서울에 오피스텔 자취방을 구하려는데 기존 세입자가 월요일 오후 5시가 아니면 절대 집을 보여줄 수 없다고 해 내가 대신 매물을 보러 다녀왔다”고 했다. 서울 영등포구에서 오피스텔 매물만 중개하는 손모(54)씨는 “젊은 사람들이 워낙 비밀번호를 안 알려주려고 하니 약속 시간을 조율하려고 세입자와 고객 사이에 끼어 네다섯 번은 왔다 갔다 통화하는 게 일상”이라고 했다.
2030 세입자들은 사생활을 존중해주지 않는 중·장년 공인중개사나 집주인 때문에 곤란하다고 호소한다. 집주인이나 공인중개사란 이유로 무조건 찾아오겠다고 하는 건 ‘갑질’로 느껴진다는 것이다. 서울 마포구의 오피스텔에서 자취 중인 대학원생 임모(27)씨는 “공인중개사가 다른 손님에게 집을 보여준다고 찾아와 ‘붙박이 옷장 좀 열어봐도 되죠’라고 하더니 대답도 듣지 않고 옷장을 열어 불쾌했던 경험이 있다”고 했다. 서울 관악구의 원룸에서 자취 중인 직장인 김희진(27)씨도 “오래된 샤워기를 교체해줄 수 있냐고 집주인에게 문의한 바로 그날 퇴근하고 보니 샤워기가 새것으로 바뀌어 있었다”며 “마스터키를 사용해 내가 없을 때 마음대로 방에 들어왔다는 사실도 싫었지만 ‘고장 난 걸 고쳐주려고 한 건데 뭐가 문제냐’는 집주인의 반응이 더 황당했다”고 했다.
공인중개사들은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부동산 거래 문화가 바뀌고 있다고 했다. 주택을 매입하거나 임차할 집을 구하는 손님도 젊은 층일수록 계약 전 집을 둘러볼 때 조심스럽게 행동한다는 것이다. 서울 광진구에서 중개업을 하는 지모(50)씨는 “요즘엔 집 보러 온 고객이 먼저 ‘남의 수납장 열어보면 안 되지 않냐’고 하거나 ‘지금 세입자에게 사진을 받아달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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