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그늘서 벗어났다… 기시다, 1인 독주시대
일본 집권 여당 자민당의 총재인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11일 참의원 선거 결과와 관련한 기자회견에서 “(현재 일본은) 전후 최대급의 난국면에 처해 있고, 하나하나의 과제는 수십 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큰 문제”라며 “지금은 평시가 아니라, 말하자면 유사 사태로서 정국 운영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했다. 이날 기자회견 내내 기시다 총리는 결의에 찬 듯 자신만만했다. 핵심 이슈들에 대해서도 일일이 명확한 입장을 밝혔다. 그는 “물가 안정은 정부가 책임지고 만전을 다하겠다” “전력 문제는 올여름 안정적인 공급에 필요한 전력 수준을 확보할 테니, 무리하게 절전하지 말고 에어컨을 효과적으로 쓰면서 여름을 지내달라”고 말했다.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피격 사망과 참의원 선거 압승을 계기로 기시다 총리에게 한층 힘이 실리고 있다. 기시다 총리는 아베 전 총리의 피격 사태에서도 국민들의 마음을 얻었다. 아베 전 총리가 피격됐을 때 기시다 총리는 땀방울과 눈물이 범벅 된 얼굴로 TV 화면에 등장했다. 그는 충격에 빠진 일본 국민들에게 아베의 유산을 충실하게 이어받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아베 전 총리의 의지를 이어받아, 특히 그가 정열을 쏟은 납치 문제나 헌법 개정 등에 적극 나서겠다”며 “그는 탁월한 리더십과 행동력으로 일본을 이끌어갔다”고 말했다. 자민당은 참의원 선거에서 압승했고, 선거 당일 NHK방송 여론조사에서 기시다 내각에 대한 지지율은 74%에 달했다.
기시다 내각은 앞으로 3년간 탄탄한 정치 기반을 확보할 전망이다. 의원내각제인 일본은 4년 임기 중의원과 6년 참의원으로 국회가 이뤄진다. 작년 10월 중의원과 이번 참의원 선거를 연이어 대승한 덕분에 기시다 내각의 연립 여당은 다음 선거인 2025년까지 양원 모두에서 안정적인 과반수 의석을 확보했다.
기시다 총리는 작년 9월 취임했을 때만 해도 기반이 취약했다. 자민당은 파벌 세력 간 견제와 균형으로 정국을 운영하는데 기시다 총리는 흔히 기시다 파벌(소속 의원 수 42명)로 불리는 소수 파벌인 고치카이(宏池会)의 수장이다. 아소 파벌(수장 아소 다로 부총재, 50명)과 모테기 파벌(모테기 도시미쓰 간사장, 51명)이 그를 총리로 밀었다. 막후엔 최대 파벌인 아베 전 총리가 이끄는 아베파(95명)가 있었다. 기시다 정권은 기시다 본인의 파벌보다 세력이 큰 3개 파벌의 지원 위에 성립한 만큼 이들의 입김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일본 외무성의 전직 고위 관료는 “아베 신조 전 총리는 총재 선거 때 다카이치 사나에 의원을 총리로 밀어, 당시 유력 후보였던 고노 다로 의원을 견제한 다음, 최종 결선 때 기시다와 다카이치 간 연합으로, 기시다 총리를 지원했다는 게 정치권의 정설”이라고 말했다.
도쿄 출생인 기시다 총리는 히로시마가 정치적 기반으로, 1987년에 당시 중의원이던 아버지 기시다 후미타케의 비서로 정계에 입문했다. 1993년에 부친의 지역구(히로시마 1구)를 물려받아 중의원에 처음 당선됐다. 같은 해 아베 전 총리도 부친 아베 신타로의 지역구에서 중의원에 처음 당선됐다. 이후 기시다 총리는 아베 신조 전 총리의 1차 집권 때인 2007년 ‘오키나와 및 북방대책담당상’, 2차 집권 때인 2012년에 외무상으로 임명됐다.
기시다 총리는 지난해 총리 취임 직후 하야시 요시마사를 외무상으로, 후쿠다 다쓰오를 당 4역인 총무회장으로 기용해 독자 노선의 길을 타진했다. 요미우리신문은 “아베 전 총리는 당시 중일우호의원연맹 회장을 지낸 하야시가 외무상이 되면 중국에 잘못된 메시지를 줄 수 있다며 반대했다”고 보도했다. 기시다 총리는 “제대로 안 되면 바로 바꾸겠다”며 강행했다. 하지만 이후에도 여전히 아베 전 총리는 재정 정책이나 개헌과 같은 주요 이슈마다 독자 발언하며 자민당 내의 영향력을 행사했다.
기시다 총리의 다음 카드는 8월 말~9월 초로 예정된 내각 개편이다. 아베 전 총리가 테러로 사망함으로써 기시다가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최대 파벌인 아베 파벌이 아베 전 총리의 사망 이후 마땅한 후계자가 없다는 점도 일본 정치권의 관심사다. 아베 파벌 내 총리 후보급이 안 보이는 데다, 내부 결속을 이끌 인물도 없다는 것이다. 기시다 총리로선 세 확장의 호기인 셈이다. 차기 총리 후보군으로 꼽히는 고노 다로 전 외무상이나 모테기 간사장 등도 수면 밑에서 움직일 것으로 보인다. 요미우리신문은 “최대 파벌이 흔들리면 당내 역학 관계도 크게 변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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