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헌 4당' 내부서도 셈법 달라.."자위대 명기"에 "검토 필요" 입장 맞서

김태영 기자 2022. 7. 11.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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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헌 카드 꺼낸 기시다]
개헌 발의선 '3분의 2' 넘었지만
"단일안 합의 쉽지 않을 듯" 관측
대국민 트라우마 극복도 변수
'탄탄대로' 예고된 기시다 총리
본인 색채 국정에 반영할지 관심
[서울경제]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조문을 위해 일본을 방문한 토니 블링컨(왼쪽) 미국 국무장관이 11일 기시다 후미오 총리와 도쿄 관저에서 만나 대화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일본 ‘개헌 4당’이 참의원 선거에서 개헌에 필요한 발의선(전체 의석 3분의 2)을 훌쩍 넘기는 압승을 거두며 세간의 시선은 개헌 논의의 향방에 쏠리고 있다. 2차 대전 패전국인 일본이 자위대, 즉 ‘자국군 보유’를 헌법에 명기해 전쟁을 일으킬 수 있는 ‘보통 국가’로 거듭나야 한다는 목소리가 전에 없이 커졌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라는 지정학적 위기에 더해 아베 신조 전 총리가 불의의 총격을 받아 사망한 초유의 사태는 개헌 논의에 불을 지필 것으로 전망된다.

일본 개헌파가 추진하려는 헌법 개정의 핵심은 현행 헌법 9조를 손보는 것이다. ‘전력 보유와 무력 사용 금지’를 담은 해당 조문은 현행 일본 헌법이 ‘평화 헌법’으로 불리는 이유다. 자민당·공명당·일본유신회·국민민주당 등 이른바 ‘개헌 4당’은 현행 헌법 9조를 ‘자위대 보유가 가능하다’는 식으로 손질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개헌파의 의도대로 헌법이 고쳐질 경우 2차 대전 패망 직후인 1947년부터 시행돼 전후 일본의 근간이 된 ‘평화 헌법’은 효력을 잃고, 대신 일본은 군대를 가지고 필요할 경우 전쟁을 일으킬 수 있는 보통 국가가 된다는 의미를 갖는다.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선거 승리 다음 날인 11일 연 기자회견에서 자민당이 2018년 3월 당론으로 정한 헌법 9조 개정이 “현대적인 과제”라고 밝혀 헌법에 자위대 보유 근거를 마련하겠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자민당은 또 이번 참의원 선거에서 국내총생산(GDP) 대비 1% 수준인 방위비를 향후 5년 내에 2%로 올리겠다는 공약을 이행하는 데도 속도를 낼 것으로 관측된다.

그러나 실제 ‘개헌 완성’까지는 난관이 예상된다. 불의의 총격에 사망한 아베 전 총리가 2020년 9월 퇴임하며 ‘숙원을 이루지 못했다’고 한탄할 정도로 개헌은 난제 중의 난제로 꼽힌다.

무엇보다 개헌 4당 사이에도 이견이 존재한다. 논의의 핵심인 ‘헌법 9조 자위대 명기’에 대한 정당 간 입장은 제각각이다. 자민당과 일본유신회의 개헌 구상은 헌법 9조에 자위대의 존재를 명기해 ‘전쟁 가능 국가’로 나아가는 것이 핵심이다. 반면 공명당과 국민민주당은 자위대 명기에 대해서는 ‘검토와 논의를 이어간다’는 수준으로 거리를 두고 있다.

개헌에 대한 이른바 정당 간 온도 차는 선거가 끝나자마자 표출됐다. 기시다 총리는 전날 “(의석 수) 3분의 2가 찬성할 수 있는 부분부터 개헌안 발의를 진행해 나가고 싶다”면서도 “발의하는 내용에 관해 일치 가능한 세력이 3분의 2가 모이지 않으면 발의가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개헌 지지 정당 간 이견을 조율해 단일안을 만드는 첫 관문부터 현실적으로 쉽지 않음을 토로한 것으로 해석된다. 자민당과 연립여당을 이루는 공명당의 야마구치 나쓰오 대표는 “단순히 (개헌안 발의) 숫자를 맞추는 게 아니라 어떤 내용으로 합의를 하는지가 중요하다”며 개헌에 신중한 입장을 내보이기도 했다.

이 밖에 무상 교육(일본유신회), 대규모 재해 시 내각의 역할을 강화하는 긴급 사태 조항 창설(자민당·일본유신회·민주당), 의원 임기 연장 특례(국민민주당) 등 합의가 필요한 개헌 제안들이 산적해 있다. 개헌 세력 내부에서도 합의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마이니치신문이 선거 직전인 5일 발표한 설문조사 결과 역시 이 같은 관측에 힘을 더한다. 전체 후보를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에서 헌법 9조 개정에 찬성한 후보는 52%에 불과했다. 3년 전 직전 조사(25%)보다는 크게 늘었지만 압도적 지지라고 보기는 어렵다. 39%의 후보가 9조 개정에 반대한 가운데 연립여당인 공명당의 반대 비율이 83%에 달했다는 점도 눈여겨볼 부분이다.

이 밖에 입헌민주당·공산당 등 야당이 자위대 명기에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는 점도 개헌파 입장에서는 부담이다. 의회 분포상 개헌안 발의 요건은 충족했지만 개헌의 무게감에 비춰봤을 때 ‘초당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시각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제1야당인 입헌민주당은 의회 역할을 강화하는 방향의 개헌을 주창하면서도 자위대 명기에는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다. 아사히신문은 “헌법 개정에는 국민의 폭넓은 이해가 수반돼야 하지만 이런 환경을 (여당이) 만들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고 평했다.

일본 정계 개편의 향방도 변수다. 현재로서는 기시다 총리의 ‘탄탄대로’가 점쳐진다. 퇴임 이후에도 100명에 가까운 당내 최대 파벌을 이끌던 아베 전 총리의 영향에서 벗어나 자신의 색채를 비로소 국정에 반영할 수 있는 기회일 수 있다는 평가다. 기시다 총리는 지난해 10월 취임 당시 각 파벌 인사를 내각에 고루 앉히는 ‘균형 인사’를 편 바 있는데, 여기서 얼마나 변화를 줄지가 관전 포인트다. 다가오는 개각 시점으로는 임시국회 해산과 자민당 임원 임기 만료가 맞물려 있는 8~9월이 꼽힌다.

김태영 기자 youngk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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