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조 퇴직연금]㊦ 美·호주 연금부자는 어떻게 탄생했나?

고정삼 2022. 7. 11.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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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401k·호주 슈퍼애뉴에이션으로 퇴직연금 시장 규모 확대

300조원. 쉽게 상상하기 힘든 숫자지만, 대다수 직장인의 일상에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가진 숫자다. 이는 현재 국내 퇴직연금 시장 규모를 추정한 수치로, 앞으로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만약 300조원의 돈이 10%의 수익률을 올린다면 그 수익 규모만 30조원이다. 하지만 국내 퇴직연금 상품의 작년 연평균 수익률은 2%에 불과하다. 물가상승률을 감안하면 사실상 마이너스인 셈이다. 직장인들의 퇴직 후 노후생활을 책임져야할 연금이란 점을 감안하면 특단의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퇴직연금에 '디폴트 옵션'(사전지정운용제도)을 도입키로 했다. 지금부터 '디폴트 옵션'에 대해 살펴보자.[편집자주]

[아이뉴스24 고정삼 기자] 오는 12일 퇴직연금 디폴트옵션(사전지정운용제도) 제도가 시행된다. 그간 은행 예·적금 등 원리금보장상품에 투자돼 1%대의 낮은 수익률에 그쳤던 퇴직연금 시장에 대변혁이 예고됐다.

디폴트옵션 도입으로 우리 시장도 미국·호주 등 선진국 퇴직연금 시장의 성장 경로를 따라갈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도 나온다. 앞서 미국과 호주는 디폴트옵션을 도입하면서 퇴직연금 수익률을 끌어올리는 데 성공했고, 연금 시장 규모도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또한 퇴직연금 수익률이 높아지면, 기관투자자에 대한 신뢰가 형성돼 개인투자자들의 간접투자 수요가 증가할 것이란 예상이다. 미국처럼 간접투자가 활발히 이뤄지면, 펀드 의결권을 쥐고 있는 자산운용사들이 자본시장 문제에 더욱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부가적 효과를 기대해볼 수도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방치돼 있던 퇴직연금 수익률을 높이기 위한 디폴트옵션이 오는 12일 시행된다. [사진=픽사베이]

◆ 美·호주, 디폴트옵션 정착…퇴직연금 평균 수익률 8~9%대

11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오는 12일 디폴트옵션 시행으로 한국은 미국·호주 등의 퇴직연금 시장과 유사한 모습을 나타낼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디폴트옵션은 가입자가 별도의 운용 지시를 하지 않아도 근로자가 사전에 지정한 방식으로 퇴직금을 운용하게 한 제도다.

퇴직연금에 디폴트옵션을 도입하면서 성공적으로 수익률을 높인 대표적인 나라로 미국과 호주가 꼽힌다.

우선 미국은 1978년 '401k' 연금제도를 도입해 퇴직연금 시장의 비약적 성장을 이뤄냈다. '401k'는 미국 확정기여(DC)형 퇴직연금의 대표 제도로, '401k'란 이름은 미국 근로자 퇴직소득보장법 401조 K항에 규정돼 있기 때문에 붙여졌다. 2006년 연금보호법(Pension Protect Act)이 통과되면서 '401k' 자동 가입과 적격 디폴트옵션 상품이 허용됐고, 세제 혜택 기준이 확립됐다.

'401k'는 적립금을 투자해 얻은 배당금과 이익에 대한 소득세가 유예되고, 은퇴 후 적립금을 인출할 때 세금을 부과하는 과세이연 혜택을 제공한다. 특히 자동 가입과 디폴트옵션이 주요 특징이다. 근로자가 '401k'에 가입하지 않겠다는 의사표명을 하지 않는 이상 자동으로 가입된다.

또 별도의 운용 지시가 없을 경우 기업은 가입자에게 적용되는 디폴트 기여금 비율과 디폴트 투자 옵션을 결정한다. '401k' 가입 근로자는 주식, 뮤추얼펀드, 상장지수펀드(ETF)와 투자신탁 등 다양한 자산에 투자할 수 있다.

