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펌의 기술 | "사전에 담합 차단" 의약분업 취지 살렸다] 계명대 동산병원의 '약국 담합' 막은 법무법인 태평양
과거 대형 병원과 약국들의 담합은 음성적으로 이뤄졌다. 처방할 약을 결정하는 병원 내 약제심사위원회와 의약품 공급상 그리고 약사들까지 결탁하면 주변 약국 몇 개쯤 고사시키는 것은 말 그대로 ‘마음만 먹으면’ 가능한 시절도 있었다.
약사들의 본업은 의약물이 오남용 처방됐을 때 그것을 견제하는 것이다. 하지만 해당 병원과 너무 가깝다 보면 결탁하게 되고 결탁은 독(毒)이 된다. 성능이나 효과가 비슷한 약이라도 좀 더 비싼 특정 약을 처방한다는 점에서 환자들에게 피해가 간다. 의약분업 전에는 이런 일이 상당했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얘기다.
헌법재판소가 의약분업에 대해 “불법적 담합 소지를 사전에 차단하는 데 있다”고 판결(2003년 10월)한 것은 취지가 ‘담합 예방’에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이처럼 약사법 개정안의 탄생 배경만 봐도 약국의 개설 등록에 대해 엄격한 잣대를 적용하는 것은 타당하다. 자칫 병원과 공간적·기능적으로 밀접성이 인정될 경우, 담합 가능성을 크게 본다는 점에서 약국 개설에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다.
병원을 갖고 있는 학교 법인이 병원 바로 옆 자기 소유 건물에 약국을 입점시킨다면 어떨까. 얼핏 보기엔 담합 가능성이 커보이지만, 이를 문제 삼은 원고 측이 경쟁 관계에 있는 인근 약국의 약사들이라면? 재판부는 소 제기 의도를 의심해 볼 수밖에 없다.
법무법인 태평양의 법제행정팀 소속 변호사들이 대구 계명대 동산병원과 주변 동행빌딩 소재 5개 약국을 상대로 한 ‘개설 등록 처분 취소’ 항소심에서 6월 13일 승소했다. 동산병원 인근 약국 약사 두 명과 환자 한 명을 대리해 1심에 이어 또다시 승소한 셈이다.
‘배 아파서?’ 진정성 의심한 재판부 설득
사실 병원과 인접해 담합 가능성이 큰 위법한 약국이 들어서면 해당 약국이 처방전을 독점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변 약국들은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이에 지금까지 주변 약국들은 (처방전 독점 약국에 대한) 행정관청의 등록 허가가 위법하다며 소송을 냈지만 ‘원고 적격 인정 여부’라는 장벽을 넘지 못하고 각하되기 일쑤였다. 쉽게 말하면 ‘너희들 배 아파서 그러는 것 아냐?’라는 의심 때문이었다.
‘원고 적격’이 인정되려면 소송으로 얻게 되는 법률상 이익이 있어야 한다. 법률상 보호받을 수 있는 이익인데 법원은 그동안 약사들이 다툴 수 있는 이익은 경제적인 이유로 인한 간접적 이익에 불과하다고 봤다.
하지만 법제행정팀은 이러한 편견을 깨고 인근 약국 약사들의 원고 적격이 인정된 최초의 판례를 이끌었다. 2019년 9월 대법원 판결이 확정된 창원 경상대 사건이다. 애초 이 사건 원고 측에는 약사들만 있었지만, 대한약사회와 창원시약사회, 경상대병원을 이용하는 환자 두 명도 포함됐다. 단 한 명의 원고라도 인정되면 ‘원고 적격’이 되고, 사건 본안을 놓고 다툴 수 있다는 점에서 고안한 전략이었다.
무엇보다 재판부에 “결국 주변의 건전한 약국이 퇴출되면 남은 약국들과 병원의 담합 가능성이 발생하고, 결국 병원의 처방전 오남용에 대한 견제와 검증 역할을 소홀히 할 수밖에 없어 환자들의 건강권을 해치게 된다”고 설득한 게 주효했다.
통상 행정처분 소송은 처분받은 당사자가 제기한다. 하지만 특정 처분으로 인해 불이익받고 있다고 생각해 법리상 다퉈야 할 때, 비(非)당사자가 할 수 있고 이때 적격 여부를 따지게 된다. 경쟁자인 상대방에게 허가해줘서 자신이 불이익받을 때 원고 적격이 인정되는지 여부는 법조계에서도 논쟁적 이슈다.
