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반도체 슈퍼 사이클 끝났다"..곧 치킨게임 돌입?
세계적인 코로나19 대유행에 이은 인플레이션의 격랑 속에서 한국 경제의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는 산업의 쌀 반도체가 공급과잉과 수요 감소로 곧 생존 경쟁을 해야 하는 '치킨게임' 국면에 돌입할 것이라는 전망이 잇따르고 있다.
곳곳에서 반도체 버블 붕괴 조짐
작년 전 세계에서 그래픽 처리 반도체는 정말 인기가 좋은 뜨거운 상품이었다. 암호화폐 채굴자나 게임을 하는 사람들은 미국 엔비디아(Nvdia)와 AMD의 고성능 그래픽 칩을 사려고 줄을 서야 했다. 그래픽 칩뿐 아니라 메모리 반도체 부족으로 자동차와 스마트폰에서 미사일까지 대부분 공업 제품의 생산에 차질이 빚어졌다.
IDC에 따르면 작년 전 세계 반도체 산업 매출은 전년도보다 25%가 늘어난 5천8백억 달러가 됐고, 타이완의 반도체 회사 TSMC의 주식 시가총액은 세계 10위로 뛰어올랐다. 수요가 천정부지로 계속될 것으로 예상한 반도체 제조회사들은 투자를 늘렸다. 삼성과 타이완의 TSMC, 미국의 인텔(Intel)은 작년 920억 달러를 신규 투자했다. 2019년보다 73%나 증가한 규모다. 이들 3개 회사는 내년과 후년 2천1백억 달러를 추가 투자할 계획이다.
하지만 최근 분위기는 급 반전하고 있다. 3분기 연속 기록적인 영업이익을 기록했던 삼성전자는 3분기 영업이익은 정체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삼성전자는 올 하반기 반도체 칩 가격 인하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지난달 미국의 마이크론테크놀로지는 올 3분기 매출액을 예상보다 20% 정도 감소한 72억 달러로 예상했다. 리서치 회사 트렌드 포스(Trend Force)는 올 3분기 반도체 가격이 10% 하락할 것으로 전망했다. 가상 화폐 시장의 붕괴와 게임 시장의 침체로 지난 1월 이후 그래픽 반도체 가격은 절반이 하락했다는 분석도 나왔다.
급격히 증가했던 반도체 수요가 둔화하면서 올 들어 세계적인 반도체 회사들의 주가는 3분의 1이 떨어졌다. 수요 둔화에 지정학적 위기로 글로벌 시장과 가치사슬이 쪼개지면서 슈퍼스타가 됐던 반도체 산업은 명성을 잃고 있다.
반도체, 공급 폭증에 예상보다 빠른 수요 감소
반도체 생산을 늘리는 방법은 1-2년이 걸리는 생산라인 증설과 그 이상 몇 년이 더 걸리는 신규 공장 건설이 있다.
리서치 회사 퓨처 호라이즌(Future Horizon)에 따르면 2021년 하반기 반도체 설비 신규 투자는 코로나 19 이전보다 75%가 증가했다. 반도체 라인 증설에 1-2년이 걸리는 점을 감안하면 올 연말에는 반도체 홍수가 예상된다.
또 다른 반도체 생산 능력 확대 경로인 반도체 공장 신설도 크게 늘어났다. 리서치 회사 SEMI에 따르면 2020년과 2021년 34개의 반도체 공장이 새로 가동됐다. 2022년에서 2024년 사에 또 다른 58개 공장이 가동할 예정이다. 이렇게 되면 전 세계의 반도체 생산 능력은 40% 정도가 증가하게 된다. 인텔은 미국 오하이오와 애리조나, 독일에 6개의 반도체 생산 라인을 짓고 있다. 삼성은 미국 텍사스에 신규 생산라인을 지을 예정이고, TSMC도 애리조나에 대규모 반도체 생산 공장을 짓고 있다. 이 모든 신규 전공정 라인들은 2025년쯤 반도체를 생산하기 시작할 것으로 예상된다.