유진투자증권에 따르면 '401k' 연금 자산은 작년 6월 기준 미국 전체 은퇴자산의 약 20%(7조3천억 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장기 투자 수익률도 양호한 수준이다. '401k'에 디폴트옵션이 도입된 이후인 2009~2019년까지의 평균 수익률은 세전 8.3%를 기록했다. 2016~2018년까지 3년 동안의 세전 수익률도 6%에 달한다.

호주도 1980년 산업형 퇴직연금으로 처음 도입한 DC형 퇴직연금인 '슈퍼애뉴에이션(Superannuation)'으로 유명하다. 1992년 퇴직연금 가입 의무화 제도를 도입해 정규직뿐 아니라 비정규직, 예술인 등으로 대상자를 확대했다.

슈퍼애뉴에이션의 자산규모도 2000년대 들어 급속히 증가했다. 지난 2019년 3월 기준 슈퍼애뉴에이션의 자산규모는 2조9천억 호주달러로 호주 국내총생산(GDP)의 약 1.5배 수준에 달한다.

호주도 일찍부터 디폴트옵션을 도입해 현재까지 높은 수준의 퇴직연금 수익률을 자랑하고 있다. 지난 2017년 기준 연평균 수익률은 10년 세전 4.1%, 5년 세전 9.2%다. 원리금보장형 비중이 80%가 넘는 한국의 퇴직연금 연평균 수익률(2016~2021년 기준 세전 1.88%)과 비교하면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강송철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퇴직연금으로 유입되는 자금이 미국 증시에 안정적인 자금 공급원이 되고, 장기간 미국 증시 상승의 주요 요인 중 하나로 작용했다"며 "한국도 미국이나 호주 등의 퇴직연금 시장 성장 경로를 따라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 간접투자 수요 증가로 적극적 의결권 행사 등 부가적 효과 기대

디폴트옵션 도입을 통해 퇴직연금의 운용수익률이 높아지면, 기관을 통한 간접투자가 활성화할 것이란 예상도 나온다. 개인투자자들의 간접투자가 활발히 이뤄지면, 펀드의 의결권을 쥐고 있는 자산운용사가 적극적으로 주주가치 보호에 앞장설 수 있다는 설명이다.

글로벌 1위 자산운용사인 미국의 블랙록(BlackRock)이 대표적이다. 일반적으로 펀드 의결권은 블랙록과 같은 자산운용사가 가지고 있다. 투자자들의 자금으로 펀드 등을 운용해 기업 주식을 사들이지만, 투자자들을 대신해 의결권을 행사한다.

블랙록은 지난해 전 세계 기업을 대상으로 주주제안 16만5천건에 대한 의결권을 행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블랙록의 운용자산 규모는 약 10조 달러(1경2천800조원)에 달한다.

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미국에서는 기관투자자에 대한 신뢰가 있고, 간접투자 문화도 잘 형성돼 있는데, '401k'와 같은 퇴직연금 제도가 잘 구축돼 있는 점이 일부 영향을 줬다"며 "기관의 지분율이 높아져서 파워가 강해지면, 문제가 있는 기업을 대상으로 적극적으로 주주환원을 요구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자본시장이 성숙해지는 그림으로 갈 수도 있다"고 봤다.

송홍선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디폴트옵션이 도입되고, 근로자들이 이를 적극적으로 수용해 퇴직연금의 수익률이 올라가면, 간접투자에 대한 수요가 늘어날 수도 있다"며 "디폴트옵션으로 펀드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고, 기관이 개인들을 대신해 의결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하면 이에 따라 펀드 수익률이 더 높아지는 등 부가적인 효과도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다만 디폴트옵션의 직접적인 취지는 어디까지나 펀드를 통해 장기수익률을 높이자는 것"이라며 "펀드 등으로 퇴직연금을 운용하게 되면 투자 상품에 위험자산이 어느 정도 포함돼 중기적으로 수익률이 지금보다 더 높아지게 된다"고 설명했다.

/고정삼 기자(jsk@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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