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군 '성범죄'는 민간경찰·'2차 가해'는 군사경찰..따로 노는 수사 가이드라인
민간에 수사 맡긴 법 개정 취지 거스르는 가이드라인
‘이예람 공군 성폭력 피해 부사관 사망 사건’을 계기로 군사법원법이 개정돼 군에서 발생한 성폭력 및 입대 전 범죄, 사망사건 등 3대 범죄에 대한 수사·재판권이 7월부터 경찰 등 민간 수사기관으로 이전됐지만 성범죄의 연장선에 있는 ‘2차가해 범죄’는 여전히 군사경찰이 수사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 중사가 극단적 선택을 한 원인 중 하나가 ‘2차 가해’라는 사실에서 보듯 성범죄와 2차 가해는 밀접한 관련이 있는 데도 2차 가해 범죄의 수사권을 군사경찰에 남겨두는 것은 군사법원법 개정 취지에 반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국방부와 경찰청은 협의를 통해 군사법원법 개정에 따른 군사경찰 수사 가이드라인을 마련했다. 11일 경향신문이 김병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이 가이드라인을 보면, 경찰이 군에서 발생한 성범죄 관련 2차 가해 사건을 수사할 수 없다는 규정이 마련돼 있다. 경찰은 군대 내 성범죄 사건을 수사하다 2차 가해 정황을 인지할 경우 군으로 인계해야 한다. 군인이 저지른 성매매 사건도 경찰이 수사할 수 없다. 둘 다 군형법상 성폭력 범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전문가들은 성범죄의 연속성을 도외시한 ‘반쪽짜리 입법’이라고 지적한다. 김형남 군인권센터 사무국장은 “군인들 가운데 성매매로 입건되는 경우가 상당하다. 성매매를 비롯한 ‘비군사 범죄’ 일체를 군대에서 수사해야 할 명분이 없다”며 “서열과 계급을 중시하는 군대 특성상 부대에서 발생하는 (성범죄 관련) 2차 가해는 조직적 범죄에 가깝다. 2차 가해를 군의 수사 영역으로 두는 것 자체가 입법의 한계를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말했다.
가이드라인은 성범죄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 실태가 심각하다는 국방부의 조사 결과와도 배치된다. 국방부의 ‘2019년 군 성폭력 실태조사’ 문건에 따르면 성희롱을 경험한 남녀 간부 약 230명은 사건 발생 당시 군과 부대원들의 태도를 묻는 질문에 ‘사건을 축소·은폐했다(25.2%)’, ‘내가 문제 있다고 비난받고 따돌림 당했다(16.5%)’, ‘신고하지 말라는 말을 들었다(14.5%)’ 순으로 답했다.
개정된 군사법원법은 군대에서 발생한 ‘변사사건 및 사망의 원인이 되는 범죄’의 수사권을 경찰에 이관토록 했다. 그런데 가이드라인은 군대에서 발생한 사망사건의 사실확인과 조사는 군사경찰이 하되 그 과정에서 군사경찰이 범죄 혐의를 인지한 경우 경찰에 인계하도록 돼 있다. 김 사무국장은 “군에서 발생한 사망사건의 타살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여전히 군의 몫”이라며 “설령 군이 사망사건의 혐의점을 제대로 판단하더라도 경찰이 사건을 도중에 넘겨받는 이상 수사에 제약이 따를 수 있다”고 말했다.
가이드라인은 군에서 발생한 살인 사건 중 ‘국가안전보장, 군사기밀보호, 그밖에 이에 준하는 사정이 있는 경우 국방부 장관(군 검찰)이 군사법원에 사건을 기소할 수 있다’고 명시했다. 이예람 중사 유족 측 법률대리인인 강석민 변호사는 “개정 군사법원법에서 사망 사건의 수사 주체를 경찰로 명시한 이유는 군 수사를 믿을 수 없기 때문”이라며 “그런데도 국가 안보를 이유로 국방부(장관)의 수사권을 폭넓게 유지하는 것은 사망사건을 경찰에서 수사하도록 한 입법 취지를 몰각시킬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국방부는 “국방부 장관은 (기소권을 행사하는 예외적 상황에도) 검찰총장 및 고소권자에 취지와 이유를 서면으로 통보하고, 결정 전 검찰총장의 의견을 들을 수 있다”며 “국방부 장관의 결정에 대해 검찰총장 및 고소권자가 7일 이내에 대법원에 그 취소를 구하는 신청을 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국방부 장관의 수사·기소권 오남용을 방지할 안전 장치가 마련돼 있다는 것이다.
국방부와 경찰청은 개정 군사법원법의 안정적인 정착을 위해 6개월간 한시적으로 상시 협의체를 운영 중이다. 양측은 제도 시행 이후에 발생하는 문제점 등을 보완해 8~9월 경 업무협약을 체결할 것으로 알려졌다.
강연주 기자 pla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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