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쇄산업의 눈물.."지폐도 해외서 찍을 판"
펄프값 역대최고 수준 급등
을지로 골목 영세업체 줄폐업
대학 인쇄학과도 잇따라 문닫아
젊은 인재들 유입 없어 '악순환'
전문가 "첨단인쇄 기술 키워야"
국내 인쇄산업이 이중고에 시름하고 있다. 수입 펄프 등 원자재 가격이 사상 최고치로 치솟는 가운데 국내 인쇄업계의 인력난이 갈수록 심화하고 있어서다. 최근 을지로 인쇄골목엔 ‘폐업’ ‘임대문의’ 문구가 곳곳에 붙어 있고, 대학 내 전문 인쇄 학과들은 잇따라 폐과 수순을 밟고 있다. 업계에선 “이러다가 선거 공보물, 지폐까지 해외에서 찍어올 판”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지폐도 해외에서 찍어올 판”
11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종이 원료인 미국 남부산혼합활엽수펄프(SBHK)의 지난달 평균 가격은 t당 970달러로 역대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1월(675달러) 대비 44% 올랐다. 이에 따라 한솔과 무림 등 국내 제지업체들은 올 상반기에만 국내 인쇄용지 판매 가격을 두 차례 인상했다.
그 여파는 인쇄업체에 고스란히 전가됐다. 최근 을지로 인쇄골목에는 가게마다 폐업 절차를 밟고 있는 곳이 수두룩하다. 원자재 가격 인상에 버티지 못하고 “기계 돌릴 때마다 적자다”는 얘기가 나돌았다. 방태원 중부대 전자출판인쇄공학과 교수는 “영세업체가 대부분인 국내 인쇄산업은 원자재 가격 인상에 취약하다”고 말했다.
더 심각한 건 인력난이다. 국내 인쇄산업이 수익성 문제에 부딪치자 인쇄 전문인력을 양성하는 교육기관마저 줄줄이 문을 닫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에 따르면 국내에서 인쇄전공이 설치된 4년제 대학은 중부대 전자출판인쇄공학과 한 곳뿐이다. 그러나 이곳에서 매년 50여 명씩 배출되던 인쇄전문인력은 이제 곧 대가 끊긴다. 2021학년도부터 신입생 모집을 중단하고 폐과 수순을 밟고 있기 때문이다. 부경대 등은 이미 인쇄학과 문을 닫았다.
원자재 가격 인상은 일시적 현상으로 볼 수 있지만 장기적인 산업 경쟁력인 인력난까지 겹치자 이에 대한 우려는 날로 커지고 있다. 업계는 국내 인쇄산업이 해외와 비교해 경쟁력이 떨어져 인재 유입이 안 되고, 더 이상 고부가가치산업으로 발전하지 못하는 악순환의 고리에 빠졌다고 보고 있다. 방 교수는 “상업용 윤전기 등 고가 인쇄기기는 독일과 일본에서 전량 수입하고 있다”며 “이러다가 현장의 베이비부머들이 은퇴하고 나면 각종 식품 패키징과 교과서, 지폐, 인쇄 공보물 등의 인쇄를 담당할 전문인력의 대가 끊길 것”이라고 했다.
“IT와의 융복합 더 중요해질 것”
인쇄 인력 육성 기관이 줄어드는 건 디지털 전환 등 시대 변화에 따라 불가피한 현상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정보기술(IT)이 발전할수록 인쇄기술과의 융복합이 중요해질 것이라고 본다. 조가람 동국대 언론정보대학원 인쇄화상전공 겸임교수는 “디스플레이 배선 기술 등 뭔가에 안료를 입히고 접착하는 일에는 모두 인쇄 기술이 적용될 수 있다”며 “소재, 생산 전반을 아우를 인쇄 인재를 길러내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했다.
해외에서는 다양한 인쇄 수요에 빠르게 대응하기 위해 IT를 적극 활용한다. 글로벌 인쇄업체인 독일 하이델베르그는 자동화 솔루션, 인쇄 후 가공을 바로 할 수 있는 자외선(UV) 건조 시스템 등을 통해 다품종 소량생산 환경에 대응했다. 인재를 키우는 데도 팔을 걷어붙였다. 독일, 미국 같은 인쇄 선진국에서는 관련 기업 등이 장학금을 제공해 인쇄전문인력을 적극 육성하고 있다. 인쇄 전문인력을 집중 육성하고, 이들이 인쇄산업을 고부가가치산업으로 발전시키는 선순환 구조가 자리잡은 것이다.
무한 복제 가능한 디지털 환경에서 안보인쇄 기술의 중요성은 더욱 커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한국조폐공사, 국가정보원 등에서는 안보인쇄 기술 수요가 꾸준히 존재하지만 업무 특성상 외국 인력으로 대체하는 건 쉽지 않다.
정부도 고심하고 있다. 5년마다 인쇄문화산업 진흥 계획을 수립하고 인재 육성을 강조하고 있지만 오히려 관련 교육은 위축돼왔기 때문이다. 문체부는 지난 8일 대한인쇄문화협회에서 업계 간담회를 열고 의견을 수렴했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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