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속성 폐지됐지만 보험료는 내라..'특고 차별' 계속되는 이유[뉴스 깊이보기]
여전히 노동자 몫인 산재보험료
법원 "근거없는 차별아냐" 판결
배달 노동자 등 특수형태근로종사자(특고)의 산재보험 전속성 요건을 폐지하는 내용의 산재보험법 개정안이 지난 5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전속성 요건이란 한 사업장에서 일정한 소득과 노동시간을 채웠는지 여부를 뜻하는 것으로, 여러 곳에서 일하는 배달 노동자는 이 요건에 부합하지 않아 산재보험에 가입하고도 보상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더불어민주당이 먼저 법안을 발의했고 윤석열 대통령 당선 후 국민의힘과의 논의가 급물살을 탔다. ‘윤석열 정부 1호 노동법안’이라고도 불린 개정안 통과에 고용노동부는 보도자료를 내고 “약 63만명이 추가 산재보험의 보호를 받게 된다”며 환영했다.
하지만 특고 차별을 둘러싼 논란은 계속 진행 중이다. 서울행정법원이 배달 노동자에게 일반 노동자와 달리 산재보험료를 납부하도록 한 것은 부당한 차별이 아니라고 판결한 사실이 11일 알려졌다. ‘일반 노동자는 사업주가 산재보험료를 100% 부담하지만 특고 노동자는 절반을 자신이 부담’하는데, 이게 근거없는 차별이 아니라는 게 1심 법원 판단이다. 원고들이 항소해 2심 재판이 진행된다. 법 개정에도 불구하고 왜 논란이 이어질까.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으려면 이 법에서 말하는 근로자로 인정돼야 한다. 법원은 근로자가 사업 또는 사업장에 임금을 목적으로 종속적인 관계에서 사용자에게 근로를 제공했는지 여부에 따라 판단한다. 사용자가 지휘·감독을 하는지, 사용자가 근무시간·장소를 지정하고 근로자가 이에 구속되는지 등을 따진다.
IMF 외환위기 전후로 이 요건을 갖추지 못했지만 이와 유사하게 노무를 제공하는 노동자들이 급격히 늘어나기 시작했고, 산재 위험으로부터 보호할 필요성이 생겼다. 바로 특고다. 국회는 2007년 산재보험법을 개정해 특고에 대한 특례조항을 만들었다.
당시 입법 과정에서는 경영계 반발이 심했다. 이 때문에 특례조항은 특고를 보호하기 위한 취지임에도 온전히 적용되지 못하도록 여러 제약을 두게 됐다. 대표적인 게 전속성 요건이다. 특고 노동자가 산재보험의 적용 제외를 신청하면 적용을 배제해주는 규정도 있었다. 둘 다 지난 5월 법 개정으로 없어졌다.
그러나 산재보험료 징수 문제는 해결되지 못했다. 고용산재보험료징수법은 특고 노동자만 사업주와 종사자가 산재보험료를 2분의1씩 각각 부담하도록 한다(징수법 제49조의3 제2항). 사업주 부담을 줄여주는 것인데, 특고 노동자 입장에서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인정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차별적 대우를 받는 것이다.
그러면서 징수법 해당 조항은 단서로 “다만, 사용종속관계의 정도 등을 고려해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직종에 종사하는 특수형태근로종사자의 경우에는 사업주가 부담한다”고 규정한다.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일 여지가 많은 때에는 사업주가 부담하도록 했지만, 정부는 이렇게 사업주가 부담하는 특고 직종을 명시한 적이 현재까지 없다.
이같은 정부 태도가 기본권 침해라며 배달 노동자들이 2020년 1월 헌법소원을 냈다. 현재 헌법재판소가 사건을 심리 중이다. 청구인들은 정부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직종에 배달 노동자가 포함된다면 자신들이 산재보험료를 내지 않을 수도 있는데 정부가 아무 것도 하지 않아 부당한 차별을 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헌재 심리가 2년6개월 넘게 진행되는 동안 법 개정 논의에서도 보험료 징수 문제는 빠졌다. 지난 5월 산재보험법 개정 당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검토보고서를 보면, 전문위원은 “헌법소원이 아직 진행 중인 상황에서 노무제공자의 보험료 부담 방식을 변경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기존 체제를 유지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그러면서 “향후 헌법소원에 대한 헌재 결정이 이뤄지면 그 결정 내용과 사용종속관계 정도를 기준으로 직종을 분류할 수 있는지 여부 등을 고려해 산재보험료 부담 방식을 변경할지 여부에 대한 논의를 진행할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서울행정법원 재판부는 판결에서 특고의 산재보험료 징수 문제는 “입법 등을 통해 해결하는 것이 합리적이고 타당한 방안”이라고 밝혔다. 법원은 국회에, 국회는 헌재에 문제 해결의 책임을 서로 돌리는 형국이다. 헌재 결정이 언제 나올지는 알 수 없다. 보험료 징수는 사용자와 노동자간 비용을 누가 감당할 것인지의 문제이기도 하다.
또 하나의 문제는 산재보험법의 특고 특례조항이 대통령령에서 특별히 정하는 직종에만 적용돼왔다는 점이다. 2007년 보험설계사·골프장 캐디·학습지 교사·레미콘 기사 등 4개 직종만 특고로써 보호를 받았는데, 이후 조금씩 확대돼 현재까지 15개 직종이 포함된다. 반대로 말하면 대통령령에 정해진 직종이 아니면 보호를 받지 못 한다는 의미다. 노동계는 이 직종 바깥의 특고도 보호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개정안에서는 특고를 ‘노무제공자’로 새로 정의했지만 여전히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으로 범위를 제한했다.
14년 만의 산재 전속성 요건 폐지에 노동계가 환영하면서도 한계를 짚은 것도 이같은 맥락이다. 플랫폼 노동 당자사들의 모임인 플랫폼노동 희망찾기는 성명에서 “이번 입법이 여전히 사각지대를 낳을 수 있기 때문에 동시에 관련 논의를 즉각 개시해야 한다”고 했다. 한국노총도 “15개 직종의 특고만 산재보험 적용을 받고 있어 향후 개정법이 시행되더라도 실제 산재보험 적용을 받는 특고·플랫폼 노동자는 적을 것”이라며 “산재보험으로부터 보호받지 못하는 특고·플랫폼 노동자를 지속적으로 발굴하여 산재보험 적용범위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혜리 기자 lh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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