반도체의 공급은 늘어나는 가운데 수요 감소는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나타나고 있다. 코로나19에 따른 원격 수업과 재택근무가 종료되면서 반도체 수요의 30%를 차지하는 개인 컴퓨터(PC)용 반도체 수요는 올해 8%가 감소할 것으로 IDC는 전망했다. 반도체 수요의 20%를 차지하는 스마트폰 출하도 줄어들고 있다. 세계 최대의 스마트폰 생산국인 중국의 지난 4월 스마트폰 출하는 3분의 1이 감소했다. 앞으로 경기침체가 진행되면 스마트폰과 PC의 수요는 더욱 가파르게 줄 수 있다.
반도체 수요의 10%를 차지하는 차량과 데이터센터용 반도체 수요도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의 데이터센터용 반도체 주문은 감소했다. 반도체 대란에 놀란 자동차 회사들이 두 세배 늘렸던 차량용 반도체의 수요도 줄 것으로 예상된다. 자동차 회사들은 지난 몇 분기 동안 평균 수요보다 40%나 더 반도체를 주문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렇게 자동차 회사들이 쌓아 놓은 재고는 앞으로 차량용 반도체 수요의 가뭄이 올 수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각국 정부의 반도체 산업 육성 정책도 반도체 가격 하락 압력을 가중시킬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반도체 대란 속에서 주요 국가의 정부는 세계 반도체 생산의 75%가 아시아에서 생산된다는 사실을 알아차렸고, 자국 내 반도체 생산 라인 증설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미국은 5년 동안 5백20억 달러를 반도체 연구개발과 생산에 지원하는 법안을 심의하고 있고, 유럽연합도 2030년까지 4백40억 달러를 지원할 예정이다. 우리나라와 일본, 인도도 반도체 지원 방안을 추진하고 있고, 중국은 이미 지난 2014년부터 반도체 산업을 지원해왔다.
악순환에 빠진 반도체 산업.."치킨 게임 재연된다"
각국의 반도체 산업 지원 정책과 함께 정책적 개입도 반도체 시장을 어렵게 할 것으로 예상된다. 반도체 산업의 가치 사슬이 여러 나라에 걸쳐 연결돼 있는 가운데, 세계 각국이 자국 생산을 고집하면서 중복 투자와 낭비도 심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컨설팅 회사 BCG는 반도체 국산화가 실현되면 반도체 생산단가는 35%에서 65%가 증가할 것으로 분석했다.
미국의 중국에 대한 반도체 수출 금지도 시장 상황을 악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세계 최대의 반도체 시장인 중국 시장이 막히면서 반도체 생산 회사들은 가장 큰 시장을 잃게 되고, 채산성이 악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1980년대 20여 개의 회사들이 고객 확보 경쟁을 벌였던 메모리 반도체 시장은 이제 마이크론과 삼성, 하이닉스 3개 사가 지배하고 있다. 2001년도 30개 회사가 각축을 벌였던 최첨단 마이크로 프로세서 시장에는 이제 인텔과 삼성, TSMC만이 남았다. 반도체 회사들이 급증하고 공급이 수요를 초과하는 상황이 된다면, 다시 일부 회사만이 남아 시장을 지배하는 상황이 재연될 것이다.
올 상반기 국제 원자재 가격의 급증에 따른 수입 증가에도 반도체 수출은 690억 달러로 20.8%나 증가하면서 무역수지 적자 규모를 103억 달러로 억제하는 효자 역할을 했다. 수출 상품 가운데 단연 1위로 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20%에 달한다.
하지만 공급 증가와 수요 감소로 반도체 가격이 하락하고, 각국의 국산화 확대와 자국 상품 구매 정책이 확산할 경우 반도체의 효자 역할은 장담할 수 없다. 세계적인 인플레이션과 금융 긴축으로 경기침체가 가시화하면서 정부와 기업의 치밀한 대비가 요구되고 있다. 전 세계 경제는 흥청망청 하던 저금리와 유동성 잔치가 끝나고, 절약과 효율, 금융 건전성이 중시되는 시기로 진입하고 있다.
김용철 기자yckim@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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