이에 동산병원 측(법무법인 율촌·광장 대리)은 “서로 목 좋은 자리를 놓고 싸우는 경제적 분쟁에 불과하다”며 원고 적격 여부와 관련해 반대 논리를 펼쳤다. 원고 측이 승소하면 보다 많은 처방전을 원고 측이 가져가게 될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이미 창원 경상대병원 사건에서 노하우를 쌓은 태평양은 이번 사건에서도 원고 측에 약사들과 환자 등을 포함시키면서 해당 주장을 탄핵했고, 재판부의 원고 적격 인정을 이끌어냈다.
임대료로 밝혀낸 ‘담합 가능성’
태평양은 동산병원 측이 약사법 개정안 20조(약국 개설 등록) 5항(개설 등록 금지) 가운데 3호를 어겼다고 봤다. 3호는 ‘의료기관의 시설 또는 부지의 일부를 분할·변경 또는 개수(改修)해 약국을 개설하는 경우’로 규정됐다.
무엇보다 2020년 천안 단국대병원 사건에서 대법원 승소를 이끌어 낸 경험이 큰 도움이 됐다는 설명이다. 병원이 병원 소유 건물을 제삼자인 의약품 도매상에게 매각해 해당 건물에 약국 개설을 시도한 사례로, 해당 도매상이 병원에 97%의 의약품을 독점 공급하고 있다는 사실을 근거로 ‘담합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박상현(사법연수원 30기) 변호사는 “단국대병원 사건의 특징은 약국이 들어설 건물 소유자와 병원이 전혀 관계가 없었다”면서 “의료 도매상이 건물 소유자였는데 이런 경우에도 담합 가능성이 인정될 수 있느냐가 쟁점이었다”고 했다. 따라서 ‘동산병원 사건’은 병원 바로 옆 건물 소유주가 병원이라는 점에서 그야말로 “대놓고 병원이 약국을 유치한 사례”와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이제 관건은 동산병원과 바로 옆 동행빌딩에 입점해 있는 약국 5곳과 관계가 “밀접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일이었다. 태평양은 가장 먼저 건물 소유 관계부터 파악했다. 학교법인이 해당 빌딩을 소유하고 있는 사실을 확인했고, 비록 별개 빌딩으로 설립돼 있으나 동선상 병원을 이용한 환자들이 밖으로 나와서 가장 먼저 접하는 위치(1~2분 거리)에 있는 등, 물리적으로 매우 가깝다는 점을 재판부에 피력했다.
또 5개 약국들이 병원으로부터 받는 처방전 비율이 다른 약국에 비해 상당히 높다는 점도 강조했다. 특히 경제적 이익에 상응하는 만큼의 높은 임대료를 병원 측에 내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직접 임대료를 조사한 윤수현(변시 4회) 변호사와 정현아(변시 7회) 변호사는 “동행빌딩 1층 약국들과 기타 점포(2~4층) 간 1평당 보증금 차이는 12배 정도, 1평당 월 임대료는 13배 정도로 계산된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의약분업’의 근본 취지를 강조하는 쪽으로 재판부를 설득했다. 언제라도 담합 상황이 발생하는 것을 사전에 차단하자는 게 의약분업의 취지라는 설명이다. 한편 태평양은 이번 사건을 포함해 창원 경상대병원 사건, 천안 단국대병원 사건을 포함해 이른바 ‘약국 개설 취소’ 3대 사건에서 모두 승소하면서 해당 분야 강자로 입지를 굳혔다.
유욱(사법연수원 19기) 변호사는 “상급종합병원의 경우 의약분업 원칙에 따른 의료기관과 약국의 공간적·기능적 분리 필요성이 소규모 의료기관에 비해 현저히 크다”면서 “대학병원들이 원외처방전을 독점할 수 있는 자리를 선점하고 약국용으로 임대한 후 막대한 임대 수입을 얻는 것이 위법하다는 기준을 제시해 의약분업에 충실한 약국 개설을 유도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고 평가했다. 박 변호사도 “병원 입장에서 언제든 자신의 영향력하에 약국을 둘 수 있게 된다면 결국 약국이 처방전에 대해 견제하지 못하는 상황이 펼쳐진다”고 지적했다. 동산병원 사건은 병원 측이 지난 3월 상고하면서 현재 상고심이 진행 중이다.
Copyright © 이코노미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