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보건복지부 장관, 보건보다 복지전문가가 낫다
윤석열 정부에서 보건복지부 장관 임명이 두 번 철회되었다. 두 사람 모두 의약 및 보건 전문가일지언정 복지 전문가로 보기는 어렵다. 복지는 국민의 삶을 보장하는 유일한 통로이며, 국가의 틀까지도 복지국가로의 도약을 요청하고 있다. 보건복지 행정에서 의약 및 보건 분야는 적절한 제도를 통한 구조적 해결 가능성이 높은 편이다. 그러나 복지 분야는 급속한 정보문명 전환 과정에서 삶의 바탕을 설계해야 하는 구조 이상으로 복지국가 철학과 가치 정립이 필요한 상황이다.
자본주의 발전 과정에서 우리 사회는 경제적 여력이 곧 삶의 역량이었다. 그 결과 외형은 자유 시장경제와 민주시민 사회지만 내부는 자본계층질서의 실상이 드러날 수밖에 없었으며 대부분 사회 문제는 계층질서가 신분질서로까지 악화하는 과정에서 발생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4차 산업시대는 시스템 질서의 사회다. 시스템 질서가 자본계층질서보다 더 위험한 것은 사회적 중간지대를 아예 찾을 수 없는 극단의 계급구조를 시스템적으로 만들어 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인공지능(AI) 기반의 고도화된 정보사회에서는 지식 정보의 창출-적용 기술 확대-사유화 과정을 통하여 사회 계층이 이분화되어 중간계층이 차지했던 이음구조가 상실된다. 지금 우리 앞에 선보인 4차 산업시대 생활문명들은 선택의 여지없이 수용을 강요하는 것으로, 많은 미래학 비평들도 궁극적으로 이런 우려를 담고 있다. 이렇게 되면 전통시대의 주인과 노예처럼 주인은 영원한 주인으로, 노예는 영원한 노예의 속성대로 시스템에 맡기는 삶이 전개될 뿐이다. 공자가 중용이 실천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현자는 지나치고 불초자는 이르지 못함이라고 한 것도 앞선 사람은 너무 앞서고 뒤처진 사람은 따라가지 못하게 되는 시스템 질서의 속성을 잘 설명하는 것이라 하겠다.
그 중간을 이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있다면 ‘복지’다. 시스템에 이끌려가는 사람들은 할 일이 없어 사실상 시스템 사회질서에 예속될 뿐이고, 자유 시장은 지금까지 통례로 볼 때 이 질서를 강화시킬 뿐 다른 방도가 없어 보인다. 이런 맥락과 시점에서 보건 전문가보다는 복지 전문가가 보건복지부 장관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연금개혁이나 저출생 등의 과제를 해결하고 시스템 질서에 예속된 삶을 회복하는 현실수단으로서 복지체계의 기반과 그 기반 형성을 위한 사회복지 가치체계를 만들 수 있다. 이미 4차 산업문명의 생활 질서가 조짐을 넘어 실증을 보이기 때문에 지금은 복지 전문가가 나서 그 기반을 만들어야 할 때이다. 기후위기와 코로나19 같은 감염병도 세계적 정책공조와 제도적 처방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경제적 노예 속박으로부터 삶을 해방하는 것만이 유일한 대책이다. 현시점에서 ‘복지’는 삶의 해방을 가시화하는 문명사적 화두임을 직시하고, 윤석열 정부는 복지 전문가의 장관 등용을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김태경 경인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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